2024년 4월 총선이 다가오면서 정부와 정치권에서 세금 관련 이슈가 속속 제기된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주식양도소득세(주식양도세)와 상속세 완화 등 세금을 줄이려는 움직임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부자 감세’라고 공격하며 ‘횡재세’(Windfall Tax)로 맞서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법인세 인하 등을 추진하고 이에 야당은 복지 지출 확대를 위한 증세로 대치한 모습이 재연되고 있다.
대통령실과 기획재정부는 주식양도세 완화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2023년 11월15일 “여러 건의가 있어 완화 방안을 검토하는데,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앞서 기재부도 11월11일 자료를 내어 같은 입장을 설명한 바 있다.
정부의 입장은 여당에서 비롯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11월10일 페이스북에서 “연말마다 대주주 지정을 피하기 위한 대량 매물이 쏟아져 증시는 왜곡되고, 일반 개미투자자들이 직격을 맞고 있다”며 “주식양도세 개편은 지난 대선과 인수위 국정과제로 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를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11월13일에도 “세제개편을 반대하는 야당 설득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의 뜻이고, 이를 적시에 받드는 것이 핵심”이라며 재차 촉구했다. 정부·여당은 대주주 기준액을 현행 ‘10억원 이상’에서 ‘50억원 이상’으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식양도세는 현재 종목당 10억원 이상 보유하거나 지분율 1%(코스닥 2%) 이상을 가진 대주주에게 부과된다. 이들이 주식을 팔아 얻은 이익에 소득세 20%(과표기준 3억원 초과 25%)를 부과한다. 2022년 주식양도세를 낸 대주주는 7045명이었다. 개인투자자(2021년 1384만 명)의 0.05%다.
권 의원의 주장과 달리 주식양도세 완화가 주가 부양에 실효가 없다는 지적이 많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자본시장 전문가는 “과거 주식시장을 보면 대주주인 개인투자자가 세금을 회피하려고 12월에 보유 주식을 파는 것은 맞지만 이를 국내 기관투자자가 사줘서 실제 주가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여당은 ‘주식시장 활성화’라지만 실제론 ‘총선용’이라는 것을 다 알지 않냐”고 되물었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도 “공매도가 주가 하락의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대주주 기준으로 주가가 하락한다는 논리는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일부 논문(‘소득세법상 상장법인 대주주 요건의 개정이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이나 다른 전문가들은 반대의견을 얘기하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세금 형평성과 정부 정책 신뢰를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급여나 이자 등과 달리 주식엔 거래세만 부과된다. 주식 양도차익을 고소득 계층이 누릴 가능성이 큰데도 대주주를 제외하곤 과세하지 않고 있다. 더욱이 주식으로 손해를 본 사람도 거래세는 내야 해서 세부담 형평성도 저해한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소득 있는 곳에 과세해야 하는 것이 옳은 방향인데다 2025년에 (주식 양도차익에 과세하는) 금융투자소득세를 실행할 상황에서 대주주 기준 완화는 정책의 일관성은 물론 주식시장에서 중요한 예측 가능성과도 어긋난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는 시행령 개정으로 스스로 시행할 수 있지만, 2024년 예산안을 거대 야당과 협의해야 하는 상황에서 부담을 느끼는 눈치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1월12일 한국방송(KBS) <일요진단 라이브>에서 “변화가 있게 되면 야당과 협의 절차가 필요하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에 정부는 상속세 완화도 검토 중이다. 추경호 부총리는 11월1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상속세가 제일 높은 국가이고, 38개국 중 14개국은 상속세가 아예 없다”며 “상속세 체제를 한번 건드릴 때가 됐다”고 말했다. 10월20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늘 논의를 진전시키다보면 ‘부의 대물림’에 대한 반감으로 벽에 부딪힌다. 사회적 논의를 활성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밝혔는데 한 달 뒤엔 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다.
윤석열 정부 첫해인 2022년 법인세와 부동산세를 낮추고, 2023년에는 고소득자가 주로 혜택을 볼 세금 감면을 고려 중이다. 2023년 국세는 기재부의 애초 예상보다 59조1천억원이 덜 걷힐 전망이다. 정부가 쓸 돈이 줄었는데 늘릴 고민 대신 덜 걷겠다는 입장인 셈이다. 강병구 인하대 교수(경제학)는 “윤석열 정부는 대기업과 고액 자산가, 고소득자에 대한 감세로 낙수효과를 보겠다는 것인데 현실에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재정건전성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불평등이 악화해 경제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부자 감세라고 비판하며 횡재세로 맞받아쳤다. 이재명 대표는 11월10일 당 최고위원회에서 “민생 고통을 분담할 수 있도록 횡재세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또 “유가 상승과 고금리 때문에 정유사와 은행들이 사상 최고 수익을 거두고 있다. 정유사는 전년 대비 영업이익이 무려 87.3%, 은행은 올해 60조원을 초과할 것이라고 한다”며 횡재세 도입 필요성을 밝혔다.
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며 이미 유럽에선 도입한 나라가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023년 8월 “30개 이상의 횡재세가 유럽 전역에 도입됐거나 제안돼 있다”며 에너지기업과 은행 등은 물론 제약업체, 식품업체에까지 확산된다고 전했다. 영국은 에너지기업에, 체코와 리투아니아, 스페인, 이탈리아 등은 은행에도 부과하고 있다. 또 포르투갈은 초과이익이 있는 식품 유통업체에, 헝가리는 제약회사와 보험사에도 부담을 지웠다. 반면 미국은 석유회사에 부과하려는 법안은 발의돼 있지만 석유 공급 감소 우려와 조세 왜곡 등을 이유로 아직 도입하지 않았다.
국내에선 횡재세 관련 법인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지만, 지지부진한 상태다. 2022년 8월 이성만 당시 민주당 의원(현 무소속)을 시작으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양경숙 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했다. 2023년 2월 전체회의에 상정됐을 뿐 진전이 없었다. 선거가 다가오고서야 수면 위로 떠오른 모양새다.
전문가 사이에선 현실 가능성에 대해 의견이 엇갈린다. 강병구 교수는 “기업이나 은행이 자신의 노력이 아닌 외부 요인으로 뜻하지 않게 초과이윤을 얻을 때 (횡재세를) 부과하는데, 전쟁·고금리 등으로 이익이 크게 늘어난 에너지기업이나 은행 등에 서민 취약계층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려 한시적으로 부과할 필요는 있다”며 “정치권이 얼마나 의지가 있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반면 이상민 수석연구위원은 “영국 등은 법인세율이 동일한 것과 달리, 한국 법인세는 누진 구조로 대기업 부담이 더 크게 돼 있다”며 “일시적인 세금 부담 확대보단 누진성 강화 등을 논의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또 국회 입법조사처는 ‘횡재세 도입 논의의 현황과 과제’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실효성 측면에서 보면 무리하게 과세권을 확보하기 보다는 해당 업종 기업들의 자발적인 사회공헌활동 확대나 기업 경쟁구조 확립, 유통·거래 관행 개선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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