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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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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 정규직의 은밀한 배당

정규직 직원 모임인 산업은행 행우회,

청소용역 최저임금 미지급 의혹에 배당금 수령 논란까지
등록 2018-05-22 14:11 수정 2020-05-03 04:28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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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178만원 vs 1704만원.

공공기관인 한국산업은행에서 일하는 정규직 금융노동자와 용역회사 여성 청소노동자가 각각 2017년 받았던 임금이다. 평균 연봉 6배 차이로 한국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자사 직원들에겐 최저임금도 안 줬다는 의혹을 받는 이 용역회사가 산업은행의 정규직들에겐 수십억원을 나눠준 정황이 드러났다. 임금 차이로 생긴 불평등이 간접고용이라는 구조 속에 더욱 강화되는 모양새다.

취재 결과, 산업은행의 용역회사인 ‘두레비즈’는 2017년 말 산업은행행우회(이하 행우회)에 45억원을 배당했다. 행우회는 산업은행 정규직 2300명의 모임으로, 각 정규직에게 배당된 돈은 평균 190만원이다. 두레비즈는 주주인 행우회에 배당한 45억원이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두레비즈는 “상법상 주식회사로서 배당은 일반적인 행위”라며 “사회적 약자 배려라는 시대적 요구를 감안해 전액 주주 앞으로 배당하지 않고 4억5천만원은 두레비즈 직원에게, 2억원은 지역 내 복지단체 10여 곳에 기부했다”고 밝혔다. 두레비즈 직원 422명에겐 평균 100만원씩 돌아갔다.

최저임금 위에 배당금

두레비즈 주장과는 달리, 소속 용역노동자들은 거세게 반발한다.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산업은행분회(이하 노조)는 “정규직에게 배당된 45억원 중 일부는 두레비즈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을 주지 않고 착취한 돈”이라고 주장하며 최근 국민권익위원회에 조사를 청구했다.

사안을 이해하려면 산업은행과 행우회, 두레비즈의 삼각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그림 참조). 행우회는 산업은행의 정규직들이 친목과 상호부조를 목적으로 2005년 1월 만든 ‘비법인사단’이다. 행우회는 같은 해 6억원을 출자해 건물 관리·경비·인력·청소·취사·시설·수위 용역 등을 맡는 용역회사 두레비즈를 세웠다. 산업은행의 정규직들이 100% 소유한 두레비즈는 2008년부터 산업은행의 청소·시설 관리 등을 도맡아왔다.

두레비즈의 경영권은 산업은행 전·현직 임직원들이 갖고 있다. 현재 두레비즈 대표는 산업은행 간부 출신 퇴직자다. 사내이사 2명은 산업은행의 현직 인사부 팀장과 총무부 팀장이고, 감사는 산업은행 정규직 노조 간부다. 정부가 100% 출자한 기타 공공기관인 산업은행이, 자사 직원들의 이익에 복무하는 회사에 일감을 맡겨온 것이다.

이 때문에 수년 전부터 특혜 의혹이 제기됐다. 2017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산업은행은 2008년부터 2017년 6월까지 두레비즈와 총 910억원이 넘는 계약을 맺었다. 그중 상당수는 수의계약(비경쟁입찰)이었다. 박 의원은 당시 “두레비즈와 같은 은행 자회사와 수의계약이 불가능하도록 하는 법안이 제출되는 등 국회에서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왔다”며 “산업은행은 이를 무시하고 계속 추가 계약을 맺고 있다”고 지적했다.

꺾기 계약이 아직도…

두레비즈는 매출의 60%를 산업은행에 의존하고 있지만 알짜배기 회사다. 두레비즈가 에 공개한 자료를 보면,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총 매출액 1197억9100만원 중 710억8200만원이 산업은행에서 나온 금액이다. 두레비즈는 같은 기간 한 해 평균 10억6천만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직원 300~400여 명에 불과한 용역회사치고는 매우 높은 영업이익이다. 두레비즈는 2017년 45억원 외에도 2011년 11억8200만원을 행우회에 배당했다.

이런 건실한 회사에서 정작 두레비즈 직원들은 각종 노동 착취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청소미화직은 무급 대기시간을 끼워넣는 이른바 ‘꺾기’ 계약으로 실제 임금이 최저임금 아래였으며, 시설관리직은 가산수당(연장·야간·휴일 수당 등)을 못 받은 채 야간당직 근무를 해왔다는 설명이다.

청소노동자의 근로계약서를 보면 오전 6시 출근, 오후 4시 퇴근으로 돼 있다. 이 중 유급은 6.5시간뿐이다. 나머지 3.5시간은 ‘휴게시간’으로 분류돼 무급이다. 노조는 이런 구분이 편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동안 대법원이 내렸던 판례들을 보면 “작업에 종사하지 않는 대기시간이나 휴식·수면 시간이라 할지라도 근로자가 자유롭게 이용하지 못하고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놓여 있다면 근로시간”이라고 못 박고 있다.

사 쪽인 두레비즈는 휴게시간에 지휘·감독을 하지 않았으므로 근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두레비즈 관계자는 “미화 업무는 정해진 시간에 본인이 맡고 있는 구역을 정기적으로 청소하는 것이 주 업무로 사용자의 지휘·감독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업무”라며 “휴게시간에 대기할 필요성이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실제 휴게시간은 4시간을 줘 근로계약서보다 더 많이 쉴 수 있게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자들의 의견은 다르다. 청소노동자 10여 명은 5월15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앞에서 과 만나 “대기시간에 정규직 직원이나 관리자의 요청이 있으면 쓰레기를 치우거나 화장실을 청소해 제대로 쉬지 못한다”고 입을 모았다. 소장의 허락 없이 마음대로 밖에 다닐 수도 없다고 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의 류하경 변호사는 “대기시간을 늘려 임금을 줄이는 꺾기 계약은 최근 많이 사라졌는데 오랜만에 들어본다. 법적으론 (불법이라고) 명확하게 정리된 사안으로 사용자가 논쟁을 삼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 말했다.

못 받은 임금 3년간 8억5천만원

더구나 청소노동자들은 실제로 대부분 새벽 5시 전에 출근해 한 시간 이상 추가 노동을 해왔다고 주장했다. 일찍 출근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일의 양이 많았기 때문이다. 6시까지 청소를 끝내라고 지시받아, 사실상 조기 출근을 강요받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2018년 현재 두레비즈 청소노동자 기본급은 월 123만2030원이다. 휴게시간 3.5시간 중 1.5시간만 유급으로 인정해도 월 157만3770원(최저임금 7530원 적용)을 받아야 한다. 노조는 “다른 공공기관처럼 정상적으로 공개 입찰했다면 받았을 금액(시중노임단가 + 낙찰율 적용)과 비교해보면 최근 3년간 8억5천만원을 덜 받았다”고 주장했다.

청소노동자뿐만 아니다. 나흘에 한 번씩 야간당직(밤샘) 근무를 서는 두레비즈 시설관리직 또한 임금 다툼이 있다. 두레비즈 사 쪽은 시설관리직이 야간에 “주간과 달리 경미한 근로를 단속적으로 수행하기 때문에 가산수당을 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업은행행우회의 자회사인 IBK서비스에서도 시설직 노동자의 야간당직 근무와 관련해 가산수당 미지급이 정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온 적 있다는 근거도 제시했다.

반면 두레비즈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은 의견이 다르다. 야간당직 근무는 주간 업무의 연장으로 감시·순찰·점검 등을 하며, 문제가 생기면 즉시 조처해야 해 노동강도가 경미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또 야간에 편히 쉴 수 있는 휴게시간이 없고, 잤다는 이유로 시말서를 쓴 직원도 있다. 실제 2015년 4월27일 두레비즈 관리소장이 만든 ‘시설관리 근무기강’ 지침을 보면 “정위치 근무를 지키며” “근무 외 다른 행동(게임, 동영상, 수면 등)을 하지 않게끔 근무 기강 확립”이라고 적혀 있다. 주간 업무의 연장이면 가산수당을 지급해야 하는데, 아직 정확한 금액은 계산하지 않았지만 청소미화직 미지급 임금 추산액보다 훨씬 많다는 게 노조 쪽 주장이다.

그동안은 두레비즈에 노조가 없어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다. 두레비즈 노동자들은 정규직 전환 협의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4월17일부터 4월25일 사이에 100여 명이 서경지부에 가입하고 산업은행분회를 결성했다. 하해성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조직부장은 “진짜 사용자인 산업은행이 근로조건에 대해서 책임지지 않는 것이 근본 문제”라며 “임금 착취와 차별을 없애려면 산업은행이 두레비즈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산업은행이 직접고용하라”

산업은행 관계자는 “두레비즈와 그 직원들 사이에 임금으로 이견이 있는 줄 몰랐다”며 “문제가 있다면 조처할 것”이라고 했다. 정규직전환협의기구에 참여하고 있는 산업은행은 자회사를 새로 만들어 두레비즈 용역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하겠다고 입장을 밝힌 상태다. 두레비즈 노동자들은 자회사가 아닌 산업은행이 직접고용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변지민 기자 d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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