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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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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원만 빠뜨려도 1만원씩 내라

편의점 점주가 본부에 하루 정산액 적게 보내면 하루 1만원 벌금을 물어야 하는 불공정 약관 논란
등록 2012-04-11 15:33 수정 2020-05-03 04:26

“100원만 덜 보내도 다음날 1만원이 연체비로 청구돼요.”
서울 강북구의 한 편의점 주인의 하소연이다. 편의점은 매일 번 돈을 다음날 아침 일찍 본사로 송금한다. 그때마다 정확한 금액을 보내야만 한다. 만약 소액이라도 돈을 모자라게 보내면 1만원을 물어야 한다. 또 다음날 미송금액을 보내지 않을 경우 추가로 1만원이 쌓이게 된다.

“일이 생겨 못 보내도 벌금 물어야”
롯데그룹의 세븐일레븐 계약서를 보면 “‘일매출 송금’은 ‘갑’의 허가와 협력에 의한 7-ELEVEN 경영의 성과로서, ‘을’이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금전이 아닌 ‘갑’의 여신을 뒷받침하는 것이기 때문에, ‘을’은 이것을 사전에 ‘갑’에게 통지하여 승인받지 아니한 비용의 지불에 충당하거나 임의 소비하여서는 아니된다. 만일 ‘을’이 정당한 이유 없이 송금 의무를 해태한 경우에는 지연일수 1일당 금 일만원의 송금 지연 가산금을 ‘갑’에게 지급하여야 하며, 지연일수의 계산 등은 별첨(6)에 의한다”고 돼 있다.
이 때문에 상당수 가맹점주들은 자주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경기도 분당의 한 편의점주는 “아침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일한 뒤 그 전날 매출액을 보내려고 은행에 간다”며 “갑자기 일이 생겨 못 보내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그때마다 미송금 벌금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폰뱅킹으로 그날 입금해도 저녁 7시 이후에 송금하는 것은 미정산으로 처리된다”며 “한 달에 4~5번씩 이런 일이 발생해 매달 4만~5만원을 본사에서 거둬간다”고 덧붙였다. 대구의 한 편의점주도 “실수로 돈을 잘못 보내는 일이 가끔 발생하는데 그때마다 벌금을 챙겨간다”며 “어떤 경우에는 9천원을 덜 보냈는데도 1만원을 떼가 원금보다 이자가 더 큰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사정은 세븐일레븐을 비롯해 GS25, 훼미리마트 등 다른 편의점에서도 거의 비슷하다. 서울 마포구의 훼미리마트 점주 권아무개씨는 “가맹본부와 계약할 때 미송금에 따른 페널티로 하루 1만원을 더 물게 돼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적용은 편의점마다 다르다. 훼미리마트와 GS25의 경우 병원비 등 급한 이유가 있다면 페널티 금액을 면제해주고 한 달 최대 30만원으로 페널티 금액 한도를 정했다. 세븐일레븐은 가맹점주의 불만이 제기되자 지난 2월에야 다른 편의점과 형평성을 맞췄다. 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편의점주 쪽에서 약관 심사 청구를 하면 불공정 여부에 대해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대기업들이 점주들의 미송금액에 대해 과도한 페널티를 요구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2011년 말 대기업 소속 편의점 수는 2만여 개에 이르렀다. <한겨레21> 박승화

편의점을 운영하는 대기업들이 점주들의 미송금액에 대해 과도한 페널티를 요구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2011년 말 대기업 소속 편의점 수는 2만여 개에 이르렀다. <한겨레21> 박승화

세븐일레븐 있는데도 롯데마트999 만들어

롯데쇼핑의 롯데마켓999가 최근 편의점 시장을 갉아먹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월 현재 54곳에서 문을 연 롯데마켓999는 편의점과 슈퍼마켓을 혼합한 모델이다. 이로 인해 세븐일레븐 가맹점주들은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경북 구미의 한 점주는 “지난 3월 편의점에서 30m 떨어진 지점에 롯데마켓999가 문을 열어 손님 수는 물론 매출액 역시 10% 넘게 줄었다”며 “롯데그룹은 점포 수가 많을수록 돈을 벌겠지만 가맹점주는 말라죽을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대해 세븐일레븐 쪽은 “롯데마켓999는 신선식품 위주여서 편의점과 경쟁 품목이 다르고, 법인도 달라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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