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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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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은 막막, 안은 깝깝

정권 바뀌고 “그냥 안 넘어갈 것”이라던 ‘친MB 기업’ 롯데·효성…

검찰·국세청·금감원 찍어누르기와 형제간 지분 다툼으로 시끌
등록 2014-07-23 14:55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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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차례는 롯데랑 효성이 될 것 같다.”

지난해 7월 사석에서 만났던 10대 그룹의 한 최고위층 인사의 예상은 적중했다. 당시는 검찰이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탈세 혐의에 대해 한창 수사 고삐를 죄고 있을 때다. 박근혜 정부와 검찰이 CJ 다음으로 어떤 기업을 손보게 될까를 물었더니 나온 대답이다.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가깝던 기업인데다 (당시 대통령이 강조했던) 경제민주화 화두에 걸리는 게 많아서 그냥 안 넘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애물단지 된 숙원사업, 제2롯데월드

해당 기업들은 억울해하지만 롯데와 효성은 ‘친MB 기업’으로 꼽힌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위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의 큰아버지다. 조 회장이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을 지내는 바람에, 효성은 진짜 사돈(한국타이어)보다 더 자주 ‘사돈기업’으로 입에 오르내렸다. 롯데그룹은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때 20년 넘은 숙원사업이던 제2롯데월드의 최종 건축허가를 받아냈다. 이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국방부 장관을 질책하며 제2롯데월드 문제 해결을 지시했고, 인근 성남공군기지 활주로 방향을 변경해 최종 허가를 내주었다. 국내 최고 높이인 지상 123층(555m)에 이르는 건물의 안전성, 군사안보 논란 등은 ‘비즈니스 프렌들리’ 구호에 묻혔다. 특혜 의혹이 일었다.

롯데와 효성이 요즘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정권이 바뀐 뒤 검찰·국세청·금융감독원 등이 밖에서 차례대로 찍어누르고, 내부에서는 형제간 지분 다툼으로 시끄럽다. 그동안 곪아 있던 것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는 모양새다.

한때 ‘잘나가는’ 롯데의 상징이었던 제2롯데월드가 최근 애물단지가 돼버린 게 단적인 예다. 서울시는 지난 7월17일 “제2롯데월드 저층부를 임시로 사용하려면 미비 사항을 보완하라”고 롯데 쪽에 통보했다. 지난 6월 롯데 쪽이 2016년 완공에 앞서 명품관 등 제2롯데월드 저층부를 미리 개장하겠다며 낸 임시사용승인 신청에 퇴짜를 놓은 것이다. 지난해부터 공사 현장에서 인부 2명이 숨지고 화재가 발생하는 등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은데다, 저층부를 임시 개장하면 잠실역 사거리의 교통체증이 심해질 것을 서울시 쪽은 우려했다. 그동안 서울 송파구 잠실 인근 지역 주민들과 지역 시민단체들은 ‘석촌호수 물이 줄어든다’ ‘도로가 침하되는 싱크홀 현상이 나타난다’며 제2롯데월드 임시개장을 반대해왔다. 이에 서울시는 도시·건축·소방방재·교통 전문가와 시민단체, 지역주민 등으로 23명의 시민자문단을 구성해 지난 한 달여간 제2롯데월드 현장점검 등을 진행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민원사무처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교통 개선 대책, 공사장 안전 대책, 피난·방재 대책 등을 보완하라고 했다. 미비 사항을 보완하는 데 정해진 기간은 없다”고 말했다.

롯데그룹은 뒤늦게 영국의 엔지니어링 업체인 ‘아룹’에 지반 침하 현상 등에 대한 조사를 의뢰하고 한국지반공학회에도 조사를 의뢰할 계획이지만, 제2롯데월드의 안전을 둘러싼 논란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금감원, 조석래 회장 ‘해임’ 권고 강수

최근 검찰의 롯데홈쇼핑 비리 수사 건으로 가뜩이나 뒤숭숭했던 롯데그룹의 내부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앞서 검찰은 신헌 전 롯데홈쇼핑 대표를 비롯한 임직원 10명이 납품업체로부터 2007~2014년 수억원의 뒷돈을 받았다는 수사 결과를 지난 6월23일 발표하고, 신헌 전 대표 등을 기소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이후 열린 사장단 회의에서 격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그룹은 지난해부터 롯데호텔, 롯데쇼핑 등 핵심 계열사가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아 800억원대의 추징금을 통보받은 바 있다.

롯데그룹 계열사의 한 임원은 “제2롯데월드 허가 당시엔 워낙 첫 번째도 경제, 두 번째도 경제를 앞세우던 때라 송도 등의 초고층 빌딩 허가가 여러 건 났다. 일개 기업이 로비해서 허가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롯데가 이명박 전 대통령과 친·인척 관계에 있는 것도 아닌데 회사 내부에선 (친MB 기업으로 몰아가는 걸) 억울해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효성그룹도 비슷한 분위기다. 지난 7월9일 금융감독원은 조석래 회장과 이상운 부회장에게 ‘해임’을 권고했다. 재벌그룹 총수에게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라고 금융 당국이 중징계를 내린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효성이 1998년 계열사를 합병하면서 장부를 거짓으로 꾸미고, 이후 2006년부터 조작된 재무제표를 제출해온 데 대한 책임을 물은 것이다. 이에 앞서 검찰도 분식회계를 통해 탈세·횡령 등 비리를 저지른 혐의로 조석래 회장과 아들인 조현준 사장 등 임직원 5명을 불구속 기소한 바 있다. 해임 권고에 대해 효성그룹 쪽은 “재판이 진행 중인 만큼 결과를 지켜본 뒤 판단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석래 회장의 둘째아들 조현문 전 부사장이 효성그룹 계열사인 부동산 관리 전문회사 트리니티에셋매니지먼트(트리니티)와 (주)신동진의 최현태 대표를 배임과 횡령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지난 6월 고발한 사실이 최근 드러나기도 했다. 이 회사에는 조현문 전 부사장의 형인 조현준 사장과 동생인 조현상 부사장이 대주주로 있어, 사실상 형제간 갈등이 검찰 고발로까지 이어진 셈이다.

조현문 전 부사장 쪽은 “트리니티가 조현준 사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갤럭시아일렉트로닉스에 자금을 빌려주는 과정에서 회사에 66억7천만원가량의 손해를 입혔고 신동진도 부실 계열사인 더프리미엄효성(당시 남양모터스)의 주식을 액면가 이상으로 인수해서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한다. 이같은 회사의 손해가 조현준 사장과 조현상 부사장의 이익으로 이어졌다는 게 조현문 전 부사장 쪽의 주장이다. 조현문 전 부사장은 지난해 회사 지분을 모두 처분하고 부사장직에서 물러나면서 회사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재계에서는 그룹 후계 구도를 둘러싼 형제간 권력다툼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관측한다. 조석래 회장이 뒤늦게 갈등을 봉합하려 조현문 전 부사장의 집을 여러 차례 찾았다가 아들을 만나지도 못하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효성의 한 관계자는 “트리니티와 신동진 건은 지난해 조현문 전 부사장이 회계장부 열람 소송을 냈던 사안인데 무슨 목적으로 또다시 형사고발장까지 낸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긴장감에 날 선 롯데·효성의 형제들

롯데그룹에서도 형제간 경쟁이 나타날 조짐이 엿보인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형인 신동주 롯데홀딩스 부회장은 올해 들어 롯데제과 주식을 계속 사들여 지분율이 지난해 3.69%에서 올해 7월 초 3.89%로 높아졌다. 신동주 부회장은 일본에 머무르면서 일본 쪽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신동빈 회장의 지분율은 5.34%, 아버지인 신격호 총괄회장의 지분율은 6.83%다. 롯데제과는 ‘롯데제과→롯데쇼핑→롯데알미늄→롯데제과’로 이어지는 롯데그룹 순환출자 구조의 핵심 연결고리가 되는 계열사로, 그룹의 모태기업이기도 하다. 올해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92살,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은 79살이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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