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알을 낳는 거북이’는 어디로 갈까. ‘황금알을 낳은 거북이’ 금호고속의 매각 향방은 재벌이 경영 실패로 내놓은 계열사를 다시 사모아 권좌에 오를 수 있는지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지난 2월1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고속터미널 9층에선 금호고속 직원들과 사모펀드가 고용한 용역업체 직원들 사이에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용역을 동원한 사모펀드는 금호고속 주식을 100% 가지고 있는 IBK투자증권-케이스톤 사모펀드(이하 IBK펀드)였다.
용역직원들은 사무실 잠금장치를 열고 IBK펀드가 선임한 신임 공동대표들과 함께 임원실로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신임 대표들은 지난해 11월 선임된 뒤 금호고속 직원들의 반대로 그동안 출근을 한 차례도 못했다. 금호고속 직원들은 다시 이들을 끌어내려 했고 이 과정에서 여러 명이 다쳤다. 결국 지난 2월2일 새벽 금호고속 직원들은 신임 대표와 용역직원들을 밀어냈다.
지분 100%를 가진 회사 소유주와 직원 사이의 충돌은 보기 힘든 특이한 일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기 위해서는 금호고속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금호고속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이하 금호그룹)을 있게 한 모태기업이다. 금호그룹 창업주인 고 박인천 회장이 1948년 세운 광주여객(광주고속)을 기반으로 시작했다. 당시 금호고속의 로고는 ‘거북이’였다. 거북이를 단 광주고속은 호남 지역의 고속버스 노선을 대부분 차지하며 알짜 기업으로 꾸준히 성장했다. 1993년 광주고속은 금호고속으로 이름을 바꾸며 거북이 로고를 뗐다. 이후 금호그룹은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인수하며 급격히 성장했지만 이들을 인수할 때 든 빚이 ‘부메랑’으로 돌아오며 박삼구 회장은 그룹을 내놓을 위기에 처했다.
유동성 위기에 빠진 금호그룹은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토해내는 것도 모자라 계열사들을 팔아 자금을 마련한다. 금호고속 역시 2012년 8월 대우건설 주식의 일부, 서울고속버스터미널과 함께 패키지로 IBK펀드에 팔린다. IBK펀드는 9500억원을 들여 이들을 샀고, 금호그룹은 매각대금 가운데 1500억원을 펀드에 다시 출자해 금호고속에 대한 경영권과 매각 때 우선매수청구권을 받았다. 금호고속은 그룹의 모태기업이지만 주력 계열사로 성장한 다른 회사를 위해 팔린 셈이었다.
금호고속의 경영권과 주식을 나눠가진 금호그룹과 IBK펀드의 ‘평화’는 지난해에 깨졌다. 금호리조트에 자금을 넣는 유상증자에 금호그룹이 선임한 김성산 금호고속 대표가 참여하지 않으면서, 금호고속이 가진 금호리조트 지분은 50% 아래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금호고속은 금호리조트 주식 50%를 가지고 있어 유상증자에 참여해야만 지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 금호그룹은 유상증자에 75억원을 투자해 자산 5283억원의 금호리조트를 다시 계열사로 편입시켰다.
IBK펀드는 반발했다. 금호리조트의 경영권을 가지고 있는지는 금호고속의 가치에 영향을 끼친다. 금호고속을 더 비싼 가격에 팔아야 할 처지인 IBK펀드에는 악재였다. IBK펀드는 김성산 대표를 해임하고 새 공동대표를 선임했다. 하지만 새 공동대표는 직원들의 거부로 회사에 들어가지 못했다. IBK펀드는 경영권을 행사하지 못했고 2015년 8월까지 해야 할 금호고속 매각 작업은 차질을 빚었다. IBK펀드 쪽은 금호그룹 쪽 직원들의 방해로 실사와 자료 제출 등 입찰 과정을 진행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금호고속 직원들의 입장은 단호하다. 양동수 금호고속 우리사주조합장은 “새 대표의 선임은 사모펀드가 원하는 방향으로 회사를 매각하는 절차를 밟기 위해서다. 사모펀드가 비싼 값으로 회사를 팔면, 우리를 새로 취득한 회사는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할 것이다. 직원들의 고용이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장에 나올 금호고속의 가치는 매각 당시 금액인 331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투자 업계는 예상한다. 금호고속은 2013년 매출 3762억원, 영업이익 535억원을 기록했다. 2012년 영업이익도 518억원에 이른다. 금호고속은 매해 수백억원의 이익을 내는 ‘캐시카우’기업이다.
양 조합장은 금호고속이 우선매수권을 가진 금호그룹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금호고속을 3310억원에 넘긴 것은 나중에 경영권을 되찾아오기 위해 헐값에 준 것이었다. 사모펀드는 인수할 때 든 차입금 2300억원도 회사 합병을 통해 금호고속에 떠넘겼다. 배당금도 200억원을 받았다. 원래 약속대로 금호그룹에 적정한 가격에 팔아야 한다.”
IBK펀드 운용을 맡는 IBK투자증권의 김은정 커뮤니케이션팀장은 “3300억원을 말하는 것은 그쪽의 계산법이고 우리는 입장이 다르다”라고 말한다. “지난해 8월 매각 제한이 풀렸고 공개입찰을 통해 높은 가격이 나오면 우선매수청구권을 가진 금호그룹이 살지 말지를 결정하면 된다. 그런데 자료 협조가 안 돼 실사가 진행되지 못했고 입찰이 무산된 책임은 금호그룹 쪽에 있다.”
사모펀드가 금호고속에 떠넘겼다는 차입금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인수자라면 실사를 통해 부채를 포함시켜 적정한 가격을 산정하면 된다. 문제될 일이 아니다”라고 김은정 팀장은 설명했다. 신성호 IBK투자증권 사장은 2월3일 와의 인터뷰에서 “금호고속의 주장대로 사모펀드의 경영권 행사가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에서 사모펀드를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사모펀드는 기업을 인수해 투자 수익을 얻기 위해 모인 돈이다. IBK펀드 역시 금호고속 매각으로 수익을 얻어 투자자에게 돌려줘야 한다. 금호고속을 인수할 때 함께 사왔던 대우건설 주식은 샀을 때보다 값이 떨어진 상태다. 이를 벌충하려면 가급적 비싸게 팔아야 한다.
더구나 이 펀드에는 공적자금도 투입됐다.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가 수백억원씩 투자했다. 이 자금은 당시 금호그룹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쓰였다. 만약 금호고속이 적정한 가격보다 낮게 매각된다면 국민의 세금이 박삼구 회장이 계열사를 되찾는 데 도움을 준 선례가 된다. 금호그룹의 다른 계열사들 역시 유동성 위기가 생겨났을 때 은행들이 출자 전환으로 떠앉은 지분의 매각을 올해 기다리고 있다. 금호산업의 경우 2010년 이후 채권단 지원 금액만 5조9543억원에 달한다.
금호그룹의 사정을 아는 한 관계자는 “금호고속 매각 과정에서 잡음이 나는 것은 금호그룹에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금호는 금호고속 외에 금호산업 인수전도 앞두고 있다. 매각이 쉽지 않은 것을 보여주면 금호산업을 인수해 투자수익을 얻으려는 재무적 투자자(FI)에게 ‘들어오면 낭패 본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 또 금호고속 매각을 금호산업 인수 뒤로 최대한 미뤄야 한다. 금호그룹이 두 곳을 한꺼번에 인수하려면 드는 자금이 만만치 않다.”
금호고속 인수전은 금호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인 금호산업 인수를 앞둔 전초전이라는 설명이다. 2010년 워크아웃(기업구조 개선 작업)에 들어간 금호산업은 채권단이 올해 지분 57.6%를 매각하기로 했다. 은행이 경영 부실에 빠진 금호산업의 빚을 떠안았던 출자 전환 지분이다. 박삼구 회장 쪽의 지분은 10.62%에 불과하다.
채권단은 지난 1월15일 국내 대기업 40곳과 사모펀드 20곳에 투자안내서를 보냈다. 투자안내서는 “국적항공사를 인수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투자를 권유했다. 금호산업은 아시아나항공의 지분 30.08%를 가진 최대주주다. 금호산업을 인수하면 아시아나항공의 주인이 될 수 있어 올해 인수·합병(M&A) 시장의 최대 매물로 꼽힌다. 금호산업의 매각 가격은 1조원을 넘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 때문에 박삼구 회장은 다급하다. 박삼구 회장은 채권단 보유 지분 가운데 ‘50%+1주’에 대한 우선매수청구권을 가지고 있지만, 가격이 너무 높게 올라가면 자금 마련이 어렵다. 자금을 마련하더라도 대우건설 인수 때처럼 감당하기 힘든 ‘빚’을 짊어질 우려도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인수 전략은 차질 없이 준비하고 있다. 경쟁자들이 나올 테지만, 우리는 우선매수청구권도 있고 금호고속과 금호산업은 반드시 인수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금호그룹의 향방을 가늠할 금호고속 인수전은 이미 시작됐다. IBK펀드는 다음달 금호그룹 쪽에 금호고속 우선매수청구권 행사가격 등 매각 조건을 제안할 예정이다. 김은정 IBK투자증권 팀장은 “경쟁입찰이 무산돼 다른 방식으로 가격을 산정해 금호그룹 쪽에 제안하고, 만약 인수를 못하겠다고 하면 우선권이 소멸된다”고 설명했다.
양동수 금호고속 우리사주조합장은 ‘한번 경영에 실패했던 사주인 박삼구 회장에게 회사가 돌아가는 게 괜찮으냐’는 질문에 “금호고속은 금호그룹의 모태기업으로 직원들의 로열티(충성심)가 강하다. 그룹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금호고속의 가치는 지금이 가장 높을 가능성이 있다. 금호고속이 주로 수익을 올리는 노선은 호남선이다. 서울과 전남북을 잇는 호남선에는 올해 4월 새 고속철도 KTX가 개통한다. 한국교통연구원이 발표한 연구 결과를 보면, 호남고속철 개통 때 서울~광주 구간의 고속버스에서 KTX전환율이 37.6%로 나타났다. 고속버스 이용객 100명 가운데 37명이 버스 대신 KTX를 이용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서울~목포 구간의 KTX전환율은 49.5%로 절반에 이른다. 올 하반기부터 금호고속의 매출액이 꺾일 가능성이 크다. 양동수 우리사주조합장도 “우리는 큰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했다. 그러나 경영권을 두고 분쟁에 빠진 회사는 미래를 준비할 여력이 없다.
금호그룹 계열사 지분 매각은 처음부터 잘못된 단추가 끼워졌는지 모른다. 금호고속뿐만 아니라 금호타이어 등 다른 계열사들도 재벌의 무리한 인수·합병의 뒤탈로 투자가 멈췄다. 정부와 채권단은 부실화된 금호그룹 계열사를 정상화하면서 옛 사주가 경영에 복귀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줬다. ‘재벌 옹호’라는 비판 속에 남겨준 여지는 결국 금호고속 매각 등 공적 자금을 회수하는 작업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경영권을 가진 금호그룹 쪽이 정상적인 지분 매각 작업을 방해한다고 볼멘 주장을 해도 이는 채권단이 자초한 일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이야기는 거위 뱃속에 황금이 더 있을 거라는 주인의 욕심 탓에 좋지 않은 결말로 끝났다. ‘황금알을 낳는 거북이’는 어떻게 될까.
이완 기자 wani@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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