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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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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데이트] 가난한 사람은 왜 강남 아파트값에 분노하나

정권별 부동산 공급량과 가격 상승의 관계
등록 2020-08-01 05:58 수정 2020-09-10 01:13

부동산 이슈를 둘러싸고 논쟁은 격화되고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은 네 탓 내 탓 공방을 격렬하게 벌이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중 부동산 공급과 관련된 논의를 해보려고 합니다. 한국감정원 통계를 살펴보면, 노무현 정부에서 26.6% 상승한 전국 아파트 가격은 이명박 정부 12.3%, 박근혜 정부 10.5%, 문재인 정부 2.1%로 상승률이 지속해서 낮아졌습니다([그림1] 검정 선). 하지만 주택 가격은 전국 차원보다는 지역별로 살펴보는 게 더 중요한데, 각 정부의 특성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노무현 정부에선 전체적으로 주택 가격이 빠르게 상승했을 뿐 아니라, 서울이 전국 평균보다 더 높게 올랐고(45.5%) 강남 3구의 상승률은 50%에 육박했습니다. 지방은 전국 평균보다 낮았습니다. 이명박 정부에선 반대로 지방이 아파트 가격 상승을 견인했습니다(36.4%). 반면 서울은 하락했고(-4.3%), 심지어 강남 3구의 낙폭은 더 컸습니다(-12.5%). 박근혜 정부에서는 아파트 가격이 지역별로 큰 차이 없이 모두 올랐습니다. 현 정부 들어 서울은 뚜렷이 아파트 가격이 올랐지만(12.7%), 지방은 하락했습니다(-4.9%). 지역균형발전을 국정의 중요한 원칙으로 삼았던 진보 정부에서 서울과 지방의 격차가 더 벌어진 건 매우 아픈 지점입니다.

“박근혜 9·1 대책이 부동산 가격 상승 불렀다”

최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국회에서 최근 3년간 서울의 주택 공급량이 부족한 것을 인정하면서도, 주택 공급은 인허가에서 입주까지 5~7년 정도 시차가 있기에 지난 정부에서 인허가 물량이 적었던 게 이번 정부에서 공급 부족으로 이어졌고, 2022년 이후(다음 정부에서) 주택 공급이 확대되리라고 답변했습니다. 여기에 참고할 만한 데이터가 있습니다. 과거 주택 공급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택지개발촉진법에 따른 택지의 대규모 지정이었습니다. 1990년대 200만 가구 건설과 전국 각지의 혁신도시를 가능하게 한 제도입니다.

[그림2]에 신규 택지 규모를 표시했는데, 급격히 상승한 것은 노무현 정부 시절입니다. 박근혜 정부에선 신규 택지 지정이 사라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2014년 박근혜 정부의 핵심 주택정책인 ‘9·1 대책’에서 택지개발촉진법 폐지 추진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통한 신규 택지 지정 중단을 선언한 것에 따른 영향입니다. 건설 분야에서 국내 대표 애널리스트인 채상욱은, 이명박 정부 시절 부동산시장 침체(즉, 아파트 가격 하락)는 노무현 정부의 대규모 택지 지정(공급 확대)의 결과이고, 박근혜 정부의 9·1 대책은 사실상 주택 공급 중단을 공식 선언한 것으로 2015년 이후 부동산 가격 상승의 출발점이라고 평가합니다. 보수 정부에서 주택 공급에 적극적이고 진보 정부에서 주택 공급을 소홀히 했다는 속설을, 다른 각도에서 생각할 거리를 줬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주택 공급과 관련해 서너 가지 방안이 제시되는데, 각각은 장점과 단점이 서로 다르니 세심하게 살펴 정책을 펼쳐야 합니다. 첫째는 수도권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후세대에 가뜩이나 부족한 녹지를 더 줄어들게 하고 수도권에서 무한정한 팽창 위험 등을 고려하면 자칫 득보다 실이 더 클 수 있습니다. 둘째는 정부와 공공기관이 보유한 토지와 건물부지에 주택을 공급하거나 신규 택지를 조성해 미니 신도시를 짓는 것입니다. 이는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 등 사회기반시설이 개선된다면 상대적으로 부작용이 덜한 방안입니다.

감정까지 헤아려야 하는 복합적인 부동산 정책

셋째는 재개발·재건축을 통한 공급입니다. 이는 주택의 멸실(공급 감소)과 신규 창출(공급 증가)이 동시에 일어나, 그 자체로 공급은 늘지 않고 용적률만 높여 고밀도 개발을 할 때만 공급의 순증가가 일어납니다. 낡고 오래된 주택을 새 주택으로 개량하는 등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고밀도 개발을 하면 당연히 인근 주택의 가격이 자극받게 됩니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가격을 더욱 불안정하게 할 수도 있으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합니다.

넷째는 장기적으로 국토의 균형발전입니다. 왜 강남에 이주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지역 사람들까지 서울과 강남 아파트 가격에 분노하는지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아무리 고상하게 포장하더라도 부동산은 가계 자산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가장 중요한 자산입니다([그림3]). 부동산 가격은 개인의 노력보다는 주로 국가 정책과 우연적인 요소에 따라 변동합니다. 이 상황에서 자신이 보유한 가뜩이나 낮은 지역의 주택 가격이 더 하락하고, 저 멀리 강남의 아파트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 자산 불평등이 극심해집니다. 그 상대적 박탈감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 점에서 행정수도 이전을 포함해 균형발전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시기입니다.

신현호 경제분석가·<나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한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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