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둥성의 변방 서우광(壽光)시, 불과 20여 년 사이에 빈농이 부농으로 바뀌는 상전벽해가 일어났다. 그 변화를 이끈 주인공은 ‘에너지제로 비닐하우스’였다. 사시사철 난방비 한 푼 들이지 않고 고수익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기적을 이뤄냈다. 농가를 살리면서 지구도 살리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다. 5월25~27일 사흘 동안 ‘채소의 고향’이란 칭송을 받는 산둥성 서우광시를 찾았다.
쉬궈원(54)은 중국 산둥성 소도시인 서우광의 농부다. 고향 시골 마을에서 비닐하우스 두 동을 갖고 농사를 짓는다. 요즘은 길이가 100m에 이르는 3300㎡ 초대형 비닐하우스에서 날마다 가지를 수확해, 30분 거리의 농산물 경매시장으로 보낸다. 비닐하우스 한 동에서만, 모든 비용을 빼고 연 20만위안(약 3400만원)의 순수입을 올린다. 규모가 작은 다른 비닐하우스 한 동(260㎡) 농사와 합치면 연소득이 4천만원에 이른다.
일반 하우스보다 5~10배 순소득쉬궈원은 비닐하우스 두 동을 짓는데 1억원 넘는 돈이 들었다. 그때 빌린 은행 빚을 2년여 만에 다 갚았다. 스마트폰을 눌러 물, 비료, 농약을 공급한다. 쉬궈원과 아내는 서우광 시내에 집도 6채 갖고 있다. 불과 20여 년 만에 그의 삶이 개벽했다. 쉬궈원만이 아니다. 서우광의 12만 채소 농가의 다수가 여유로운 삶을 누린다.
산둥반도 북쪽 바다에 면한 인구 110만의 서우광시. 칭다오 공항에서 북쪽으로 200km쯤 달리니, 끝없는 은빛 바다가 펼쳐진다. 눈이 닿는 곳은 모두 비닐하우스, 바다인지 땅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중국 사람들은 이제 서우광을 ‘채소의 고향’이라 한다. 중국을 넘어 전세계 채소 농업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쉬궈원은 지금도 뼈저리게 가난했던 젊은 시절을 잊지 못한다. 서우광은 땅에 염분이 많아 척박한 곳이다. 논농사는 꿈도 못 꾸고, 고구마와 감자를 주식으로 삼았다. 서우광시 농업전시관의 천솨이청은 “1989년 서우광의 녹색 혁명이 시작됐다”고 했다. “싼위안주 마을의 왕러이(77) 당서기가 17동의 ‘에너지제로 비닐하우스’를 세웠어요. 동북3성의 옛날 ‘축열벽’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연료비 한 푼 들이지 않고 사시사철 농사짓는 길을 찾아낸 거지요. 겨울에도 온실 내부는 20℃를 유지해요.”
왕 서기의 에너지제로 비닐하우스는 낮 동안 태양열을 축적했다가 날이 추워지면 내뿜는 원리를 이용한다. 이를 위해 비닐하우스의 남쪽 면을 따라 두꺼운 진흙으로 길게 ‘축열벽’을 세웠다. 기온이 떨어지는 밤에는, 거적 따위로 비닐하우스를 덮어 열손실을 최대한 막는다. 바이오가스 난방을 보조 에너지로 일부 쓰기도 한다.
에너지제로 비닐하우스의 놀랄 만한 생산성은 실제 농사로 금세 확인됐다. 보통 비닐하우스보다 5~10배 이상의 순소득을 안겨주었다. 서우광 전역에 에너지제로 비닐하우스가 급속도로 보급됐다. 5천만원 이상 들어가는 초기 투자비가 적잖은 부담이 되었지만, 지방정부에서 지원받고 은행에서 저금리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부자가 된 재배 농민들
서우광시의 천융즈 농업부국장은 “1993 ~94년부터 축열벽 비닐하우스 설립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며 “동북3성처럼 추운 지역으로도 많이 퍼져나갔다”고 말했다. “겨울철 오이를 팔면 제철 값의 10배를 받아요. 비닐하우스에서 겨울 농사를 지어 대박을 터뜨렸다는 소문이 난 거예요. 다들 앞다퉈 따라 하는 거죠.” 2000년께부터 서우광시는 에너지제로 비닐하우스 설립 자금 지원을 전면 중단했다. “농민들이 이미 부자가 된 겁니다. 정부 보조금이 필요 없어요.”
그동안 서우광의 에너지제로 비닐하우스도 진화를 거듭했다. 6세대까지는 온도와 습도 관리의 효율성을 지속적으로 개선했다. 2016년엔 아예 축열벽 없이 에너지제로 온실을 구현한 7세대 비닐하우스 개발에 성공했다. 5월26일, 7세대 에너지제로 비닐하우스를 운영하는 종자회사 루서우유한공사를 찾았다. 비닐하우스 내부에 재배 공간이 두 개로 나뉘어 있었다. 서늘한 북쪽 공간에는 음지에서 잘 자라는 느타리버섯이, 후끈한 남쪽 공간에는 고추가 자라고 있었다. 루서우유한공사의 왕원자오는 “북쪽 공간이 남쪽 공간을 위한 축열벽 구실을 하는 셈”이라며 “공간을 많이 잡아먹던 축열벽을 없앴으니 그전보다 토지 활용도가 훨씬 더 높아졌다”고 했다.
에너지제로 비닐하우스의 성공으로, 인구 110만 명의 서우광은 중국을 넘어 세계 채소산업의 플랫폼으로 약진하고 있다. 서우광시의 거수타오 국장은 기자를 거대한 채소물류센터로 안내했다. “여기가 아시아 최대의 농산물 경매시장입니다. 서우광의 채소 농사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려니 물류센터가 꼭 필요하더군요.” 서우광 물류센터는 무려 132만㎡ 규모, 그 공간에서 연간 1천만t의 채소를 유통시키고 있다. 서울 가락시장보다 2.5배 넓고, 처리 물량은 3배나 많다.
대규모 유통센터가 들어서자, 각종 채소산업 업체와 연구소들까지 서우광으로 속속 찾아들었다. 서우광에는 육묘회사 700여 개, 농약회사 3천여 개, 연구소 50여 개가 들어왔고, 네덜란드·이스라엘·스위스 등 다국적 농기업도 여럿 진출했다. 채소 중간상인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거 국장은 “정부에서는 서우광 채소가 그날 베이징 가정의 식탁에 오를 수 있도록 농약 검사도 생략하고 차량의 고속도로 통행료도 면제한다. 서우광 채소의 품질과 안전성을 그만큼 인정한다는 뜻이다”라고 했다. 그는 또 “농가는 생산에 전념하고 기업은 판매와 기술 개발을 책임지는, 그런 협업이 이뤄지면서 강력한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채소산업의 세계적 플랫폼
‘채소의 고향’ 서우광의 또 하나 자랑은 해마다 4월 말~5월 말에 열리는 국제채소박람회다. 2000년에 처음 시작해 올해 19회를 맞았다. 전세계 40여 개국의 농업회사와 연구기관, 2천여 종자회사가 참여한다. 작물 2천 종이 전시되고, 새로운 종자 200종이 출시되며, 100개 이상의 새로운 농업기술을 선보인다. 전세계 채소산업 첨단기술이 한자리에 모이고,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굵직한 농업 거래가 이뤄진다. 서우광은 이미 채소산업의 세계적인 플랫폼으로 등극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참여했던 농림축산식품부의 정혜련 식생활소비정책과장은 “서우광의 채소산업 발전이 경이롭다. 중국 농산물은 품질과 위생이 나쁘다는 고정관념에서 이제 벗어나야 한다. 중국 농업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우광시의 천융즈 부국장은 “서우광 농가에 직접 와서 채소를 먹어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산둥성(중국)=글·사진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국내 에너지제로 온실 개발한 당광유씨
“우리 농가에 널리 보급됐으면…”
어떻게 축열벽 온실을 개발하게 됐나.
한-중 수교 이후 조상의 고향인 서우광을 찾았다가 축열벽 온실을 보게 됐다. 난방비 부담이 큰 한국의 시설재배 농민들에게 큰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아내(공번아씨)와 함께 1998년부터 축열벽 온실 실용화에 매달려 지금까지 왔다. 기본 아이디어는 서우광에서 빌린 셈이다. 관련 특허도 여러 개 받았다.
열대작물인 파파야도 재배했다고 들었다.
영하 15℃에도 온실 내부 온도가 영상 10℃ 이상을 유지하더라. 겨울철 평균 내부 온도가 외부 기온보다 21.7℃나 높게 유지됐다. 그래서 열대작물인 파파야를 심어봤고, 2006년 첫 수확에 성공했다.
지구온난화 시대에 에너지제로 온실은 획기적이다. 서우광 사례는 충분한 경제성도 확인해준다. 농가 보급을 시도해봤나.
10년 전쯤 정부 지원을 신청했다. 하지만 1.5m 두께의 축열벽과 철골 구조물을 세우는 데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그 뒤 2009년에 더 경제적인 온실을 개발하지 않았나.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축열벽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다, 아예 축열벽 없이 온실 내부를 남쪽과 북쪽 둘로 나누면 되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2016년 서우광에서 개발했다는 7세대 온실을 나중에 봤는데, 내 것과 너무 흡사해 놀랍고 신기했다. 기본 설계는 물론이고 북쪽 공간을 버섯 재배로 활용한 것까지 똑같았다. 서로 생각이 비슷했던 모양이다.
당씨는 “서우광의 에너지제로 비닐하우스 재배 현장을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면서 “우리 농가로 두루 보급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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