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8일 농협의 제5대 회장이 뽑힌다. 은행·보험·증권 등 계열사 22개를 거느리고 총자산이 287조원에 이르는 거대 금융그룹의 최고 수장을 뽑는 자리다. 하지만 선거를 치르기도 전에 후보 자격 시비가 일고 불법 선거운동에 따른 검찰 수사가 시작되는 등 재선거 우려가 나오고 있다.
7억원 연봉 임원의 출마 선언
11월4일부터 접수를 받아 10일에 끝난 후보 등록 기간에 최원병 현 농협중앙회 회장(비상근 명예직)을 비롯해 김병원 전남 나주 남평농협 조합장, 최덕규 경남 합천 가야농협 조합장 등이 등록했다. 이번 선거에서 당선한 회장은 전국 1170여 곳의 지역조합과 245만 명의 조합원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 때문에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도 중요한 구실을 할 거라는 전망이 많다.
그런데 최원병 현 회장의 입후보 자격 시비가 불거졌다. 최 회장은 자신이 연임을 제한한 농업협동조합법에서 자신만을 예외로 해 논란이 일었다(883호 초점 ‘대통령 친구는 농협 회장 재임하나’ 참조).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과 경북 포항 동지상고 선후배 사이다. 청와대 등 권력으로부터 연임 지원을 받는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는 배경이다.
입후보 자격 시비의 핵심은 최 회장이 농협중앙회 정관을 어기고 출마했다는 논란이다. 개정 농협중앙회 정관 제74조 2항은 ‘회장 임기 만료일 현재 본회 또는 회원의 상임인 임원·직원, 본회 또는 회원의 자회사 및 본회 또는 회원의 출연으로 운영되는 관계법인의 상근 임직원, 조합감사위원장과 공무원의 직을 사직한 지 90일을 경과하지 아니한 자’에 대해 피선거권을 제한하고 있다. 현직에 있으며 영향력을 행사해 선거의 공공성을 해칠 위험을 차단하려고 마련한 조항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최 회장의 경우 임기 종료일(12월26일) 90일 전에 농협 및 자회사의 상근직뿐만 아니라 농협이 출연한 법인의 상근직에서 물러나야 입후보가 가능하다.
농협중앙회 노조는 이 조항을 근거로 최 회장이 후보 자격이 없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최원병 회장은 11월10일 현재 농협중앙회와 농민신문사에서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해 두 곳에서만 7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았다. 아울러 농협문화복지재단·농협학원에서 이사장을, 농촌사랑범국민운동본부에서 상임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이 때문에 농협중앙회 노조는 성명을 통해 “농민신문사는 농협중앙회를 회원으로 하고 있으며 신문사의 운영에도 참여할 권리를 갖고 있어 관계법인에 해당하고, 최원병 회장은 보수를 농민신문사로부터 지급받고 있으며 발행인이므로 상근 임원직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노조는 “농촌사랑범국민운동본부의 상임공동대표로서 상근 임원직을 유지하고 있어 농협중앙회 정관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다”며 최 회장에게 후보 사퇴를 요구했다. 농협중앙회 노조는 정관의 이 조항을 근거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문제를 제기했다. 앞서 농협은 이번 선거를 중앙선관위에 위탁해, 서울선관위가 이번 농협중앙회장 선거를 관리하고 있다.
선관위는 노조의 질의에 대해 농림수산식품부와 농협중앙회·농민신문사·농협문화복지재단·농협학원·농촌사랑범국민운동본부 등에 다시 물었다. 선관위 관계자는 “선관위는 선거 절차만 위임받은 것이어서 노조 쪽 질의를 어떤 식으로 판단할지를 농협중앙회와 농림수산식품부에 물어본 것”이라고 말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농협중앙회가 판단한 일”이라고 선관위에 밝혔고, 농협중앙회는 나머지 단체들의 의견을 모아 “최 회장이 후보 자격이 있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농협중앙회는 답변에서 최 회장이 상근직으로 일하고 있지만 농협이 출연한 기관이 아니며, 농협문화복지재단·농협학원·농촌사랑범국민운동본부 등은 농협이 출연한 기관이지만 상근직으로 일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또 피선거권을 제한하려면 △자회사 또는 출연으로 운영되는 관계법인 △상근 임직원 두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하지만, 최 회장의 경우는 둘 중 하나만 적용돼 피선거권이 제한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출연은 개인 혹은 단체가 자신의 의사에 따라 돈을 내거나 의무를 부담해 재산상의 손실을 입고 타인의 재산을 늘리는 일을 뜻한다. 출연 재산의 종류에는 돈, 인력, 자재 등 제한이 없다.
“농민신문사 농협 출연 기관 맞다”
노조는 농협중앙회 쪽의 이런 해석을 정면 반박하고 있다. 특히 농민신문이 농협 출연 기관이 아니라는 해석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 선관위가 현직 회장의 입후보 자격 논란과 관련한 판단을 농협중앙회에 다시 물은 것은 객관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노조 관계자는 “선관위가 현직 농협중앙회장의 후보 자격에 대한 판단을 소속 단체인 농협중앙회에 물은 것부터 객관적일 수 없을뿐더러, 농협중앙회 쪽의 해석 역시 사실을 무시한 결과”라고 말했다.
노조 쪽은 이런 주장의 근거로 지난 1982년 농민신문 설립 당시 이사회 회의록과 정관 등을 공개했다. 자료를 살펴보면 농민신문사는 법인 설립 때 자산으로 현금 48만원을 신고했다. 이는 농협중앙회가 지원한 금액이다. 또 24명을 농협중앙회에서 파견하고, 그 급여를 농협중앙회가 부담하는 것으로 돼 있다. 이 밖에도 농민신문사의 사무공간(당시 54평·178.5㎡)과 차량, 운반기구 등을 지원하기로 의결했다. 은 1964년 농협중앙회의 한 부서가 발행하는 으로 창간돼, 1982년 사단법인 농민신문사로 독립했다.
노조의 질의를 받은 ㄴ법무법인과 ㄷ법무법인은 농민신문사가 농협이 출연한 기관이 맞다고 판단했다. ㄷ법무법인은 △설립 당시 기본 재산이 출연되고 △설립 당시 재무제표에 출연금 48만원이 반영되고 △농민신문사 정관에 출연 재산이 명시돼 있고 △이사회 회의록·국정감사 증언록에 출연을 인정하고 △설립 당시부터 10여 년간 임직원 대부분이 농협중앙회에서 파견된 사실 등을 고려할 때 농민신문사는 농협중앙회가 설립·운영한 것으로 보이고 그 지원은 출연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여러 사항을 종합할 때 농민신문사는 농협중앙회의 출연으로 운영되는 관계법인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ㄴ법무법인도 같은 의견을 내며 현재도 농협중앙회 직원 23명이 파견돼 편집국장·출판국장·경영지원국장·논설위원 등 핵심 요직을 맡고 있어 이 역시 출연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현행 농협중앙회 정관이 관계법인의 상근 임직원이 현직을 유지하며 선거의 공정성을 해치는 것을 막으려고 마련된 점을 고려할 때 출연이 맞다고 판단했다. 결국 농협중앙회가 출연한 농민신문사에서 회장직을 맡고 있는 최원병 회장은 후보 자격이 없다는 해석이다.
선관위는 11월11일 현재까지 공식 판단을 내리지 않고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11월)14일 최원병 회장의 후보 자격에 대한 논의를 할 예정”이라며 “후보 자격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선관위가 그 판단을 내릴 권한이 있는지 등을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관위가 명확한 판단을 내리지 않고 선거가 치러져 최 회장이 당선될 경우 법정 다툼으로 치달을 것으로 예상된다. 농협 내부 관계자는 “최 회장이 후보로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당선된다면 패배한 후보 쪽에서 가만히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때문에 농협중앙회 노조는 불필요한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려면 선관위가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노조 관계자는 “이번 선거에 대한 선관위의 ‘선거사무안내’를 보면 ‘후보자의 등록 신청이 수리된 후 피선거권이 없는 것이 발견된 때에는 서울시 선관위가 등록 무효(취소) 처리하고 공고·통지함’이라고 돼 있어 선관위가 입후보 자격을 판단할 권한이 있다고 할 수 있다”며 “그 권한을 포기하면 이는 이명박 대통령과 최원병 회장의 지연·학연과 내년 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외압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선관위 관계자는 “잘 모르겠다”며 말을 아꼈다. 최원병 회장과 맞서는 김병원 남평농협 조합장 등은 최 회장과 정부가 추진하기로 합의한 농협의 경제사업과 금융사업을 나누는 정책을 반대하고 있다.
누가 뽑혀도 재선거 논란 불가피
최원병 회장 외의 다른 후보들도 불법 선거운동 여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선관위는 지난 10월 최원병 회장의 연임을 반대하는 우편물이 농협 관계자들에게 유포되자 서울중앙지검에 수사를 의뢰한 바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현재 서울중앙지검에서 농협 관계자들을 소환하는 등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누가 당선되더라도 재선거를 치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이에 대해 농협 내부 관계자는 “회장 선거 때마다 상대 후보에 대한 음해가 오가는 등 문제가 있었지만, 이번처럼 후보 자격 시비와 불법 선거운동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경우는 처음”이라며 “누가 당선되더라도 농협이 재선거라는 홍역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그러는 사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나 농협의 신·경 분리 등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그 피해는 농민과 농협 직원들에게 돌아갈 공산이 크다”고 우려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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