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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구’ 일가의 수상한 거래

파리크라상 재무담당 임원, 모그룹 회장 부인 점포에 40억원 특혜 지원 혐의로 검찰 수사
등록 2012-02-03 10:44 수정 2020-05-03 04:26
SPC그룹 허영인 회장은 제과제빵 업계에서 입지전적 인물로 회자된다. 그러나 SPC그룹의 경영문화와 관련해 계속 잡음이 나온다. 부인이 소유한 파리크라상 지점이 수십억원의 특혜를 본사에서 받아온 사실이 밝혀져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한겨레21> 박승화

SPC그룹 허영인 회장은 제과제빵 업계에서 입지전적 인물로 회자된다. 그러나 SPC그룹의 경영문화와 관련해 계속 잡음이 나온다. 부인이 소유한 파리크라상 지점이 수십억원의 특혜를 본사에서 받아온 사실이 밝혀져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한겨레21> 박승화

경찰이 제과제빵 전문기업 SPC그룹 계열사인 파리크라상의 재무담당 임원이 그룹 회장의 부인이 운영하는 파리크라상 지점에 부당한 특혜를 주고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배임)를 잡고 지난해 10월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사실이 최근 확인됐다.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에 배당됐다. SPC그룹은 파리크라상, 파리바게뜨, 던킨도너츠, 배스킨라빈스 등 여러 유명 제과제빵 프랜차이즈를 계열사로 거느린 기업이다.

실존모델이 그룹 회장

이름 밝히기를 꺼린 경찰청의 한 간부는 에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파리크라상 황아무개(51) 전무가 배임을 저질렀다고 보고 지난해 10월께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최근 밝혔다. 그러나 경찰청은 구체적인 혐의 내용에 대해서는 피의사실이라는 이유로 밝히지 않았다.

유통업계와 경찰 안팎을 취재한 결과, 경찰청은 SPC그룹 허영인(63) 회장의 부인 이아무개(58)씨가 소유한 파리크라상 반포점과 이촌점이 파리크라상으로부터 투자비 명목으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간 모두 40억원을 지원받은 것이 배임죄에 해당한다는 의견을 검찰에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 돈은 황아무개 전무의 결재를 통해 인테리어 공사비와 직원 인건비 명목으로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런 혐의를 잡고 지난해 8월 서울 한남동의 SPC그룹 본사와 역삼동 파리크라상 사옥을 압수수색해 가맹점과의 자금거래 내역 등 회계자료를 분석했다.

형법상 배임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익을 얻게 하여 회사에 손해를 가한’ 행위로 정의된다. 유죄가 확정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은 파리크라상 지분 74.5%를 소유한 대주주이며 부인 이아무개씨가 지분 4.1%를 소유하고 있다. 허 회장의 두 아들이 나머지 지분을 갖고 있다. 법인 등기부등본을 보면, 부인 이씨는 2011년 3월28일부터 파리크라상의 사내이사에 취임했다.

법률적으로는 파리크라상이 삼립식품·파리바게뜨와 제분업체인 밀다원을 거느린 지배회사다. 허영인 회장 등 가족 3명이 배스킨라빈스와 던킨도너츠를 계열사로 둔 비알코리아의 대주주다. 부인 이아무개씨는 부동산임대업을 하는 SPC주식회사의 지분도 5% 소유하고 있다. 요컨대 파리크라상, 파리바게뜨, 던킨도너츠, 배스킨라빈스 등은 허영인 회장 부부와 가족이 대부분의 지분을 소유한 가족 기업에 해당한다. 이들 SPC그룹 계열사 가운데 삼립식품만 상장회사이며 파리크라상·비알코리아 등은 모두 비상장 주식회사다.

거액 투자에 회수조건도 없어

부인 이아무개씨가 파리크라상의 주주이자 사내이사면서도 자신 명의로 지점을 계속 소유하고 회사로부터 부당한 지원금을 받았고 그 결과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파리크라상은 “투자비 명목으로 (돈을) 집행했다”고 밝혔지만, 투자비를 회수하는 별다른 계약조건은 없었다. 부인 이씨는 다른 직영점이나 가맹점주처럼 가맹비 등 정해진 비용만 본사에 냈고, 나머지 수익은 본인이 가져갔다. 반포점과 이촌점은 각각 실평수가 약 165㎡(50평)이며 하루 매출이 600만~70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SPC그룹은 40억원을 지원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혐의를 부인한다. SPC 홍보팀은 “결과적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치지 않았으므로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룹 홈페이지를 보면, 파리크라상 1호점인 반포점이 1986년 3월 개점했다. 이를 토대로 주식회사 파리크라상 법인이 같은 해 10월 설립됐다. SPC그룹 홍보실은 “부인 이아무개씨가 1986년 직접 ‘파리크라상’ 이름과 간판까지 만들어 개점한 개인 빵집을 회사가 인수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모델숍이 될 만하다”는 게 판단 근거였다. 사업모델로 삼아 투자를 했다는 취지다. 결과적으로 부인 이씨에게 투자해서 파리크라상이라는 브랜드를 키워 회사에 이익을 줬으니 배임이 아니라는 게 그룹의 견해다. SPC 쪽은 검찰 수사에서도 이 점을 강조할 계획이다.

“사업모델 개발이 필요했다면 회사 명의로 하는 게 상식적이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SPC 쪽은 “부인 이씨에게 ‘내가 이것(파리크라상)을 만들었다’는 상징적 의미가 컸다”고 해명했다.

대법원 판례의 잣대는 엄격하다. 대법원은 현실적인 손해를 가한 경우뿐 아니라 손해 발생의 위험을 초래한 경우도 배임행위에 포함한다. 또 오너가 지분을 전부 소유한 1인 회사의 경우에도 법률상 회사를 별개의 법인격으로 보고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본다. 가족기업에서도 당연히 배임죄가 성립한다. 회사의 지원금이 모두 인테리어와 인건비로 사용됐는지도 SPC 쪽이 더 투명하게 밝혀야한다. 비자금 조성 의혹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제빵왕도 알았을까

법률상의 유무죄를 떠나 그룹 오너의 부인이 다른 가맹점, 직영점주와 달리 수십억원의 특혜를 받은 점은 도덕적으로 문제될 만하다. 2010년 12월 기준으로, 전국에 122개의 파리크라상 직영점과 2734개의 가맹점이 있다. 재벌닷컴 정선섭 대표는 “파리크라상의 소득원은 일반 서민과 소비자”라며 “(부인 이씨가) 소비자들의 이익을 편취한 셈이며 이는 도덕적으로 문제”라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허영인 회장이 부인에 대한 파리크라상의 ‘투자비’ 집행을 지시했거나 알고 있었는지에 검찰 수사가 집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경찰은 일단 황아무개 전무에 대해서만 기소 의견을 밝혔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한 경찰청 간부는 “압수수색, 계좌·통화 추적 등을 통해 허 회장의 지시 여부를 조사했으나 밝히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SPC그룹은 40억원의 투자비 집행은 이사회 보고 사항이 아니며 전무가 전결로 처리하는 업무이므로 허 회장이 몰랐다고 주장했다.

정황은 이런 주장과 배치된다. 파리크라상의 대주주인 허 회장이 파리크라상 주주이자 사내이사인 부인의 지점이 회사로부터 거액의 지원금을 받는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 파리크라상이 부인의 빵집을 ‘모델숍’으로 삼아 인수했다는 1986년에 이미 허영인 회장이 삼립식품 대표이사 등을 맡으며 경영 일선에 있었다. 정황상 부인의 빵집에 대한 ‘투자’를 허 회장이 지휘했거나 최소한 알고 있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

허영인 회장은 허창성 삼립식품 명예회장의 둘째아들이다. 파리크라상과 파리바게뜨를 잇달아 성공시켜 제빵업계에서 회자됐다. 최근엔 중국 베이징과 미국에도 진출했다. 제과제빵에서 한 우물을 판 그의 성공담은 한국방송 드라마 의 소재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비상장 계열사 통한 과다 배당 논란도

그러나 기업 경영에서는 잡음이 자꾸 나온다. 지난해 4월 허영인 회장은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파리크라상, 비알코리아 등에서 102억원의 배당금을 받았다. 비상장 계열사를 통한 과다 배당이라는 비판을 샀다. 2010년엔 계열사인 호남샤니가 중소기업자로 등록한 뒤 정부조달 빵 공공구매에 참여하려다 비판받았다. 2010년 국정감사에서 조정식 당시 민주당 의원은 “대기업이 지분을 분산해 외형상 중소기업을 설립해 중소기업 지원 시책을 부당하게 악용하는 사례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번엔 배임 혐의로 수사받을 처지에 놓였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아직 기초 조사도 안 한 상태다. 윤갑근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관련자에게 출석을 요구한 적이 없고, 아직 본격적으로 수사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제빵왕국이 수사선에 놓였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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