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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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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의 ‘검은 천사’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여직원 동원 ‘황제 놀이’ 논란에 사익 위해 고객에게 손실 떠넘긴 정황도

논란 확산 땐 ‘사회 공헌 금융인’ 이미지 실추 불가피… 회사 쪽 “법적으로 전혀 문제없는 거래”
등록 2018-02-07 16:56 수정 2020-05-02 19:28
세계적 금융회사를 꿈꾸는 미래에셋 금융그룹이 최근 박현주 회장을 둘러싼 여러 논란으로 ‘오너 리스크’를 톡톡히 겪고 있다. 서울 중구 을지로 미래에셋대우 본사 사옥. 연합뉴스

세계적 금융회사를 꿈꾸는 미래에셋 금융그룹이 최근 박현주 회장을 둘러싼 여러 논란으로 ‘오너 리스크’를 톡톡히 겪고 있다. 서울 중구 을지로 미래에셋대우 본사 사옥. 연합뉴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사회 공헌을 많이 하는 금융인으로 알려져 있다. 미래에셋 최대주주인 박 회장은 2010년부터 주식 배당금 전액을 사회 공헌 활동에 기부했다고 한다. 그가 2000년에 설립한 미래에셋박현주재단도 장학사업과 다문화가정 지원 등 다양한 공익 활동을 지원한다. 이는 박 회장의 이미지를 ‘성공한 샐러리맨’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기업인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포장지 구실을 한다.

여직원 골프대회 뒤 새벽까지 술자리

하지만 박 회장은 본업인 회사 경영과 관련해서 숱한 구설에 휘말려 있다. 최근 비영리 탐사보도 전문매체 는 박 회장의 사내 ‘갑질’ 논란을 다뤘다. 는 1월31일 “박 회장이 해마다 여직원 골프대회를 열고 대회에 참석한 여직원들과 함께 새벽까지 술자리를 가졌다. 회사 안에서는 박 회장이 여직원들을 동원해 이른바 ‘황제 놀이’를 즐기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2016년 미래에셋 여직원 골프대회에서 박 회장은 117명의 여직원과 함께 새벽 2시 넘게까지 뒤풀이 술자리를 가졌다. 미래에셋 각 부서와 지점에서 차출된 여직원들은 술자리에서 조별로 장기자랑을 하도록 강요받았고, 박 회장은 현장에서 우승자를 뽑았다고 한다.

박 회장이 여직원들만 불러 운동과 술자리를 즐기고 골프대회 우승자에겐 특진 혜택을 주는 것을 두고 사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고 는 전했다. 는 여직원 골프대회가 열린 강원도 홍천 블루마운틴CC가 박 회장의 가족회사나 다름없고, 골프 비용을 미래에셋 계열사들이 냈기 때문에 전형적인 ‘일감 몰아주기’에 해당한다는 지적도 했다.

미래에셋 쪽은 과 한 통화에서 “( 보도는)사실이 왜곡됐다”고 밝혔다. 미래에셋 관계자는 “골프대회 는 여직원들이 기획한 행사다. 여직원들도 대체로 행사에 만족하고 있다. 일부 불만을 가진 직원들이 사실을 과장해 언론에 제보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사내 행사에 대한 직원들의 선호도 차이가 빚어낸 일종의 해프닝이라는 것이다.

금융계에선 이번 사건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보지 않는다. 그동안 샐러리맨 신화에 가려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박 회장의 여러 ‘아킬레스건’들이 공론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 보는 이들이 있다. 이 가운데 새로운 의혹이 터져나왔다. 미래에셋이 고객자산(신탁재산)과 박 회장의 개인재산(고유재산)을 혼합 운용하면서 투자 손실을 고스란히 고객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논란이다.

‘가족회사’에 이익 몰아주기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2015년 12월28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합뉴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2015년 12월28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합뉴스

서울의 중심 광화문 세종대로 사거리에 있는 포시즌스 호텔은 2006년 미래에셋이 조성한 사모펀드(맵스사모18호)가 개발했다. 당시 펀드의 지분은 대부분 미래에셋생명보험(87.3%)이 갖고 있었다. 보험사는 보험 가입자에게 주는 보험금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가입자가 낸 보험료(고객자산)를 투자해 수익을 내야 한다. 투자 손실은 보험 가입자의 손해로 이어진다.

이 개발 사업은 초기에 난항을 겪었다. 펀드 조성 당시에는 호텔이 아닌 미래에셋그룹의 통합 사옥을 짓는 프로젝트였는데, 인허가 과정이 길어지면서 사업이 속도를 내지 못했고, 덩달아 토지 매입 가격까지 올라 투자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미래에셋생명은 그 손실을 고스란히 부담해야 했다.

그러자 미래에셋은 2012년 사옥 개발 을 호텔 개발로 변경했다. 곧이어 호텔 개발 인허가가 나자 땅값이 급격하게 오르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변동이 없었던 개별공시지가가 2012년 1250만원, 2013년 1360만원으로 소폭 오르더니 2014년에는 무려 3510만원으로 2배 이상 뛰었다. 미래에셋생명은 투자 손실 상태에서 투자 이익 상태로 돌아섰다.

땅값이 급격하게 오르면서 개발이익 기대가 커지자, 개발을 진행한 사모펀드 지분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2012년 3월 초까지 지분이 전혀 없었던 미래에셋자산운용이 10.9%를 사들인 것이다. 미래에셋자산은 박현주 회장 일가가 계열사 우호 지분을 포함해 90% 이상 확보한 일종의 ‘가족회사’다. 미래에셋자산은 땅값이 크게 오른 2014년에는 미래에셋생명의 일부 지분을 사들여 21%까지 지분을 늘렸다. 미래에셋생명이 그동안의 투자 손실을 만회하고 이익을 내기 시작할 때였다.

수상한 지분 변동은 이듬해인 2015년에 일어났다. 그해 10월 포시즌스 호텔이 개장하고 두 달 만인 12월 미래에셋생명은 펀드 지분 30%를 미래에셋자산에 매각했다. 호텔이 본격 개장하며 펀드가 호텔 운영 수익의 일부를 지속적으로 받게 됐는데 그 기회의 일부를 박 회장 가족회사인 미래에셋자산에 넘긴 것이다. 미래에셋생명의 펀드 지분은 39.4%로 줄어들었다.

상하이 빌딩 건설 때도 ‘수상한 딜’

이에 대해 미래에셋 관계자는 에 “미래에셋생명은 당시 거래로 300억원 이상 남겼다. 호텔 운영 수익의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당시 가격 조건이 좋다고 판단해 지분을 일부 넘긴 것”이라고 밝혔다. 한마디로 ‘남는 장사를 했으니 문제없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호텔 운영 수익을 제쳐두고라도 미래에셋생명에 100% 좋은 거래는 아니었다. 2015년 당시 개별공시지가는 2013년보다 3배 가까이 올랐지만, 지분은 2배 오른 가격에 넘겼기 때문이다. 더 비싼 값에 팔 수 있었는데도 박 회장 가족회사(미래에셋자산)의 이익을 위해 포기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 있는 대목이다.

미래에셋생명과 미래에셋자산의 ‘수상한 딜’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미래에셋이 중국 상하이에 미래에셋타워를 짓기 위해 2008년 12월 사모펀드(맵스사모차이나1호)를 설립하자, 미래에셋생명은 이 펀드에 투자하기로 결정하고 27.4% 지분을 확보했다. 하지만 미래에셋생명은 4년이 채 안 된 2012년 3월에 이 지분을 모두 미래에셋자산에 넘겼다. 이것도 미래에셋자산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거래였다.

매각 한 달 전인 2012년 2월 당시 펀드 운용 최고책임자(최창훈 미래에셋자산운용 부동산투자부문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미래에셋타워의 가치가 9천억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미래에셋생명은 그보다 2500억여원이나 싼 6440억원에 지분을 넘겼다. 미래에셋자산의 이익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미래에셋타워의 현재 가치가 1조원을 넘는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에 박 회장 가족회사의 이익은 그만큼 더 늘어난다. 미래에셋 쪽은 “상하이의 부동산 시세가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미래에셋생명이) 지분을 정리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박 회장 일가의 이익과는 전혀 관계없다”고 주장했다.

미래에셋이 브라질 상파울루에 ‘파리아 리마 타워’를 개발하기 위해 설립한 사모펀드(맵스사모브라질1호)의 지분 거래는 박 회장 가족회사의 손실을 피하기 위해 미래에셋생명에 지분을 떠넘겼다는 의심을 받는다. 2010년 8월 이 펀드 설립 당시 지분은 미래에셋자산이 75%로 주요 투자자였고 미래에셋생명은 지분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2012년 2월 미래에셋자산은 보유 지분을 1105억원에 모두 미래에셋생명에 넘기고 400억원의 차익을 거뒀다.

당시 브라질은 헤알화의 급격한 환율 하락으로 투자 자산의 대규모 평가손실이 우려되던 때였다. 미래에셋생명은 헤알화가 큰 폭으로 하락하다가 소폭 재반등했을 때 미래에셋자산의 지분을 사들였다. 환율 변동성이 극심해서 또다시 하락할지 모르는 상황인데도 무모하게 지분을 매입한 것이다.

미래에셋생명은 파리아 리마 타워 지분을 매입한 직후부터 평가손실을 보기 시작했다. 헤알화 환율이 지속적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1헤알에 660원 수준에서 현재 330원 수준으로 50% 이상 하락했기 때문에 평가손실은 550억원을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미래에셋생명의 손실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사모펀드는 운용 내역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손실을 평가할 수는 없지만 비슷한 시기에 설정된 공모펀드와 비교해 투자 손실을 대략 추정할 수 있다.

당시 미래에셋자산이 설정해 운용한 브라질부동산공모펀드(맵스프런티어브라질월지급식부동산투자신탁1호)의 기준가격은 1월16일 현재 395원이다. 이 펀드의 설정일(2012년 2월17일) 당시 기준가 1천원(펀드 기준가는 1천원부터 시작해 특정 기간마다 재평가한다)에 견줘 무려 60%나 떨어진 것이다. 미래에셋생명도 그만큼 투자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이 가능하다.

미래에셋 쪽은 이 거래에 대해서도 “당시 브라질의 환율 변동을 예측한 투자기관은 한 곳도 없었다. 환율이 떨어질 것을 예상하고 미래에셋생명에 손실을 떠넘겼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음해”라고 반박했다. 또 “당시 금융감독원이 1년 동안 강도 높은 조사를 했지만 ‘주의’에 그쳤다. 그만큼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거래였다”고 주장했다.

우연치고는 너무나 수상한

박 회장의 가족회사인 미래에셋자산이 모두 이익을 본 거래에서 그 이익을 보전해준 곳이 공교롭게도 고객의 보험료로 투자하는 미래에셋생명이라는 점은 예사롭지 않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너무나 수상하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금융투자업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투자자의 이익을 해치면서 자신이 이익을 얻거나 제3자가 이익을 얻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또 미래에셋 같은 집합투자업자는 투자자의 재산을 운용할 때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미래에셋 쪽은 박 회장의 이익을 위해 고객재산에 손실을 떠넘겼다는 지적에 강하게 반박했다. 미래에셋 관계자는 “박 회장이 대주주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미래에셋자산에서 주식 배당금을 받은 게 전혀 없다. 다른 계열사에서 받은 배당금은 전액 장학금으로 기부하는 등 사적으로 챙긴 게 없다. 따라서 미래에셋자산의 이익이 곧 박 회장의 이익이라는 주장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 회장이 석연치 않은 계열사 간 거래로 가족회사의 이익을 계속 추구한다면 그의 ‘샐러리맨 신화’와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미지는 더는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포장이 벗겨진 박현주 회장의 민낯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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