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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노조 CJ’ 몸집 불리기 이번에는 다르다?

CJ대한통운 새로 출범하면서 수수료 건당 최대 130원 내리고 욕설에 10만원 부과하는 등 페널티 제도 도입… 피인수기업 노조 없어지는 ‘무노조 CJ’ 바뀔지도 관심
등록 2013-05-22 18:05 수정 2020-05-03 04:27

CJ대한통운의 택배 노동자 파업이 장기화될 조짐이다. 5월4일 경기도 시화·부천 등 일부 지역에서 시작된 파업은 서울·인천·울산·광주 등 10여 개 지역에서 약 1천 명이 참가하고 있다. 하지만 택배 노동자와 대리점으로 구성된 CJ대한통운비상대책위원회와 회사 쪽은 아직 제대로 된 교섭조차 벌이지 못한 채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CJ대한통운 택배 노동자들은 지난 5월13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생존권 사수 투쟁 결의대회’를 열고 회사 쪽에 사태 해결을 위한 교섭을 촉구했다. 택배 노동자들이 도로 옆에 빼곡히 주차된 택배 차량 사이를 지나가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CJ대한통운 택배 노동자들은 지난 5월13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생존권 사수 투쟁 결의대회’를 열고 회사 쪽에 사태 해결을 위한 교섭을 촉구했다. 택배 노동자들이 도로 옆에 빼곡히 주차된 택배 차량 사이를 지나가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과거 인수 기업과 달리 규모 크고 자율적

CJ대한통운은 지난 4월 기존 CJ대한통운과 CJ GLS가 합병해 새로 출범했다. CJ그룹이 2011년 1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부터 대한통운을 인수한 지 1년여 뒤 통합한 것이다. 문제는 통합 과정에서 CJ GLS가 운영하던 제도를 대한통운에 그대로 이식하면서 발생했다.

CJ는 1999년 택배나라, 2006년 삼성HTH, 2008년 사가와익스프레스코리아 등을 인수하며 택배사업의 몸집을 키워왔다. 삼성HTH 인수 이후 일부 대리점으로부터 구역 조정과 관련해, 직원으로부터는 고용 보장 약속을 어겼다며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회사 쪽이 승소했지만, 인수 과정에서 부작용이 있었던 것이다.

이번 파업도 높은 서비스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페널티 제도를 도입하고 배송 수수료를 조정하는 등 CJ GLS의 경영 방침을 고수하면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페널티 제도는 욕설 1건당 10만원, 반말·언쟁 1건당 3만원, 임의배송 1건당 1만원 등 고객이 택배 노동자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면 벌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비대위 관계자는 “택배 수수료를 기존 880~950원에서 800~820원으로 인하했고, 페널티 제도를 아무런 협의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도입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수수료는 줄어들고 벌금은 내야 하는 상황에 몰린 택배 노동자와 대리점이 반발한 것이다.

경쟁 치열해지면서 저가 수주 만연

대한통운은 과거 피인수기업과 달리 CJ GLS보다 규모가 클 뿐 아니라 운영 방식도 자율적이었다. 경기도의 한 대리점주의 설명이다. “과거 삼성HTH 인수 시절에는 중앙통제식으로 운영되는데다 지입차(운수회사 명의로 등록된 개인 소유의 차량) 위주여서 회사 방침에 불만을 제기하기 힘들었다. 결국 망하기 직전까지 가서야 소송을 제기하는 등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대한통운은 각 지점의 권한이 컸고, 택배 기사들도 지점에서 직접 자신의 차량을 운전하는 경우가 많다. 회사 규모도 크기 때문에 회사 방침에 반발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고질적인 택배산업의 낙후성도 한몫했다. 택배시장 매출은 2005년 1조5600억원에서 2011년 3조2900억원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택배 물건 1개당 단가는 같은 기간 2961원에서 2534원으로 떨어졌다. 택배 노동자가 받는 수수료도 800~900원대에서 좀체 늘지 않았고 유류비·통화비 등 부담만 커졌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저가 수주가 만연해졌다. 지난해 말 중견 택배업체 이노지스가 부도난 것도 같은 이유라고 업계는 바라보고 있다. 이로 인해 택배 단가를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지만, 이를 실행에 옮긴 것은 현대로지스틱스가 유일하다. 한 택배업체 관계자는 “택배 물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온라인·홈쇼핑 업체에서 물류업체를 선정할 때 가격을 최우선으로 본다. 그러다보니 일감을 따내려는 택배사가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고, 그 부담이 택배 기사나 대리점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와 비대위 쪽은 이렇다 할 교섭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 비대위는 △수수료 건당 950원 인상 △페널티 제도 폐지 △보증보험·연대보증인제 폐지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회사 쪽은 페널티 제도 미시행만 약속할 뿐 교섭에 나서지 않고 있다.

962호 초점

962호 초점

양쪽 교섭에서 걸림돌 하나는 파업에 동참하고 있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다. 그동안 CJ그룹에는 노조가 없었다. 피인수기업에 노조가 있는 경우에는 이내 노조가 사라졌다. 2004년 CJ제일제당이 인수한 한일약품이 대표적이다. 인수 이후 이듬해 노조 탈퇴가 줄을 이었다. 당시 한일약품 노조는 “무노조 경영 철학을 갖고 있는 삼성의 자매그룹인 CJ그룹이 회사를 인수한 뒤 노조를 완전히 없애버리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고, 회사 쪽은 “노조원들의 자발적 탈퇴”라고 반박했다. 이후 노조는 자취를 감췄다.

속속 화물연대에 가입하고 있어

최근 CJ대한통운 파업을 계기로 택배 노동자들은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에 속속 가입하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회사는 화물연대를 ‘외부 불순 세력’이라 칭하며 비대위에서 배제를 주장한다. 회사 관계자는 “화물연대 쪽이 파업에 동참하는 것은 물론 비대위에도 참여하고 있어 화주기업들이 불안해한다”고 말했다. 반면 공공운수노조 윤춘호 선전실장은 “애초 광주에 조합원이 있었고 파업 이후 울산·충청 등에서 조합원이 늘어 당연히 상급노조가 참여하는 것이다. 화주기업의 불안을 얘기하는 것은 자신들의 무노조 경영 원칙을 회피하려는 핑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결국 수수료 인상 등 택배 노동자 처우 개선뿐만 아니라 민주노총 소속 노조 설립 문제 등이 파업 타결에 장애물로 놓여 있다.

이정훈 기자 한겨레 경제부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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