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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말’ 털어놓은 적 없는 이재용 부회장, 삼성 경영권 확보 위해 적극적 행보 나설 듯
등록 2014-05-20 14:38 수정 2020-05-03 04:27
지난 5월13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리움미술관’ 앞에서 삼성전자 제품 애프터서비스(AS) 기사들이 집회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와 근로계약을 맺고 있지만, 실제 고용주는 삼성전자서비스라고 주장하며 지난해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를 결성했다. 이들은 이날 리움미술관 근처에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자택 앞에서도 기습시위를 벌였다.

지난 5월13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리움미술관’ 앞에서 삼성전자 제품 애프터서비스(AS) 기사들이 집회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와 근로계약을 맺고 있지만, 실제 고용주는 삼성전자서비스라고 주장하며 지난해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를 결성했다. 이들은 이날 리움미술관 근처에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자택 앞에서도 기습시위를 벌였다.

삼성을 향한 눈은 이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더욱 쏠리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 총수 일가 가운데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에버랜드 지분(25.1%)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 또 이건희 삼성 회장의 맏아들이다. 재벌은 한국 사회에서 보수적인 문화를 가진 곳 가운데 하나다. 이를 짚어보면 ‘포스트 이건희’ 시대에 이재용 부회장이 계열사 75개, 임직원 42만 명, 연간 매출 330조원 규모의 삼성그룹을 이끌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평범한 생활 잘 모르는 예의 바른 황태자

하지만 그간 이재용 부회장이 본인의 생각을 공개적으로 밝힌 적은 거의 없다.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을 따져 가장 중요한 인물로 떠오르는데 말이다. 이 부회장은 그동안 공식 기자회견이나 제품 발표회에 나서 ‘자신의 말’을 속시원히 털어놓은 적이 없다. 그는 항상 아버지 이건희 회장의 몇 발자국 뒤에 서 있었다. 이런 이 부회장을 두고 은 5월14일 “언론 노출을 꺼리는 후계자”라고 했다.

2010년 삼성그룹을 출입했던 김경락 기자는 이 부회장이 그룹 내 경영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가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했다. 대신 이 부회장의 인간적인 면모를 알 수 있는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했다.

“2011년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장례식이 있었다. 당시 장례식장에 이재용 부회장도 오고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도 왔다. 정의선 부회장이 조문을 하고 나올 때 기자들이 몰려들어 질문을 던졌는데, 정 부회장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재용 부회장은 달랐다. 이 부회장은 질문을 잘 받아쳤다. 마치 외교관 같았다.” 김 기자는 “사실 정 부회장처럼 당황하는 게 정상적이다. 이 부회장은 (어떻게 대응할지) 컨설팅을 굉장히 잘 받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관리의 삼성’이라는 그룹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12년 삼성그룹을 출입했던 김진철 기자 역시 “이 부회장은 성격이 좋고 소탈하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했다.

삼성에서 고위 임원에 올랐다가 삼성 비자금 사건을 폭로했던 김용철 변호사에게도 물었다. 김 변호사는 2010년 낸 는 책을 통해 “이재용은 보통 사람들이 상갓집에서 조의금을 얼마나 내는지, 결혼식 축의금은 보통 얼마인지에 대해 전혀 몰랐다. 시중 물가에 대한 감각도 없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을 잘 모른다는 것에 대해 이재용은 안타까워하거나 부끄러운 기색이 없었다”고 기억한 바 있다. 김 변호사는 2000년대 초반 이재용 부회장의 방에 드나들면서 얘기를 나누며 그를 지켜봤다. “이건희 일가는 자신들이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예의가 바르다. 생계에 신경 쓸 사람이 아니니까.”

삼성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서울의 한 대학 경영학과 교수도 “예의가 바르다”는 평가에 동의한다. 그러면서 “물론 진짜 속내를 알 순 없지만 이 부회장은 조금 소극적인 성격으로 보인다. 이건희 회장과는 다른 면이 있다고 한다. 이게 경영적으로는 단점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에 머뭇거리면 기업이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도 삼성전자의 한 고위 임원이 “이 부회장은 부잣집에서 태어났다.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그가 회사를 꾸려나갈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기존 사업은 정체, 신사업은 안갯속

삼성은 그동안 이건희 회장 중심의 ‘1인 의사결정 구조’가 강한 기업이었다. 그만큼 최고경영자(CEO)의 판단이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이건희 회장도 주변의 만류를 물리치고 자동차 사업에 진출했다가, 1990년 말 외환위기 시절 삼성그룹의 경영 사정을 악화시킨 바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재용 부회장을 지켜보는 눈도 많을 수밖에 없다. 과제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삼성의 경쟁력 자체가 중요한 변곡점에 접어든 상태다. 그룹 매출과 이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삼성전자의 성장이 정체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이익의 대부분을 만들어낸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세가 멈추면서, 삼성 스마트폰의 매출 확대도 예전처럼 커지기 어렵다. 이미 스마트폰 시장에서 차지하는 삼성과 애플의 합산 시장점유율은 50%까지 상승한 상태다. 삼성과 애플의 합산 스마트폰 단위당 영업이익도 2010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정보기술(IT) 제품의 특성상 가격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반면, 고사양화 추세로 인해 원가는 가격 하락폭만큼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삼성전자가 2010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밝힌 태양전지, 발광다이오드(LED), 자동차용 전지, 바이오, 의료기기 등 ‘5대 신수종 사업’은 아직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않고 있다. 삼성은 2020년까지 23조원을 투자해 50조원의 매출을 올리겠다고 했다. 각광받던 의료기기 벤처기업인 메디슨도 인수했지만, 삼성메디슨의 매출액은 2012년 2678억원에서 2013년 2507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영업이익은 308억원(2012년)에서 지난해 7억원으로 감소했다. 전기자동차 배터리도 전기자동차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지 않으면서 지지부진한 사업이 됐다.

조우형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커지다보니 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만, 5대 신수종 사업 쪽은 아직 성과가 가시화되지 않았다. 이재용 부회장이 그동안 자동차회사 CEO도 만나왔고 뭔가 보여주기 위해 신수종 사업에 더 집중할 가능성이 있다”고 점쳤다.

그러나 총수 일가의 승계 과정이 되레 신수종 사업 등 기업 경쟁력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삼성은 이미 지난해부터 계열사들의 사업을 조정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 강화를 내걸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일감 몰아주기 과세 등 규제가 시작되자 이를 피하기 위한 게 큰 이유였다. 또 삼성은 5월8일 비상장회사였던 삼성SDS를 연내에 상장한다고 밝혔다.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자금 확보가 명분이지만, 증권가에선 삼성SDS 지분을 가지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사장 등이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을 지분에 대한 상속세 등을 준비하는 차원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는 삼성그룹 내에서 개별 기업 경쟁력보다 총수 일가의 경영권을 지키기 위한 의사결정이 우선시될 가능성이 큼을 보여준다.

주가 상승은 경영권 분쟁의 서막

주식시장은 이미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5월10일 밤 이건희 회장이 갑작스레 병원에 입원한 뒤 삼성전자 등 삼성 계열사의 주식 가격은 상승했다. 5월9일 133만5천원이었던 삼성전자 주식은 꾸준히 올라 16일 142만8천원으로 마감했다. 기업 주가는 일반적으로 경영권 분쟁이 예상되면 상승한다. 최대주주가 경영권 확보를 위한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배당을 늘릴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현금이 유망 기업의 인수·합병(M&A) 자금 대신 경영권 유지를 위한 ‘실탄’으로 소모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김용철 변호사는 “이재용씨가 아버지처럼 신비주의적인 카리스마가 없기 때문에 뭔가를 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한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 관계자는 “밖에서 보기에는 잘 모를 수 있지만 국외 파트너와의 협상 등 실무도 담당해 경영 성과가 많다. 계열사 경영도 (이 회장 입원 이후) 별도 대책 없이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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