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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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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창의적인 기업의 두 얼굴

중국 NGO들이 발간한 보고서 ‘애플의 이면 II’ 살펴보니… 인권 침해, 환경 오염 등 지역 사회 파괴 넘어 인접국에도 악영향 끼쳐
등록 2011-09-22 16:05 수정 2020-05-03 04:26
중국 환경 관련 비정부기구(NGO)들이 애플 하청업체들의 환경오염에 대해 조사하자, 쿤산시 주민들이 무릎을 꿇고 “제발 살려달라”며 호소하고 있다. 이곳에 위치한 캐다일렉트로닉스가 애플에 부품을 공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 '애플의 이면 II' 제공

중국 환경 관련 비정부기구(NGO)들이 애플 하청업체들의 환경오염에 대해 조사하자, 쿤산시 주민들이 무릎을 꿇고 “제발 살려달라”며 호소하고 있다. 이곳에 위치한 캐다일렉트로닉스가 애플에 부품을 공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 '애플의 이면 II' 제공

은퇴한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는 전자우편으로 소비자와 활발히 소통했다. 잡스는 스웨덴 음악 프로듀서의 질문에도, 한 업체의 질문에도 직접 확인한 뒤 답을 했다. 지난해 한 누리꾼과 전자우편을 통해 폭스콘의 노동착취와 관련한 논쟁을 벌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제이 예렉스라는 누리꾼은 잡스에게 아이폰·아이패드 등을 조립하는 중국 폭스콘에서 일어난 연쇄 자살사건과 관련해 “스티브, 애플은 더 잘할 수 있어”라는 짧은 전자우편을 보냈다. 그러자 잡스는 “모든 자살이 비극적임에도 폭스콘의 (자살) 비율은 중국 평균보다 훨씬 아래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누리꾼이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표현에 의문을 제시하자, 잡스는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다시 답한 전자우편에서 “당신 스스로 숙지해야만 한다. 우리는 지구에서 어떤 기업보다도 더 잘하고 있다”며 애플의 사회적 책임 경영 사이트를 소개했다. 애플의 하청업체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보인 것이다.

애플 하청업체, 중금속·오폐수 방류

잡스의 말대로 애플은 하청업체의 사회적 책임을 정말 자신할 수 있을까? 지난해와 올해 내놓은 애플의 보고서를 비교하면 자신감은 많이 퇴색했다. 2010년에 발간한 ‘협력업체와 공급업체에 관한 보고서’는 자신만만했다. 보고서는 “애플은 우리 제품이 만들어지는 어느 곳에서든 가장 높은 수준의 사회적 책임을 확실히(ensuring) 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와 거래하는 모든 기업은 애플 제품이 만들어지는 어느 곳에서든 안전한 노동환경을 제공하고, 노동자를 존중하고, 환경적으로 책임 있는 제조 과정을 반드시 갖춰야만(must)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2월에 발간한 보고서에는 미묘하지만 뚜렷한 변화가 있었다. 이번에는 몇 개의 문구를 바꿔 “애플은 부품 제조업체 모두에게 가장 높은 수준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를 독려하고(driving) 있다. 우리는 애플 제품이 만들어지는 어느 곳에서든 부품 제조업체들에 안전한 노동환경을 제공하고, 노동자를 존중하고, 환경적으로 책임 있는 제조 과정을 갖추도록 요구하고(requiring) 있다”고 밝혔다.

‘의무’(must)가 ‘요구’(require)로 내려앉았다. 1년 사이의 변화다. 확신에 찬 태도가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하는 수준으로 바뀌었다. 그만큼 애플은 하청업체에서 벌어지는 열악한 노동환경과 인권침해, 환경오염 등에 대한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화려한 디자인의 애플 로고와 제품 뒷면에는 추악한 모습이 감춰져 있다는 것이다.

최근 이를 뒷받침하는 보고서가 또 나왔다. 중국의 환경 관련 비정부기구(NGO)들은 지난 1월 ‘애플의 이면’을 발간한 데 이어 8월31일 ‘애플의 이면 II’를 발표했다. 이번 보고서는 베이징과 상하이, 광저우 등 중국 각지에 퍼져 있는 애플의 하청업체가 일으키는 환경오염과 지역사회 파괴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보고서 중국 환경 관련 NGO들이 지난 8월 주요 애플 하청업체의 노동환경과 지역사회에 대한 영향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홍콩의 시민단체들이 폭스콘에서 벌어진 연쇄 자살 사건 등 열악한 노동환경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보고서 '애플의 이면II' 제공

보고서 중국 환경 관련 NGO들이 지난 8월 주요 애플 하청업체의 노동환경과 지역사회에 대한 영향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홍콩의 시민단체들이 폭스콘에서 벌어진 연쇄 자살 사건 등 열악한 노동환경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보고서 '애플의 이면II' 제공

보고서를 보면 이들이 초래한 환경오염은 심각했다. 27개 애플 하청업체들이 니켈·구리 등 중금속을 기준치를 초과해 토해내는 것으로 드러났다. 중국 내륙의 우한시에 있는 메이코일렉트로닉스는 2005년 공장이 세워진 이후 줄곧 중금속을 방류했으며 한 해 1만2천t의 오수를 방류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오·폐수가 흘러들어간 난타이쯔 호수의 물을 조사한 결과 중금속인 구리가 기준치의 56~193배에 이르렀다. 이 호수의 물은 양쯔강으로 흘러들어가 더 많은 지역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한 지역 주민은 “우리 세대는 오염된 물을 마시지만, 다음 세대는 독이 든 물을 마실 수 있다”고 걱정했다. 이 업체는 애플뿐만 아니라 삼성전자, 모토롤라 등에 휴대전화 필수 부품인 인쇄회로기판(PCB) 등을 공급하고 있다.

사정은 다른 업체도 마찬가지였다. 상하이와 인접한 쿤산시의 캐다일렉트로닉스도 이미 2006년에 기준치가 넘는 오·폐수를 방류해 10만위안의 벌금과 추가 증설 금지 등의 처분을 받았다. 그럼에도 계속되는 오염된 배기가스와 오·폐수 유출로 지역 주민들은 자녀를 다른 지역의 학교로 보내고 있다. 공장과 인접한 한 마을에서는 2007년 이후 60명의 주민 중 9명이 암으로 숨지거나 앓고 있다. NGO의 조사 도중에는 지역 주민들이 이들에게 무릎을 꿇고 “제발 살려달라”는 하소연까지 했다. 이 밖에도 이비덴·폭스콘 등에서도 큰 차이가 없었다.

NGO들은 1차 보고서에서 노동자들이 신경장애를 일으키는 노말헥산에 중독돼 이른바 ‘앉은뱅이병’에 걸리는 등 심각한 노동환경을 고발했다. 중국 내 폭스콘을 비롯한 롄젠테크놀로지, 동관, 다푸 등의 하청업체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이번 추가보고서에서 다시 노동자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다음 세대에게도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경고를 한 셈이다.

“제발 살려달라” 호소하는 지역 주민들
보고서 중국 환경 관련 NGO들이 지난 8월 주요 애플 하청업체의 노동환경과 지역사회에 대한 영향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보고서 '애플의 이면II' 제공

보고서 중국 환경 관련 NGO들이 지난 8월 주요 애플 하청업체의 노동환경과 지역사회에 대한 영향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보고서 '애플의 이면II' 제공

애플의 하청업체에서 일어난 비극은 중국에서만 그칠까? 경제학에서는 ‘외부효과’라는 용어가 있다. 경제활동과 관련해 제3자에게 의도하지 않은 혜택이나 손해를 가져다주면서도 그 대가를 받지도, 비용을 내지도 않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매년 미국에서만 5억5천만 개가 팔리는 맥도널드의 ‘빅맥’ 가격은 단돈 4달러다. 쇠고기, 노동력, 안전검사, 임대료 등에 드는 비용을 줄이려고 애쓴 결과다. 하지만 빅맥을 생산하며 발생시킨 12억kg의 이산화탄소를 비롯해 물 사용과 토양 파괴 등의 비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당뇨병·심장병 같은 질병의 치료 비용도 마찬가지다. 결국 이런 외부효과에 대한 비용은 누군가 부담해야 한다. 그 비용은 맥도널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지불해야 한다. 기후변화로 인한 이주 비용, 더 높은 보건의료 비용 따위가 그에 해당한다. 인도 과학환경센터는 숲의 나무를 모두 베어버린 땅에서 사육된 소의 고기로 만든 햄버거값은 족히 200달러는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애플의 아이폰4나 아이패드의 경우는 어떨까? 하청업체들은 노동자에게 가혹한 노동환경을 강요하는 것은 물론 중국의 자연을 오염시키고 지역사회를 파괴하고 있다. 인접한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예컨대 우한시의 메이코일렉트로닉스의 오·폐수가 양쯔강으로 흘러드는 상황에서 이는 농수산물 오염으로 확산될 수 있다. 그 농산물을 한국에서 수입해 소비하므로 한국도 영향권에 드는 셈이다.

아이폰4(16G)와 아이패드2(16G)의 국내 출고가는 각각 81만4천원, 78만4천원이다. 빅맥처럼 이 가격에는 외부효과에 따른 비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보고서를 보면 그 비용을 중국은 물론 한국 사회가 부담할 가능성이 크다. 아이폰의 국내 사용자는 9월 기준으로 전체 스마트폰 사용자의 20%가량인 300만 명이다.

애플은 높은 영업이익률을 자랑하는데, 비용을 사회에 전가하는 ‘외부효과’에 기댄 측면이 강하다. 한국·일본을 비롯한 전세계 업체에서 부품을 공급받아 폭스콘 등 다른 업체가 이를 조립하는 형식이다. 값싼 부품과 노동력을 이용해 무척 높은 영업이익률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2분기 영업이익은 93억7900만달러였으며, 영업이익률은 32.8%에 달했다. 1만원을 팔면 그중 3280원이 애플의 이익이 된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는 9.5%, LG전자는 1.1%의 영업이익률로 큰 격차를 보였다. 국내에서도 한국 기업들이 애플을 본받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한 국내 제조업체 관계자는 “아이폰의 성공 이면에는 하청업체에서 일어난 노동자 착취와 환경파괴 등이 있어 애플식 경영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특히 애플은 이윤 추구를 위해 자체 생산공장 대신 인건비가 싸고 관리가 허술한 지역의 협력업체와 거래 중이며, 이들 업체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책임지려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애플은 이런 비판에 대해 아무런 공식 견해를 밝히지 않고 있다. 2차 보고서의 공동 저자인 마준 공공환경연구소(IPE·Institute of Public & Environmental Affairs) 사무국장은 와의 인터뷰에서 “하청업체들이 애플과 거래를 하는지, 그리고 이들 기업이 법규를 어기고 있는 것과 이로 인해 비판이 반복되는 사실을 아는지 질문했지만 답이 없었다”고 말했다.

마준 사무국장은 애플의 ‘비밀 정책’으로 어떤 기업이 애플의 하청업체인지 확인하는 것조차 어려워 조사가 매우 힘들었다고 밝혔다. 애플은 하청업체 리스트를 철저하게 베일 속에 감춘다. 자사 보고서에도 아동노동·인권침해 등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이를 개선했다는 내용은 있지만 기업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또 부품 공급이나 생산과 관련된 계약을 맺을 때는 비밀 유지 조건을 꼭 내세운다. 아이폰4에 탑재된 액정디스플레이(LCD) 패널이 LG디스플레이 제품이라는 사실이 공개된 것은 스티브 잡스가 제품을 설명하며 스스로 밝혔기 때문이다.

“다양한 압력으로 기업 문화 변화 요구해야”

마준 사무국장은 “보고서에서 언급된 캐다일렉트로닉스의 경우 지난해 애플의 아시아 제조 관련 계약 책임자가 아시아 기업체들로부터 뇌물을 받아 체포된 일이 있어 애플 공급업체로 확인할 수 있었다”며 “애플의 이런 ‘블랙박스’ 정책으로 환경오염과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는 회사를 하청업체로 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올 초 보고서를 발간한 이후 (애플에 대한) 소비자들의 비판이 있었지만 충분하지는 않았다”며 “애플의 잘못된 정책을 소비자에게 지속적으로 알리면 환경을 오염시키는 회사에서 생산되는 최신 제품을 결국 외면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잡스의 은퇴에 따른 애플의 태도 변화 여부를 묻자, 마준 사무국장은 “변화가 있기를 희망하지만 기업 문화가 오랜 기간 형성된 것이어서 다양한 압력 없이는 변화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관련해 애플코리아의 박정훈 부장은 “어떤 업체의 부품을 쓴다거나 하청을 한다는 것을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번 보고서와 관련해 특별하게 언급할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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