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리석기도 하고 멍청하기도 했죠. 그래도 채권단이나 회계법인이 잘못된 정보를 준 거니까, 투자자에게만 100% 책임이 있다고 할 순 없지 않나요.”
STX조선해양의 소액주주인 방아무개씨는 투자금 1억3천만원 가운데 98%를 잃은 상태다. “아직 이게 현실인지 분간이 되지 않아요.” 방씨는 지난해 5월 STX조선해양의 주식을 샀다. “주변에서 주식을 하는 분들이 추천해줬어요. 회사가 어려워진 것은 알았지만, 산업은행이랑 정부가 밀어주니 망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죠.”
채권단은 지난해 상장폐지 예상현실은 그의 바람과 반대로 돌아갔다. 지난해 5월 1만3천원대였던 STX조선해양의 주가는 8월에 2만4천원대까지 반짝 오르다가 쭉 미끄러졌다. 경영이 악화되면서 지난해 11월엔 3 대 1(소액주주의 경우)로 감자까지 됐다. “감자를 하고 나서도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어요. 채권단이 정상화 방안도 내놓으며 살리겠다고 하니까 팔지 않고 믿고 기다릴 수밖에요.”
기다림은 부질없었다. STX조선해양은 2월에 ‘자본 전액 잠식설’로 갑자기 주식거래가 중지됐다. 방씨는 “팔고 나갈 기회라도 줬으면 손절매를 했을 텐데 이리 갑자기 거래가 중지되니, 회사를 살리겠다는 정부기관에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했어요”라고 했다. 방씨는 외국인과 기관투자가들이 주식거래 중지 하루 전에 팔고 나갔다는 이른바 ‘음모론’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 자료를 보면, 채권단은 지난해부터 “대규모 영업 손실과 STX다롄조선 등 투자회사 지분의 상각 처리로 2조1천억원의 자본잠식이 발생해, 채권단의 출자 전환이 완료된다 하더라도 자본잠식 해소는 불가능하며, 완전자본잠식으로 인해 2014년에 상장폐지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4월1일 주식거래가 중단된 STX조선해양을 결국 4월15일 자본잠식을 이유로 상장폐지하기로 결정한다. 상장폐지로 정리매매에 들어간 STX조선해양의 주식은 주당 425원(4월11일 기준)에 거래되고 있다. 1만원이 넘던 주식이 ‘휴지 조각’이 된 셈이다.
분노한 STX조선해양의 소액주주들은 회사와 회계법인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검찰이 STX조선해양에 2조3천억원 규모의 분식회계가 있다고 발표한 건 이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지난 4월8일 회삿돈 500억여원을 빼돌리고 회사에 3천억원대 손실을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횡령·배임)로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의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또 김아무개 전 STX조선해양 최고재무책임자에 대해 분식회계를 한 혐의(자본시장법 위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분식회계로 영업손실 숨기고 자산 뻥튀기소액주주 쪽은 검찰 수사 결과대로 회사가 분식회계를 통해 영업손실을 숨겨 투자자를 속였다고 주장한다. 지난 3월 공시된 STX조선해양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STX조선해양은 2013년 공사 손실에 따른 충당부채로 9269억원을 설정했다. 2011년(114억원)과 2012년(889억원)에 견줘 손실 규모가 갑자기 큰 폭으로 늘었다. 소액주주들은 그동안 회사가 감춰왔던 부실이 채권단 관리에 들어가자 드러난 것으로 보고 있다. 뱃값이 떨어져 건조할수록 손해가 나는데도 매출과 영업이익을 늘려 주주들을 속였다는 것이다.
[%%IMAGE3%%]STX조선해양은 자산도 이른바 ‘뻥튀기’해온 것으로 보인다. 소액주주 소송을 준비하면서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법무법인 영진의 유경재 변호사는 “공사손실 충당부채 1조원과 다롄조선소의 투자 지분 과다 계상, STX유럽의 손상차손을 모두 적정하게 반영했을 경우 STX조선해양은 2011 회계연도의 경우 영업적자, 2012 회계연도에는 완전자본잠식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STX조선해양은 지난 3월 공시한 2013년 사업보고서에서 STX다롄 투자지분이 2012년보다 6444억원 줄어든 것으로 처리했다. STX유럽 법인에 빌려준 대여금 5967억원도 몇 해 동안 자산으로 계산하다가 대손충당금으로 손실 처리했다.
또 다른 소액투자자 김아무개씨는 “2012년 전까지 꾸준히 영업이익이 나다가 2012년에 회사가 적자로 돌아선다. 그리고 2013년에 갑자기 부채가 2조원이 쌓인다. 이익이 잘 나던 회사가 어떻게 갑자기 자본이 전부 잠식되나. 과거의 부실이 한꺼번에 터진 것이다. 회계법인도 4~5년 동안 이 회사를 감사하면서 발견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주장했다.
투자자들의 분노는 STX조선해양의 회계감사를 맡은 삼정회계법인으로도 향한다. 회계법인이 감사보고서를 통해 제대로 된 정보를 줬어야 했다는 주장이다.
삼정, 1년 만에 적정의견 철회삼정회계법인은 2011년과 2012년 모두 STX조선해양 감사보고서를 내면서 ‘적정의견’을 냈다. 적정의견은 회계법인이 회사 회계정보를 평가하는 등급 가운데 가장 높다. 하지만 지난 3월21일 삼정회계법인은 2013년 감사보고서를 내면서 적정의견을 바꾼다. 삼정은 2013년 감사보고서의 의견을 내는 것을 거절하면서 “본 감사인이 2013년 3월20일자에 발행한 감사보고서는 상기의 영향으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했다. 지난해에 낸 감사보고서에 문제가 있다고 1년 뒤 밝힌 셈이다. 삼정은 “당기 재무제표를 감사하는 과정에서 당기 및 전기 이전 재무제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왜곡 표시 가능성을 인지하였으나 충분하고 적합한 감사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했다. 삼정 쪽에 소액주주들의 부실 감사 지적과 ‘충분한 감사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물었으나 삼정 관계자는 기사를 쓰는 지금까지 답하지 않았다. 삼정은 국내 회계업계에서 2위권 업체다.
유경재 변호사는 “수년 동안의 회계 감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STX조선해양이 최소 2조2천억원의 분식회계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삼정이 중요한 기업회계기준을 위반한 부실 감사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흩어져 있던 소액주주들도 소송을 위해 결집하고 있다. 또 다른 소액주주 이아무개씨는 “회사와 회계법인이 잘못된 정보를 준 것에 대해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데 참여할지 생각 중”이라고 했다. 이씨는 2012년 7천만원을 들여 STX조선해양 주식을 샀다. 당시 주당 3만3천원을 주고 샀는데, 2년6개월도 안 돼 현재 투자금을 거의 다 날린 상태다. 이씨는 “형과 어머니의 돈까지 모아 샀는데 투자금을 모두 날렸다”며 망연자실하고 있다.
2조원에 이르는 투자손실금STX조선해양 소액주주들의 손실금은 약 2조원으로 추정된다. 소액주주들은 4월 말께 STX조선해양과 삼정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낼 계획이다. 소액주주들이 부실 감사를 문제 삼아 회계법인 등을 상대로 한 소송으론 이번이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보여 파장이 예상된다.
법원은 지난해 코스닥 상장법인 ‘포휴먼’에 대한 부실 감사 책임을 물어 삼일회계법인에 140억원을 투자자들에게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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