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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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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상가상인가, 전화위복인가

국면전환용 졸속 추진 논란 휩싸인 한-중 FTA 협상 개시 약속… 전방위·전면적 FTA 만능론서 벗어나 대안적 통상정책 모색해야
등록 2012-01-19 15:16 수정 2020-05-03 04:26
» 박태호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1월12일 오후 서울 세종로 외교통상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진행상황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 박태호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1월12일 오후 서울 세종로 외교통상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진행상황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한국 사회에 가공할 위력을 가진 시한폭탄이 나타났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월9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에 속도를 내기로 합의했다. 사실상 협상 개시를 약속한 것이다. 또 구체적으로 정식 협상 개시를 위한 국내 절차를 밟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2004년부터 진행돼오던 한-중 FTA 체결을 위한 ‘지루한’ 사전 준비 단계가 마무리될 전망이다. 한-미 FTA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나타난 또 하나의 시한폭탄이다. 벌써 언론에서는 농업 부문에서 타격이 우려된다고 보도하고 있다.

한-중 FTA 추진 목적부터 밝혀야

의외로 여당은 내부 사정 때문인지 입을 다물고 있다. 그러나 야당 등에서는 ‘국면 전환용’ ‘졸속 추진’ 등의 표현을 써가며 협상 시도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실제로 야당의 주장이 타당한 측면이 있다. 2006년 민간 공동연구가 끝나고 개시된 산·관·학 공동연구가 무려 5년을 끈 뒤 2010년 마무리됐다. 두 나라 정부는 한-중 FTA를 위한 사전협의 회의도 한 차례 개최했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통상장관회담을 실시했고, 이번에 협상 개시를 약속했다. 지금까지의 일정을 보면, 왜 하필 지금인지 그 이유가 명확하지는 않다. 한-미 FTA가 비준되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임기 말 업적 관리 차원인가. 이명박 정부가 그 이유를 분명히 밝히는 것이 국내 반발을 그나마 완화하는 길일 것이다. 이제까지 특히 통상 분야에서 권력 핵심부에서 갑자기 결단을 내리고 추진한 결과, 우리 국민이 그 정책 실패의 부담을 뒤집어쓴 경우를 너무나 많이 당했기 때문이다.

졸속 추진이라는 말에 현 정부는 발끈할 수 있다. 오래전부터 준비해오고, 꼼꼼히 따져볼 것은 다 따져봤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도대체 무엇을 따져봤는지 알 길이 없다. 현재로선 우리 정부의 안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려진 것이 없다. 일례로 한-중 FTA가 타결됐을 때 농업 분야에 미칠 피해에 대해 국내 연구기관들조차 한-미 FTA의 2~5배라는 모호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한-중 FTA가 어느 정도 파괴력을 가진 폭탄인지 국민은 답답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그 공포는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 와중에 신임 박태호 통상교섭본부장은 1월12일 ‘선 민감 분야 협의 후 본협상’이라는 추진 방식만을 설명했다. 그에 앞서, 한국 정부는 어떤 목적으로 한-중 FTA를 추진하는지 그 이유부터 밝혀야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중 FTA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 것인가? 이와 관련해 몇 가지 생각할 점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FTA 만능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 FTA 찬성론자들에게는 ‘매국노’, 반대론자들에게는 ‘쇄국주의자’라는 표현을 쓴다. 마치 구한말 우리 역사의 단면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FTA는 통상정책의 한 종류이지, 나라 정책의 전부가 아니다. 통상정책은 기본적으로 내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고안된다. 만약 특정 통상정책의 추진으로 인해 발생하는 국내적 측면의 사회적 비용이 더 클 경우 그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 더구나 현재 세계 정치·경제 질서는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신자유주의적 ‘묻지마’ 개방의 부작용으로 중병을 앓고 있다. 한국 경제의 과도한 개방성은 더 이상 지속적인 성장을 담보해줄 수 없다는 것도 정설이다. 지금 시기는 개방이라는 폭주기관차에 계속 몸을 맡길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적게 다치면서 기관차에서 뛰어내릴까를 고민해야 할 때다. FTA에 따른 피해 대책 마련 미비를 근거로, 차기 정권에서의 재논의를 주장하는 일부 정치인들도 이 부분은 같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유연하고 다양한 형식 지닌 FTA

둘째, FTA 형식을 절대화해서도 안 된다. 이미 많은 연구에서 FTA는 매우 유연한 개념이며, 다종다양한 형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한국 정부만 ‘화석화’된 전방위·전면적, 그리고 높은 수준의 포괄적 FTA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 이는 ‘이익균형’ 운운하며 현 정권을 지난 정권과 차별화하려는 이들도 귀담아들어야 한다. 특히 현재와 같은 비대칭적 한-중 무역 구조 속에서 높은 수준의 포괄적 FTA를 추진했을 경우, 대기업에는 유리하고 중소기업에는 불리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또 산업에 따라 수혜와 피해 업종이 극명하게 구분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한국 내부의 일부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상대적으로 취약한 중국의 서비스 시장에 진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진출한다 할지라도 실제 이익을 낼 수 있을지를 보장할 어떤 근거도 없다. 결국 한-중 사이의 높은 수준의 포괄적 FTA는, 한국으로서는 피해는 분명하고 이익은 불분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 국민이 낮은 수준의 제한적 FTA를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방법이 있다. 이제까지의 사례로 봤을 때 중국도 절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선택은 아니다.

따라서 한-중 FTA는 원점에서 재고되어야 한다. 물론 중국과의 FTA를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몇 가지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첫째, 미국 등과는 FTA를 맺으며 중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는다면 한-중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일견 타당하다.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 한-중 관계가 마냥 좋을 수만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 그러나 한-미 FTA 재협상을 포함한 한국 통상정책, 구체적으로는 FTA 정책의 전반적인 조정이 이뤄진다면 FTA를 매개로 한-중 관계의 악화는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

둘째, 만약 경제적 쟁점을 줄이고 협정 체결 자체를 중시하는 낮은 수준의 제한적 FTA를 맺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라는 의문이 일 수도 있다. 이 역시 일견 타당하다. 그러나 앞서 밝힌 대로, FTA 형식의 다양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단기적인 경제적 이익은 부차적일 수 있다. 낮은 수준에서 높은 수준으로, 제한적 범위에서 포괄적 범위로 나아가는 양국 경제협력의 장기 로드맵을 짜고 그 속에서 현 단계에 양국 내부 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틀을 고민할 수 있다. 역시 전반적인 FTA 정책의 조정을 전제로 ‘천천히’ 가자는 것이다. 물론 이는 한국이 중·장기적 국가 발전전략 속에 중국을 어떻게 자리매김할지에 대한 전략을 마련하는 것과 동시에 진행해야 할 것이다.

시민의 목소리가 가장 강력한 협상력

한-중 FTA는 시한폭탄임에는 틀림없다. 이 폭탄이 한국 농업의 붕괴와 양극화 심화 등을 촉진하는 ‘설상가상’이 될지, 아니면 전반적인 한국 통상정책에 대한 대안 모색과 실천을 현실화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지, 아직 알 수 없다. 정부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열띤 고민과 노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건전한 의식을 가진 시민들의 목소리가 자유롭게 분출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점이 타국과의 협상 때 가장 강력한 힘이라는 것을 우리나라 정부는 기억해야 한다.

주장환 한신대 교수·중국지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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