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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받은 ‘조양호 아웃’ 더 센 ‘촛불’이 온다

‘대한항공 갑질 제보방’ 관리자 2차 촛불집회 앞두고 인터뷰…

“관세청 조사는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격” 
등록 2018-05-18 20:04 수정 2020-05-03 04:28
대한항공 전·현직 직원들이 5월4일 서울 광화문에서 ‘조양호 일가 및 경영진 퇴진 갑질 스톱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정용일 기자

대한항공 전·현직 직원들이 5월4일 서울 광화문에서 ‘조양호 일가 및 경영진 퇴진 갑질 스톱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정용일 기자

대한항공 전·현직 직원들이 두 번째 촛불집회를 열었다. 대한항공 전·현직 직원들로 구성된 대한항공 직원연대는 5월12일 저녁 7시30분 서울역 광장에서 ‘2차 조양호 일가 및 경영진 퇴진 갑질 스톱 촛불집회’를 열었다고 밝혔다. 2차 촛불집회에는 대한항공 직원을 포함해 한진그룹 계열사인 진에어 전·현직 직원, 인하대 학생과 교수 등도 참석할 것으로 알려져 1차 촛불집회보다 규모가 커질 듯하다. 5월4일 1차 집회에서는 대한항공 직원 연대 350명, 일반 시민 150명(경찰 추산)이 참석해 촛불을 들고 ‘조양호 아웃’을 외쳤다.

회사 쪽에 신분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 철저히 자신을 숨겨온 ‘대한항공 갑질불법비리 제보방’ 관리자가 2차 촛불집회를 앞두고 인터뷰에 응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1차 촛불집회 때 처음 느낀 동료애 </font></font>

1차 촛불집회를 지켜본 느낌은?
1차 촛불집회는 자발적으로 참여한 직원들만의 힘으로 조금 어설프게 진행됐는데도 세종문화회관 계단이 꽉 들어찰 정도로 많은 분이 와주셨다. 참석한 직원과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우리 힘으로 뭉쳐서 이렇게 무언가를 해낸 적이 없었다. 동료애를 느껴본 일이 없었기에 그날의 의미는 더 컸다.

이전에 집회를 주도해본 적이 없었는데 직접 해보니 어땠나.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고 모든 일(기획, 섭외 등)을 혼자 해야 해서 너무 막막했다. 촛불집회 당일에도 사회자 한 명이 집회 2시간 전에 갑자기 불참을 통보해 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이 단독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시행착오를 겪고도 좋은 결과를 냈기에 더 뜻깊었다. 2차 집회는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더 꼼꼼하게 준비했다.

다른 기업에도 총수 일가의 갑질은 많았다. 하지만 대한항공에서 이렇게 연대가 가능했던 이유는 뭔가.

대한항공은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돼 있다. 이 때문에 파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3대 노조(대한항공노동조합·조종사노동조합·조종사새노동조합)는 모두 회사 쪽 눈치를 많이 보기에 노조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직원들은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고 스스로를 보호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사 쪽은 이를 악용해 쥐어짜기식 경영을 계속했고, 그 불만이 30년 동안 쌓였다. 결국 불만을 표현할 방법이 없는 절박함 때문에 우리가 힘을 모을 수 있었다.

기자들에게 제보 내용을 전달하고 보도 시점을 조율하는 과정이 많이 어려웠다고 들었다.

언론에 대응하는 일이 정말 힘들었다. (메신저 앱) 텔레그램으로 제보가 마구 들어오는 동시에, 수많은 매체의 기자가 접촉해왔다. 사법기관에서도 연락이 왔다. 하루에 3시간 이상을 못 잤다. 이틀 밤을 자지 못한 적도 몇 번 있다. 처음 제보방을 열기 전에 직접 섭외한 매체(6개사) 기자들 외에 다른 분은 받지 않으려 했다. 내 신분 노출과 정보의 기밀성, 제보자의 신분 보호가 이유였다. 이것이 오해를 불러 매체를 차별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게 아니었는데, 너무 힘들었다. 결국 여러 언론사를 입장시키고 제보를 모두 공유했다. 정보가 다 유출됐고, 심지어 제보자가 본인이 특정되는 부분을 가려달라고 한 부분도 그냥 기사로 나갔다. 기자 제보 내용 전달방은 폐쇄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인터뷰를 빌려, 매체 차별이 아니었고 혼자 진행하다보니 감당할 수 없었던 일임을 말하고 싶다.

제보방을 다시 열 계획은 없나. 그리고 아직 공개하지 않은 제보는 어떻게 할 것인가.

제보방은 다시 열 계획이 없다. 공개되지 않은 내용의 유무와 향후 방침은 말할 수 없다. 제보는 앞으로도 받을 것이다.

아직 신분이 드러나지 않았는데 회사 쪽에서 회유 움직임은 없었나.

회유는 아니고 내가 누군지 파악하기 위해, 기자 행세를 하며 내 연락처나 만남을 요구한 적이 몇 번 있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가이 포크스’ 가면은 저항의 상징 </font></font>민주노총과 정당의 개입은 철저하게 반대하고 있다. 그 이유는?

현재 대한항공조종사노조의 상위 단체가 민주노총이다. 그들이 개입하면 역효과만 난다. 순수성을 의심받게 된다. 오로지 우리 힘으로 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우리를 뭉치게 했다. 이 기조를 지속하려 한다. 하지만 언제까지 집회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언젠가는 단톡방(제보방)에 있는 직원들도 한쪽으로 가야 할 상황이 생길 것이다. 단체를 스스로 조직해 대한항공에 정당한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나는 그 직전까지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대한항공 직원들의 제보 이후 수사(경찰) 당국과 관세청의 조처는 어떻게 생각하나.

경찰과 관세청 수사는 아직 진행 중이라 자세한 부분은 언급하지 않겠다. 하지만 너무 시간을 끌고 있다. 이미 증거인멸을 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관세청 조사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다. 압수수색을 당해야 할 세관이 압수수색을 하니 무슨 말을 하겠나.

촛불집회에 악의적인(가면을 벗으라고 요구하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대한항공이 과거 노조 설립을 주도한 직원들을 탄압했던 것을 보면 우리가 왜 익명의 단톡방을 만들고 가면을 쓰는지 이해할 수 있을 거다. 그 상황을 모르는 일반 시민들이 그런 말(가면을 벗으라)을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가이 포크스’ 가면은 저항의 상징이기도 하다.

회사의 긍정적 움직임이나 분위기 전환은 없었나.

전혀 없다. 대한항공 경영진이 그렇게 융통성 있는 집단이 아니다. 오로지 총수 일가의 말 한마디에 좌우되는 꼭두각시들이다.

필수공익사업장 문제를 강조했다. 이를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국회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우리가 관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여전히 대한민국 곳곳에는 고용주와 총수 일가의 갑질에 시달리는 노동자가 있다. 대한항공 사례를 관심 있게 보고 있을 이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대한항공 촛불집회는 지금까지의 노동운동과는 약간 다르게 전개될 것이다. 기존 단체들은 이미 부패해 기댈 곳이 못 된다. 그 단체들을 벗어나 노동자 개개인이 주축이 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추구할 때다. 고인물을 퍼내고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퓨전 노동자 연합이 필요하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상식 통하는 세상 시민과 만들 것 </font></font>앞으로 계획은?

일단 촛불집회와 조양호 회장 일가의 불법 제보를 이어나갈 것이다. 그리고 제보에만 그치지 않는, 좀더 강력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말할 수 없지만 완성을 앞두고 있다.

끝으로 독자와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

단지 한 사기업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마라. 우리나라에서 횡행하는 대기업들의 불법과 갑질 행태에 경종을 울리려 한다. 정의가 바로 서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시민들이 함께하면 좋겠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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