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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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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뜨고 코 베인 투자자들

동양그룹 법정관리 신청으로 회사채·기업어음 투자자 돈 날릴 처지…
소송해도 승소 쉽지 않은 상황, 금감원 책임론 일어
등록 2013-10-12 16:25 수정 2020-05-03 04:27
동양그룹 계열사 회사채와 기업어음을 산 개인투자자들이 10월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불완전판매 신고센터’를 방문해 피해 사례를 접수하고 있다.한겨레 신소영

동양그룹 계열사 회사채와 기업어음을 산 개인투자자들이 10월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불완전판매 신고센터’를 방문해 피해 사례를 접수하고 있다.한겨레 신소영

“눈 뜨고 코 베인 기분이에요.” 부산에 사는 주부 강아무개(40)씨는 울먹였다. 2천만원을 투자해 (주)동양 상장채권을 샀는데, 휴지 조각이 될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평소 종합자산관리계좌(CMA)를 터놨던 동양증권 직원의 말만 믿고 덜컥 투자한 게 화근이었다. “어느 날 증권사 직원이 전화를 걸어와서 ‘월 7.9% 확정금리가 보장된다’며 투자를 권하더라고요. 그땐 그게 회사채인지, 뭔지도 몰랐어요. 동양그룹 사태가 터진 뒤 돈을 빼러 지점에 갔더니 ‘2천만원은 회사채라 빼줄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직원에게 “왜 예금자 보호가 안 된다는 얘기 안 해줬냐”고 울며 따졌지만, 직원은 “죄송하다”고만 할 뿐이었다.

‘불완전판매’ 기준 까다로운 법원

동양그룹 계열사 5곳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강씨 같은 회사채·기업어음(CP) 투자자들은 투자한 돈을 허공에 날리게 생겼다. 일단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면 모든 채권채무가 동결되는 탓이다. 법원이 파산을 결정하면 채권은 손실 처리된다. 회생 결정을 내리더라도 원금의 일부만 돌려받을 수 있고, 변제 우선순위에서 밀리면 돈을 받기까지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이런 개인투자자는 4만9천여 명에 이른다. 동양그룹 계열사가 발행한 회사채와 기업어음은 2조3천억원으로, 90% 이상을 개인투자자들이 샀다.

개인투자자들은 집단적인 움직임에 나섰다. 인터넷 카페를 중심으로 모여 채권자협의회를 구성하고, 회사 회생 여부를 결정할 법원에 연판장을 전달했다. 한 피해자모임 인터텟 카페 운영자인 이경섭씨는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소액 채권자들의 목소리는 묻히게 된다. 원금의 몇%를 돌려받을지 회수율을 높이려면 뭉쳐야 한다”고 말했다. 보통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간 기업의 채권 변제율은 20~30%가량이다.

줄소송도 이어질 전망이다. 회사채와 기업어음을 판매한 동양증권 쪽이 ‘불완전판매’를 했다는 것이다. 관련법에 따라 금융회사는 투자 위험성 등을 고객에게 설명해줄 의무가 있다. 금융 지식이 많지 않은 노인이나 가정주부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회사채나 기업어음을 샀을 가능성이 높다. 증권사 직원이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았거나, 부당하게 투자를 권유했다는 상황을 입증하면 피해자들은 동양증권으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증권사를 상대로 이길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 2011년 LIG건설이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기에 앞서 기업어음을 샀던 투자자들이 우리투자증권을 상대로 모두 15건의 소송을 냈는데, 그 가운데 법원이 투자자 쪽 손을 들어준 경우는 3건뿐이다. ‘불완전판매’에 대한 법원의 판단 기준은 까다롭다.

시민단체인 금융소비자원은 피해 사례를 모아 집단소송을 내는 한편, 지난 10월2일엔 “동양증권이 지난 5년 동안 동양그룹의 부실한 계열사 자금 조달 창구 역할을 해오면서 불완전판매를 넘어 사기 판매 행위를 했다”며 검찰에 수사 의뢰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앞서 LIG그룹과 웅진그룹도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갈 것을 예상하면서도 사기성 기업어음을 판매한 혐의로 그룹 회장들이 기소된 바 있다.

금감원이 준 유예기간에 사태 터져

금융 당국의 책임론도 나온다. 동양그룹은 법정관리행이 확실시되는 추석 연휴 직전까지도 기업어음을 발행해 팔았다. 회사채와 기업어음을 발행할 당시, 동양그룹의 신용등급은 투자부적격인 ‘BB’ 또는 ‘B-’ 등급이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4월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투자부적격 등급의 계열사 회사채나 기업어음을 팔 수 없도록 감독 규정을 고쳤었다. 그러나 6개월간의 유예기간을 둬서 시행을 미뤘다. 그사이 동양그룹 사태가 터져버린 것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금융감독원이 불완전판매 피해 신고를 접수해 동양증권에 배상이나 합의를 권고하겠다고 하지만 강제력도 없고 시간도 오래 걸려 ‘보여주기’식 대응에 불과하다”며 “늑장 대응을 해서 사태를 키운 금감원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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