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젤차를 가져본 사람은 안다. 자동차 정기검사에서 오염물질 배출이 많아 퇴짜를 맞을지 모른다는 걱정을. 또 도로에서 불시에 하는 오염물질 배출 검사를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이 때문에 가솔린 차량에 비해 탁월한 연비와 파워는 물론 싼 기름값에도 디젤차를 사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서유럽에선 디젤 점유율 50% 넘어
하지만 점점 옛말이 되고 있다. 신기술로 무장한 ‘클린디젤’은 기존 가솔린엔진보다 오염물질 배출이 훨씬 적다. 오히려 친환경차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디젤차 운전자를 괴롭힌 환경오염이라는 죄의식에서, ‘환경개선부담금’이라는 비용 부담에서 벗어나게 한다.
정부는 클린디젤차를 ‘그린카’의 하나로 정의했다. 지난해 12월 ‘그린카 발전 로드맵’을 발표하며 전기차,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 하이브리드차, 연료전지차와 함께 클린디젤차를 그린카에 포함시켰다. 클린디젤차는 현재 유럽연합(EU)이 정한 ‘유로(EURO)5’ 기준을 충족하고 이산화탄소 규제에도 대응이 가능하다. 유로5는 승용차 1km를 운행할 때 질소산화물 0.18g, 미세먼지 0.005g, 탄화수소와 질소산화물은 0.23g 이하로 배출하도록 하는 규제다.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현대차 i40가 가솔린 모델에 비해 디젤 모델이 20% 적을 정도로 환경친화적이다. 게다가 하이브리드차와 전기차 등에 비해 가격경쟁력은 앞서고 연비도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다.
기름값이 계속 치솟는 상황에서 디젤과 휘발유 가격차가 벌어져 디젤차의 장점을 한층 키우고 있다. 또 소비자의 선택이 늘어나자 자동차업체들도 기술 발전에 주력해 기존 약점으로 꼽히던 소음과 승차감 등이 개선되는 ‘선순환’ 구조를 보이고 있다. 산업연구원 이항구 주력산업팀장은 “전기차 등은 양산하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한 데 반해 클린디젤차가 환경 규제에도 손쉽게 적응할 수 있고 연비도 좋은 장점을 갖추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유럽 쪽 자동차업체의 고급 디젤차가 인기를 끌면서 과거 디젤차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장점으로 유럽에서는 이미 디젤차가 대세다. 서유럽 시장에서 클린디젤차의 승용차 시장 점유비가 2008년 52.7%로 절반을 넘는다. 프랑스와 벨기에서는 각각 77.3%, 78.9%로 압도적인 우위다. 미국 시장에서도 지엠이 쉐보레 브랜드의 소형차 크루즈의 디젤차 출시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가솔린 차량이 압도적인 시장마저도 디젤차가 시대적 추세임을 예고했다.
국산차 i40, 디젤 모델이 판매 앞서
국내 시장에서도 디젤차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유럽 쪽 자동차업체들이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지난 1~9월 국내에서 판매된 수입 디젤차는 모두 2만7825대로 전체 수입차 판매대수 7만9694대 중 34.9%를 차지했다. 이미 지난해 수입 디젤차 판매량(2만3006대)을 넘어섰다. 채영석 국장은 “기존 디젤차가 우위를 보이던 스포츠실용차(SUV), 레저용 차량(RV) 외에도 승용차 시장에서도 디젤 모델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업체들도 분주히 디젤차를 선보이고 있다. 현대차는 10월20일 i30의 새 모델을 선보였다. 새 모델은 가솔린 모델(3개 등급)과 함께 디젤 모델(2개 등급)이 있다. 최고 출력 128마력에 연비 20.0km/ℓ인 디젤 모델에 현대차는 큰 기대를 나타냈다. 현대차 국내영업담당 김충호 사장은 “최근 내놓은 i40의 경우 국내 시장에서 팔리는 차의 70%가 디젤”이라며 “i30도 디젤이 50%를 넘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또 “i30는 전세계 판매 목표 21만 대 중 50%를 유럽에서 팔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현대차는 i30 디젤 모델로 국내 시장은 물론 본고장인 유럽 시장까지 공략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경쟁 모델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링카 가운데 하나인 폴크스바겐 골프를 꼽는다. i30는 골프보다 1천만원 정도 싼 동시에 연비와 파워 면에서 상대적인 장점을 보이고 있다. 골프 2.0TDI(17.9km/ℓ·140마력)보다 파워는 약하지만 연비는 앞서고, 골프 1.6블루모션(21.9km/ℓ·105마력)과 비교하면 연비는 뒤지지만 파워는 앞서는 모양새다. 특히 연비는 기존 경차보다 높다. 한국지엠의 스파크(연비 17km/ℓ)는 물론 기아차의 모닝(19km/ℓ)도 뛰어넘는다.
엑센트도 디젤 모델이 출시돼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엑센트는 지난 5월 출시 이후 내수시장에서 2425대가 판매돼 전체 엑센트 판매량의 15% 비중을 차지했다. 기아차의 쏘울 역시 2008년 9월 출시된 이후 4347대가 판매돼 전체 판매량의 6.9%를 차지했다. 이처럼 소형차 시장에서 디젤 모델이 인기를 끌자 한국지엠도 유럽 수출용인 아베오의 1.3ℓ 디젤 모델을 국내에 내놓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형차 시장에서도 국내 자동차업체가 외국 업체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지난 9월 출시된 현대차의 i40는 2006년 출시된 쏘나타 디젤 모델의 실패를 딛고 내놓은 두 번째 중형 디젤 모델이다. 현대차는 폴크스바겐의 파사트와 경쟁을 펼쳐 중형차 시장에서도 승부를 펼쳐보겠다는 계획이다. 연비는 1ℓ당 18km로 폴크스바겐의 파사트 2.0TDI(15.1km/ℓ)보다 19% 우수하다. 아울러 중형 차량에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정숙성까지 확보했다고 현대차는 밝혔다. 정속 주행시 63dB로 가솔린 모델과 똑같고, 가속 부밍음(액셀을 밟으면 엔진의 회전 수와 출력이 높아지며 발생하는 소리)은 디젤 모델이 82dB로 가솔린 모델(83dB)보다 오히려 작다. i40 가솔린 모델(2775만~3005만원)보다 100만원가량 싸다는 장점도 있다.
핵심 부품의 자립화란 과제 풀어야
자동차업계 전문가는 “나날이 비싸지는 기름값과 환경규제로 연비와 친환경이 자동차 경쟁력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디젤차는 현재 전기차 등에 비해 상대적인 장점을 갖추고 있어 기존 소형차 시장을 넘어 중·대형 승용차 시장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핵심 기술의 국산화 등 기술력을 지적했다. 이항구 팀장은 “정부가 그린차 육성 차원에서 5년 동안 1천억원을 클린디젤 관련 부문에 투자하는 등 지원을 하고 있다”면서도 “핵심 부품을 외국에서 수입하는 등 가솔린 모델에 비해 핵심 부품의 자립화가 남은 과제”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하이브리드차는 일본에 비해, 클린디젤차는 유럽에 비해 기술력이 떨어진 상황이어서 자칫 샌드위치 상황이 될 수도 있다”며 “이를 극복하려면 기술력 강화와 함께 시장 상황을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