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 가구 제조업체를 경영하는 문장욱(42)씨는 ‘자동차 마니아’다. 스무 살 때 처음 자동차를 산 뒤 1∼2년마다 바꿔 올해까지 15대 정도를 타봤다. 그중 10대가 수입차였다. 첫 수입차는 1999년에 샀던 BMW. “당시 수입차를 모는 지인들이 하나둘 생겼다. 호기심으로 시승해봤더니 국산차와 비교가 안 되더라. 내가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는 느낌이 짜릿했다.”
“수입차만 오래 몰다 보니…”
그 뒤 10년 넘게 수입차만 고집하던 문씨는 올해 초 또 한 번 새로운 경험을 했다. 새 차로 바꾸려는데 현대자동차 영업사원이 제네시스를 추천하며 수입차와 비교 시승하라고 권했다. “깜짝 놀랐다. 제네시스를 모는데 잡소리가 없고 조용하고 편안했다. ‘국산차가 정말 많이 좋아졌구나’ 새롭게 깨달았다.” 가격은 수입차의 절반 정도인데도 국산차 품질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 만족했다. 실제로 지난 2월 제이디파워가 발표한 ‘2012년 내구품질조사(VDS)’에서 제네시스는 벤츠 E클래스, BMW5 시리즈 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문씨가 제네시스로 바꿨더니 친구들은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한번 시승해보라고 했다. 수입차만 오래 몰다 보니 국산차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대부분 모르고 있었다. 다들 나처럼 놀랐다. 한 친구도 벤츠에서 국산차로 바꿨다.”
국산차와 수입차를 비교 시승할 수 있는 현대차 비교시승센터가 국산차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한-미,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뒤 수입차 판매가 크게 늘어나자 현대차가 지난 3월 국내 업체 최초로 서울 강남, 목동, 동북부, 경기도 성남 분당, 인천 서부, 부산 동부, 동대구, 경기 남부, 충북 청주 등 주요 9개 지역에 비교시승센터를 열었다. 이곳에서 소비자들은 현대차 제네시스, 그랜저, 쏘나타, i30, 벨로스터 등과 BMW5 시리즈, 벤츠 E클래스, 도요타 캠리, 렉서스 ES350, 폴크스바겐 골프, 미니 쿠퍼 등을 비교 시승한다. 현대차 누리집(www.hyundai.com)에서 예약한 소비자가 하루 3∼6명씩 시승센터를 찾는다. 11월30일까지 총 3461명이 다녀갔다. 현대차 관계자는 “2000년대 초반 즈음에 국산차를 마지막으로 탄 뒤 수입차를 고집하던 소비자들이 현대차를 타보고는 인식이 바뀌는 경우가 있다. 직접 비교해보면 수입차 브랜드에 대한 선입견이나 환상이 깨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산차의 최대 강점은 가격경쟁력이다. 제네시스를 구입한 문씨는 “찻값이 반으로 떨어지니까 보험료 등 다른 부대비용도 크게 줄었다”고 설명했다. 국산차와 수입차의 가격이 크게 차이 나는 이유는 국내 수입차 업체들이 일부 고급 차량을 수입 원가의 2배가 넘는 값에 팔아서다. 예를 들어 국내 수입차 판매 실적 2위인 메르세데스 벤츠가 국내 시판 중인 최고급 세단 S600의 국내 판매가는 2억5880만원이다. 벤츠 브랜드의 차량 중 최고가다. 하지만 국내 수입신고서에는 이 모델의 수입가가 11만5천달러(약 1억3천만원)로 적혀 있다. 세금이 평균 30%이고 딜러 마진율이 9%인 점을 고려하면 수입차 업체의 수익률은 20%나 된다.
“수리비 많아 국산차 소유자가 역차별”
국내에서 많이 팔리는 BMW와 아우디 등도 비슷하다. BMW 528i의 국내 판매 가격은 6740만원인데, 자국인 독일에서는 5680만원, 미국에서는 5300만원에 팔린다. 아우디 A6 3.0도 국내에서는 8400만원에 내놨지만 미국에선 5700만원에 거래된다. 폴크스바겐의 인기 차종인 골프 2.0 TDI도 3300만원대지만 미국에서는 2600만원(옵션 제외 가격) 정도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국내 수입차 가격은 미국과 비교해보면 평균 60% 정도 비싸다”고 말했다.
자동차 부품을 교환할 때도 가격이 턱없이 높다. 도요타 캠리의 경우 동급 국산차에 비해 헤드램프·후드·프런트도어의 값이 많게는 5배 차이가 난다. 헤드램프를 예로 들면 캠리는 77만1700만원인 데 비해 현대차 쏘나타는 13만2400원밖에 안 한다. 게다가 수입차는 국산차와 달리 정비 표준 시간이나 시간당 인건비의 기준이 없어 수리비도 많이 나온다. 시간당 공임은 벤츠 6만8천원, BMW 6만원, 도요타 4만2천원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수입자동차부품협회 관계자는 “수입차 수리비가 나와 차량 소유자의 부담이 커지는 것은 물론이고 이런 수리비가 보험료로 지출되면 국산차 소유자가 역차별받는 꼴”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정비센터가 부족해 사고로 차량이 고장 나면 일주일 이상 기다려야 고칠 수 있다. 한국소비자원이 국내 수입차 브랜드 7개를 조사해보니 특정 브랜드의 정비센터 1곳당 서비스 대상 차량은 메르세데스 벤츠가 3672대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BMW(3306대), 폴크스바겐(2677대), 아우디(2589대), 렉서스(2516대), 도요타(1794대)가 뒤를 이었다. 이 수치는 전국의 수입차 등록대수를 정비센터 수로 나눈 것이다. 자동차 대수가 많을수록 정비센터 1곳당 감당해야 하는 차량이 많아 고장 및 사고 수리를 받기 위한 대기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BMW의 경우 2007년 상반기 3400대에서 올 상반기 1만4500대로 5년 만에 판매가 3배 이상 늘었지만 같은 기간에 정비공장은 29곳에서 30곳으로 1곳만 증가했다. 한 수입차 소비자의 불평이다. “엔진오일을 가는 데도 1∼2주가 걸린다. 국내에 부품이 없으면 해외에서 조달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려야 한다. 내 돈 주고 산 차인데, 당연한 권리를 누리는 게 아니라 정비센터에 뭔가 부탁해야 하는 기분이다.”
FTA 뒤 수입차 공세 속 유일하게 선전
수입차에 불평을 쏟아내지만 소비자들은 그동안 국산차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미 안목이 높아져 자동차 품질에 대한 요구가 커졌는데 국산차가 이를 만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현대·기아차가 세계시장에서 품질을 인정받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문씨가 산 제네시스는 2009년 ‘북미 올해의 차’로 선정됐고, 아반떼는 포드 포커스와 폴크스바겐 파사트를 제치고 지난 1월 ‘북미 올해의 차’에 선정됐다. 그랜저는 지난 5월 미국 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에서 실시한 정면·측면·후방·전복 테스트 등 4개 부문 안전도 테스트에서 ‘2012 최고 안전 차량’으로 뽑혔다. 올해 수입차의 공세가 거셌는데도 현대·기아차가 국내 완성차 업체 가운데 유일하게 선전한 비결이다. 지난 11월까지 판매된 국내 승용 및 스포츠실용차(SUV) 106만863대 중에서 현대·기아차의 비중이 79.8%(84만6273대)에 이른다. 13년간 수입차를 몰다가 국산차로 갈아탄 문장욱씨는 이렇게 조언했다. “국산차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소비자가 더 많이 경험하게 하면 좋겠다. 나도 제네시스를 시승하지 않았다면 또 수입차를 샀을 것이다. 가격경쟁력과 애프터서비스(AS), 품질에 자신감을 갖고 더 적극적으로 마케팅하라.”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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