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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돌아와 마주 앉다

화면 키운 애플 ‘아이폰6플러스’, 금속 소재로 감싼 삼성 ‘갤럭시알파’…

변하지 않을 것 같던 두 기업, 소비자 욕구 앞에 고집 꺾어
등록 2014-09-18 15:29 수정 2020-05-03 04:27

“오늘, 우리는 아이폰 역사상 가장 진보된 제품 두 종류를 선보입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의 입을 떠난 새 아이폰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폰6’과 ‘아이폰6플러스’였다. 화면은 커졌고, 맵시는 날렵해졌고, 성능은 강력해졌다. 모바일 결제 기능도 처음 도입됐다. 새 아이폰은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그 자체로 만족스럽고 매력적이었다. 아이폰을 밀착 마크하는 ‘애플워치’를 만나는 재미는 차치하고라도.

화면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은 두 기업

애플 제공, 삼성전자 제공

애플 제공, 삼성전자 제공

반갑고도 허전했다. 아이폰이 어떤 제품인가. 애플의 고집이 응축된 진액 아닌가. 2007년 7월, 첫 아이폰을 공개한 이후 애플은 7년이 지난 지금까지 화면 크기에 대한 고집을 꺾지 않았다. 3.5인치. 명함 크기보다 조금 작은 이 화면에 애플은 모든 ‘스마트’한 기능을 욱여넣었다. ‘스마트폰은 한 손으로 쥐고 조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고 스티브 잡스 창업주의 철학을 애플은 고집스레 지켜왔다. ‘아이폰5’부터 화면이 4인치로 커졌지만, 길이만 늘어났을 뿐 가로폭은 변함없었다.

그런 애플이 고집을 꺾었다. 새로 공개된 아이폰6은 4.7인치 화면을 달았다. 아이폰6플러스는 한발 더 나아갔다. 화면 크기가 5.5인치다. 흔히 보는 대화면 안드로이드폰, ‘패블릿’과 다르지 않다. 아이폰에 5.5인치 화면이라니, 이건 애플 역사에 기록될 변화다. 한국시각 9월10일 새벽 2시7분, 애플은 엄지손가락 하나로 화면 전체를 조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집착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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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애플의 모습에 삼성전자가 겹쳐진다. ‘마트료시카’. 생김새는 똑같고 크기만 다른 인형이 겹겹이 들어 있는 러시아 전통인형을 일컫는다. ‘갤럭시’ 시리즈가 그랬다. 삼성전자는 억척스러울 정도로 스마트폰 화면을 두고 다양한 실험을 거쳤다. 갤럭시는 화면 크기와 비율, 해상도를 쉴 새 없이 바꾸는 변검술사였다. 이런 삼성전자를 두고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만들어봤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그렇게 갤럭시 시리즈는 시장에서 직접 부딪히면서 이용자의 요구를 빨아들이며 성장했다. ‘패블릿’으로 스마트폰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더 큰 화면과 높은 해상도는 삼성 스마트폰의, 더 나아가 스마트폰의 가치 중 하나가 됐다.

2011년, 삼성이 처음 ‘갤럭시노트’를 내놓았을 때만 해도 모두가 ‘엄청난 화면 크기’에 놀랐다. 그 크기가 5.3인치였다. 이제는 5.5인치 스마트폰이 커 보이지 않는 시대다. 큰 스마트폰에 익숙해진 이용자는 애플에도 더 많은 걸 요구하기 시작했다.

애플이 변화하는 지점도 여기다. 잡스의 애플은 소비자 욕구를 앞질러 보여줬다. 팀 쿡의 애플은 다르다. 목마름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물꼬를 튼다. 그런 만큼 소비자가 느끼는 해갈의 기쁨도 배가된다. 그 ‘타이밍’이 절묘하다. 애플은 독자의 요구에 귀를 틀어막지 않는다. 지금 바로 응답하지 않을 뿐이다. 애플은 이번에도 가장 극적인 순간에 ‘큰 아이폰’에 대한 갈증을 풀어줬다. 삼성전자와의 교집합도 그만큼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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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 옷 입기 첫발 떼자 또 한 걸음 도망

애플이 화면 크기로 삼성에 한 발짝 다가섰다면, 삼성은 휴대전화 소재로 변화를 모색했다. 애플은 금속 재료를 가장 잘 다루는 제조사 중 하나다. 특히 제품 전체를 산화알루미늄으로 찍어내는 ‘유니보디’ 공정은 애플의 고급화를 포장하는 상징과도 같다.

삼성은 달랐다. 고급형 스마트폰에도 플라스틱 소재를 고집해왔다. 플라스틱은 대량의 제품을 값싸고, 쉽고, 빠르게 생산하기에 제격인 질료다. 삼성은 이 플라스틱에 디자인 요소를 가미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테두리를 금속처럼 가공하고, 뒤판을 조약돌처럼 만들고, 가죽 느낌을 살린 바느질 자국을 넣었을 때도 소재는 변함없이 플라스틱이었다. 온갖 의도의 제품을 쏟아내던 삼성전자지만 의외로 금속 소재에는 인색했다.

그런 삼성이 올가을, 금속을 품었다. 애플처럼. 애플에 며칠 앞서 9월 초 공개한 ‘갤럭시알파’는 삼성폰 가운데 처음으로 금속 테두리를 둘렀다. 4.7인치 화면에 두께는 6.7mm다. 흡사 ‘아이폰5S’를 망치로 살짝 두드려 편 모습이다. ‘다이아몬드 커팅’ 방식으로 금속 테두리를 처리한 것도 아이폰5S를 쏙 빼닮았다.

스마트폰은 단순한 통신기기를 넘어 액세서리이자 나를 표현하는 도구다. 그 ‘고급화’의 욕구를 채우기엔 플라스틱은 한계가 너무나도 뻔했다. 삼성은 이제 첫발을 뗐고, 애플은 아이폰6으로 또 한 걸음 도망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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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은 애플만을 위한 맞춤복이었던가. 요즘 삼성전자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지난 9월3일 독일에서 처음 공개된 ‘갤럭시노트 엣지’를 보자. ‘갤럭시노트4’와 함께 공개된 이 제품은 스마트폰 화면 오른쪽 끝을 살짝 구부렸다. 평소처럼 평면 화면을 쓰면서 구부러진 화면으로는 시간을 확인하거나 메시지를 읽고, 제어 버튼으로도 활용한다. 지금껏 보지 못한 삼성의 디자인 변화가 도드라진 제품이다.

변하지 않을 것 같던 두 기업이 올가을, 큰 고집을 하나씩 꺾었다. 애플은 화면 크기를 풀었고, 삼성은 금속 소재를 품었다. 각자 고집하던 영역만으론 시장을 확장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접근법이 각 기업의 성격을 반영하긴 하지만, 양쪽 다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삼엽충’ ‘앱등이’ 모두 소비자

삼성전자와 애플, 갤럭시와 아이폰, 안드로이드와 iOS는 다른 듯 닮아간다. 운영체제(OS) 완성도 면에서도 iOS와 안드로이드는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제3의 경쟁자가 끼어들 틈이 없을 정도로 둘은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다. 스마트폰 하드웨어로 애써 차이를 가려보는 일도 의미 없다. 이제 둘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기준은 ‘스펙’이 아니라 ‘취향’이다.

양극단에서 평행선을 달리던 둘이 언제부턴가 마주 보며 달려오고 있다. ‘삼엽충’과 ‘앱등이’. 두 기업 골수팬들이 상대를 폄하해 부르던 이 말이 시나브로 ‘소비자’란 한 단어로 수렴하는 모양새다. 소비자가 욕망하는 제품을 거부할 수 있는 기업은 없다. 둘은 너무 멀리 돌아왔다.

쿠퍼티노(미국 캘리포니아)=최호섭 기자 allove@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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