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0과 23.5 사이에 갇힌 최저임금

최소한 경제성장률·물가인상률 반영하고 ‘고용 축소’ ‘자영업 몰락’ 논리 재검토해야

제1369호
등록 : 2021-06-25 10:45

크게 작게

2021년 6월24일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5차 전원회의에서 사용자위원인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왼쪽)와 근로자위원인 이동호 한국노총 사무총장이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앉아 있다. 노동계는 이날 2022년 최저시급 1만800원을 제안했다. 연합뉴스

2021년 6월24일 최저임금위원회 5차 전체회의를 앞두고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내년 최저임금을 (올해와 똑같이) 동결하지 않으면 코로나19로 인해 고사 직전에 있는 자영업이 폭망할 것”이라고 한다. 민주노총을 포함한 노동계는 “지금이라도 대통령의 ‘최저임금 대선 공약’(2020년 최저시급 1만원 달성)을 지키기 위해서 무조건 23.5% 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여전히 노사는 ‘동결’과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최저임금 틀에 갇혀 있다. 매년 최저임금 인상 결정을 앞둔 시기에 벌어지는 익숙한 풍경이다.

‘고용 효과’ 넓고 멀리 보라
최저임금 결정 수준에 정해진 규칙은 없지만 이념 지향을 떠나 경제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산식은 있다. 다음해 최저임금 인상률은 적어도 예상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두 가지가 반영되지 않으면 최저임금 인상률은 사실상 비합리적으로 결정됐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기준에 따라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내년도 경제성장률 4.0%, 예상 물가인상률 1.8%를 반영하면, 2022년 최저임금은 최소 5.8% 올려야 한다. 아마 이 정도 수준의 최저임금 인상을 말하는 순간, 보수 경제지들은 안 그래도 코로나19로 힘든 자영업자들이 장사를 접을 수밖에 없고 중소기업들은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 일자리를 줄인다고 주장할 게 분명하다.

지난 몇 년간 한국 사회의 여론을 압도했던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 축소와 자영업 몰락 영향은 과연 타당한 분석에 근거했는가?

법정 최저임금으로 만들어지는 불완전 경쟁 시장 아래 고용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먼저 살펴보자.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은 주류 경제학자들은 물론 우리 사회의 통념에 가깝다. 비현실적 가설에 근거한 모델링 분석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개별 기업 차원에서 보면 과도한 임금 인상은 총고용비용을 높여서 필요인력을 줄이게 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 효과의 분석 범위를 특정 노동집단이나 업종에 한정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총고용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하거나, 가처분소득과 실질소비에 미치는 시차효과를 반영하면 부정적 일자리 영향은 반감될 것이다.

다음으로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으로 자영업자의 비용 부담이 늘어나고 수익성이 나빠져 가게 문을 닫을 위험에 빠진다는 주장을 검토해보자.

‘최저임금 인상이 폐업률 낮췄다’는 연구 결과
자본력이 약하고 저가 경쟁에 노출된 영세자영업계의 현실을 고려하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부담스러운 비용 상승 요인이다. 2018년 최저임금이 16.4% 올랐다. 저임금 노동자가 주로 일하는 도소매·유통업, 음식·숙박 개인서비스업, 그리고 아르바이트 일자리가 몰려 있는 영세자영업계는 불만이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자영업자의 어려움이 인건비 문제인지, 부진한 경기 탓인지는 구분해서 봐야 한다.

어쨌든 문재인 정부는 30명 미만 사업장에 사실상 최저임금 인상 상당 부분을 보전해주기 위해 3조원 이상의 일자리안정자금을 투입했다. 더욱이 현금성 지원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았다. 이후 매년 약 80만 개 소규모 사업장과 자영업자에게 그 혜택이 돌아갔다. 그러나 경기가 악화하면서 일자리안정자금의 효과는 반감됐다.

저소득 자영업자의 상황은 더 나빠졌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7년 2분기와 2019년 2분기를 비교했더니 소득 1분위에 해당하는 ‘근로자 외 가구’의 사업소득은 54.9%, 소득 2분위의 사업소득은 22.7%나 줄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집권 이후 근로자 외 가구의 가처분소득도 저소득층일수록 감소 폭이 더 크다. 특히 영세자영업자가 주로 포함되는 소득 1분위와 2분위 근로자 외 가구의 가처분소득 감소율은 2년 새 각각 -21.5%, -16.1%를 나타낸다.

코로나19 이전 시기에 이미 자영업, 특히 영세자영업계는 구조적으로 수익성 위기에 빠져 있었다. 2019년 당시 서울 지역 30평 규모 가게 또는 사무실의 임대료가 무려 월 547만원에 이르고, 생계형 자영업자가 감당해야 하는 대출이자 등 금융비용은 총수익의 20~30%였다.

최저임금 상승이 인건비 증가로 이어져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를 힘들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저임금 노동자의 가구소득과 소비를 증가시켜 고용원이 없는 1인 자영업자의 처분가능소득을 늘리기도 했다.

최근 최저임금 인상이 자영업자의 도산과 폐업을 가속했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실증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2021년 5월28일 한국지역사회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문영만 박사(부경대 고용인적자원개발연구소 연구위원)가 발표한 논문을 보면, 2018년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 수는 2017년 이전 5년 평균치보다 3.4% 늘었지만, 1인 자영업자는 0.5% 줄었다. 그리고 최저임금 인상으로 자영업자에서 비경제활동인구(일할 능력이 있으나 취업할 의사가 없는 학생·전업주부 등)와 실업자로 이동한 비율을 나타내는 폐업률은 2017년 이전 5년 평균치보다 각각 3.6%, 0.4% 줄었다. 따라서 가장 가파르게 오른 2018년 최저임금이 자영업자의 폐업률을 증가시켰다는 주장은 실증적 근거가 부족하다.

내수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려면
올해 최저임금위원회가 뻔한 논리로 핑퐁게임을 반복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2021년 최저임금위원회는 인상률 절대치를 두고 노사가 벌이는 싸움판이 돼서는 안 된다. 코로나19 이후 본격적인 경기회복기에 들어서는 현시점에서 가처분소득과 실질소비의 증가가 내수 진작과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최저임금 인상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상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