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뱅크 미리 주는 예금, 이런 상품 개발은 왜 한 거야? (중략) 내부적으로 불안해 보이는데… 돈이 필요한 거야?”(Nk****)
“조삼모사 아녀? 홍보는 확실히 되는 듯.”(sis****)
“어떤 은행이 굳이 선이자 주면서 영업함? 후달리는 뭔가가 있다는 인식을 시장에 주는 순간 악순환 (후략)”(인생무****)
2023년 3월25일 한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글과 댓글의 일부다. 전날 토스뱅크는 ‘이자를 미리 주는 정기예금’ 상품을 출시했다. 일반적으로 정기예금은 만기가 되면 이자를 지급하는데 토스뱅크의 선이자 정기예금은 가입 즉시 이자부터 먼저 주는 상품이다.
이를 두고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뜻밖의 반응이 나타났다. ‘토스뱅크의 자금 사정이 어려워 이렇게 무리해서 예금을 유치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특히 토스뱅크가 최근 파산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처럼 채권에 많이 투자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우려가 이어졌다. 주말(3월25~26일)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토스뱅크 유동성 위기설이 돌자, 3월27일 홍민택 토스뱅크 대표는 한 토론회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유동성 문제는 전혀 없다. 사실 저희 유동성은 너무 많은 편이다. 이런 루머가 왜 나오는지 되게 의아하다”고 말하며 진화했다. 홍 대표는 “이 오해가 어디서 나왔나 보면 시장이 너무 불안하고 은행이 어려움을 겪으니 국내에도 그런 일이 있지 않을까 했을 때 상대적으로 저희가 업력이 작고 젊은 은행이다보니 약간 소비자의 불안감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토스뱅크에서 예금이 대거 이탈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고, 위기설은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소셜미디어로 빠르게 번지는 불안이 디지털금융과 만날 경우 순식간에 예금인출행렬(뱅크런)이 나타날 수 있고 이는 은행 존립을 흔드는 새로운 위협이라는 사실은 분명해지고 있다.
최근 전세계 금융위기 걱정을 키운 실리콘밸리은행의 파산에도 소셜미디어가 자리하고 있다. 미국 스타트업을 주된 고객으로 영업하는 실리콘밸리은행은 2023년 3월8일 오후 채권 투자 실패로 18억달러의 손실을 본 사실과 유상증자를 통한 자본확충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공지했다. 다음날 오전까지만 해도 대규모 예금인출 징후는 없었다. 하지만 오후부터 업무용 메신저인 슬랙, 와츠앱 등에서 ‘실리콘밸리은행의 자금 사정이 불안하다’는 소문이 퍼졌다. 벤처캐피털 회사들이 기업에 “예금보호 한도(25만달러)를 초과하는 돈은 인출하라”고 조언하면서 몇 시간 만에 420억달러 인출 요청이 쇄도했고, 영업 종료 시점엔 현금 9억5800만달러가 부족했다. 은행은 다음날 아침 연방준비제도(Fed)에 “고객 요청에 따른 예금인출 규모가 훨씬 더 클 것”이라 알렸고 그 규모는 1천억달러였다. 하루 만에 1420억달러 인출 요청이 일어났는데, 2022년 말 기준 실리콘밸리은행 예금잔액(1750억달러)의 81%에 이르는 규모다. 연준 직원들은 3월9일 실리콘밸리은행에 수십억달러를 빌려줄 방법을 찾았지만, 1천억달러가 넘는 인출요청액을 감당해줄 수는 없었다. 결국 은행은 10일 오전 폐쇄됐다. 이 모든 일이 48시간도 안 돼 벌어졌다.
이후 금융당국은 은행의 유동성 위기가 소셜미디어로 빠르게 확산됐다고 털어놨다. 마틴 그룬버그 연방예금보험공사 의장은 3월28일 상원 은행위원회 청문회에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증폭된 뉴스에 반응해 자금이 엄청난 속도로 유출될 수 있는 오늘날의 환경에서는 예금을 관리하기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전통적인 뱅크런은 예금자가 은행창구나 자동입출금기에서 돈을 인출하는 현상을 일컬었다. 오프라인으로 돈을 찾기에 예금이 모두 빠져나가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디지털금융이 발달한 현재는 예금자가 은행을 방문하지 않고도 스마트폰 등을 통해 손가락 터치 몇 차례만으로 대규모 예금인출이 일어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체 입출금과 이체 건수 가운데 인터넷뱅킹이 차지하는 비중은 77.7%다. 일평균 인터넷뱅킹 이용 건수(1971만 건)에서 모바일뱅킹(1684만 건)의 비중도 85.4%다. 디지털 뱅크런은 전통적 방식보다 규모가 크고 빠른 속도로 일어나 금융시장에 미치는 충격이 더 크다. 은행이 신속하게 대응하기도 어려워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금융당국은 은행이 충분한 자본을 갖고 자금 부족에 대응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강화했다. 현재 은행은 현금, 국채, 중앙은행 지급준비금 같은 고유동성자산을 ‘향후 30일간 순현금유출액’보다 많이 보유해야 하는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를 적용받는다. 순현금유출액은 은행이 보유한 자산 등을 고려해 ‘예상 이탈률’을 적용해 산출한다. 디지털 뱅크런이 현실화한 상황에서 유동성 평가를 강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 이소영 예금보험공사 리스크총괄부 조사역은 2020년 낸 보고서에서 “글로벌 금융위기와 비교했을 때 현재는 대부분 예금이 인터넷을 통해 즉시 해지되고 이체되므로, 금융의 디지털화를 반영해 유동성커버리지비율 산출시 (자금)이탈률을 더 높게 적용해 유동성 리스크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금융의 디지털화 확산에 따른 금융회사의 유동성리스크 분석 및 시사점’)
마이클 바 연방준비제도(Fed) 부의장은 3월28일 청문회에서 “최근 사건은 변화하는 기술과 새로운 위험에 비춰 은행에 대한 이해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걸 보여줬다. 은행업, 고객 행동, 소셜미디어, 집중화되고 새로운 비즈니스모델 등에 대해 교훈을 분석하고 있으며, 금융안정성에 대한 우리의 생각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불안 확산과 이에 따른 디지털 뱅크런을 원천적으로 방지하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현실적으로 예금보험 한도를 올리는 방안도 거론된다. 현재 한국은 은행이 파산할 경우 고객이 찾을 수 있는 예금 한도가 5천만원이다. 25만달러(약 3억원)인 미국보다 매우 낮다. 민세진 동국대 교수(경제학)는 “뱅크런은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건전한 은행도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예금자보험제도가 유지되는데, 예금보험 한도를 올릴 필요가 있다. 다만 은행이 내는 예금보험료가 고객한테 전가되지 않도록 감독을 함께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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