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애플의 특허 분쟁이 논란거리다. 미국 법원에서 삼성에 1조원이 넘는 거액의 배상을 물리는 배심원 평결이 나오자, 배심원 제도 자체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전문성이 없는 배심원 심리로 특허침해 여부와 손해배상액을 정하는 게 맞느냐는 것이다. 특허제도가 혁신에 기여하기보다는 독점을 조장하는 데 악용되고 있다는 좀더 근본적인 문제제기도 있다. 그런데 특허가 혁신에 기여하는 제도인지는 의문이다. 역사적으로도 특허를 통해 기술혁신이 이루어진 사례는 드물다. 기술 수준이 낮고, 그래서 혁신의 필요성이 큰 국가가 특허제도를 강화한 예는 더더욱 없다. 이미 혁신을 달성한 자들이 특허를 강조할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특허제도가 처음 시행된 것도 1908년 미국과 일본이 맺은 조약 때문이다. 이 조약은 당시 조선의 기술혁신을 위해 체결된 것이 아니라, 이미 특허권을 가지고 있던 일본인과 미국인의 기득권이 조선에서도 보장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유럽과 미국에서 특허가 법적 제도로 정착하게 된 것도 산업혁명을 거치며 덩치가 커진 제조업이 특허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면서부터다. 대표적인 사례가 발명왕이라 불리는 토머스 에디슨이다. 에디슨은 영화 제작 기술에 대해 특허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영화특허회사를 설립해 특허 기술을 이용하려는 이들에게 거액의 로열티를 요구했다. 이를 견디지 못한 영화 창작자와 감독들은 에디슨의 영향권이 끼치기 힘들 정도로 멀리 떨어진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여기서 이들은 에디슨의 특허 기술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해적 행위’를 했고, 이를 통해 오늘날의 할리우드 영화계가 탄생할 수 있었다.
이처럼 기술 독점을 보장하는 특허권은 경쟁자를 축출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되기 때문에, 경쟁사들 간의 특허 분쟁은 제도 자체에 예정돼 있던 것이다. 더구나 특허침해는 모방을 한 경우에만 일어나지 않고 결과물이 같기만 하면 발생한다. 그런데 분쟁의 양상은 분야마다 다르다. 보통 정보기술(IT) 분야에서는 특허소송이 당사자 간 합의로 종결되는 경우가 많다. 승패가 갈릴 때까지 끝을 보는 화학이나 의약품 분야와는 다르다. 주된 이유는 IT 분야에서는 어느 제품을 특허권 몇 개로 독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약품은 한두 개의 특허로 관련 시장을 독점할 수 있지만, IT 분야에서는 이게 불가능하다.
스마트폰만 보더라도 수백 개의 부품과 온갖 통신기술이 사용되는데, 누가 어떤 특허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다. 무수한 특허권이 덤불처럼 뒤얽혀 있어서 이걸 혼자서는 다 헤치고 나갈 수 없다. 그래서 차라리 특허를 무시하는 편이 더 경제적이라는 논문이 있을 정도다. 내가 경쟁사를 특허침해라고 주장하면 경쟁사도 특허라는 무기로 나를 공격한다. 누구도 완승을 거두기 어렵기 때문에, 중간에 합의로 종결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애플-삼성 분쟁은 특이하다.
표준특허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강제끝장을 보겠다는 애플의 전략 때문으로 보이는데, 이를 위해 애플은 삼성이 자신의 디자인을 모방했다는 주장을 펴는 반면 삼성은 애플이 자신의 통신기술 특허를 침해했다는 공세를 펴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삼성이 주장하는 통신기술 특허가 표준특허라는 점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삼성 특허를 표준화한 유럽정보통신표준기구(ETSI)의 지적재산권특별위원회 위원장 마인홀드의 말을 빌리면, 특허와 표준은 지향하는 바가 서로 다르다. 특허는 사적인 독점 사용을 의도하는 반면, 표준은 공중의 집단적 사용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특허 기술이 표준으로 채택될 경우, 특별한 규칙을 두어 양자의 조화를 꾀한다.
어느 특허가 표준기술로 채택되면 특허권자는 자기의 특허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규칙이 그것이다. 표준기술이란 관련 제품을 만드는 자들을 종속(lock-in)시키고 다른 기술로 전환할 수 없도록 막기 때문에, 기술을 아예 사용조차 못하게 하면 표준으로서 의미도 없고 독점의 폐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표준을 정하는 기구들은 어느 기술을 표준으로 채택하기 전에 특허권자에게 관련 특허를 공개하도록 하고 제3자에게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으로 특허기술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선언(프란드(FRAND·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ion) 선언)을 하도록 한다. 대신 특허권자는 사용자한테서 로열티를 받을 수 있다. 표준이 되어 누구나 쓰기 때문에 로열티 수입이 만만치 않다.
특허권자는 일단 프란드 선언을 하고 나면 특허침해 소송에서 제약을 받는다. 로열티를 내지 않은 침해자를 상대로 배상 청구는 가능하지만, 기술의 사용 자체를 금지할 수는 없다. 애플과 삼성의 특허소송에서도 이게 문제였다. 삼성이 애플을 공격한 특허는 모두 표준특허고 이에 대해 삼성은 프란드 선언을 했다. 그런데도 삼성은 애플의 제품에 대해 판매금지를 청구했던 것이다. 표준특허여서 애플이 특허침해를 피할 길이 없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이는데, 표준과 특허의 조화를 꾀하려는 원칙에 반하는 과도한 주장이다. 그래서인지 미국 법원은 프란드 선언을 한 삼성이 특허침해를 주장할 수 없다는 애플의 항변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한국 법원은 애플의 항변을 기각하고, 삼성의 표준특허 2건을 애플이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이를 두고, IT 분야의 특허 분쟁을 전문적으로 분석해온 특허 전문 블로거 플로리언 뮐러는 한국이 ‘프란드 불량국가’가 되었다고 비판하며 양국의 통상마찰까지 우려한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프란드 선언을 한 삼성이 애플을 상대로 어떻게 표준의 사용 자체를 금지할 수 있다는 말인가?
배상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데한국 법원은 특허제도의 본질이 기술 독점이라는 점에 지나치게 충실해 이런 판단을 내렸다. 특허권자가 프란드 선언을 했더라도 표준 기술을 사용하려면 특허권자에게 허락을 구하고 로열티 협상을 성실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악의적 사용자나 잠재적 사용자를 특허권자보다 더 보호하는 결과가 된다는 판단인데, 배상의 문제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표준특허 문제에 잘못된 잣대를 들이댔다.
남희섭 변리사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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