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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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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발 잽 피하다 유럽발 카운터 펀치 맞을라

미국 국가채무 한도 증액 타결에 오히려 흔들린 세계 증시…미국보다 유럽 재정위기가 심각한 타격될 가능성 높아
등록 2011-08-11 16:17 수정 2020-05-03 04:26

지난 5월부터 수면 위로 떠오른 미국의 국가채무 한도 증액 문제가 8월 들어 극적으로 타결됐다. 바로 그 순간부터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주가지수는 급락세로 돌아섰다. 비록 금융위기 이후 빛이 바랬다고는 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세계경제의 초강대국이며 기축통화 발행국이다. 미국이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에 몰렸다가 일단 회생한 것은 호재였다. 그럼에도 채무한도 증액 협상이 타결된 직후에 오히려 주식시장이 급락세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조한 미국 경제 성장률

일차적으로는 미국의 채무한도 증액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미국 재정과 국가부채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미국은 재정건전성을 제고하려고 향후 10년간 총 2조4천억달러의 재정지출을 삭감하기로 했는데, 이는 현재 국내총생산(GDP) 대비 90%를 상회하는 미국의 국가부채 부담을 완화하기에는 부족한 수준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향후 10년에 걸쳐 재정지출을 삭감한다는 계획은 앞으로 미국 정부가 경기부양에 사용할 수 있는 재정정책 수단이 별로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재정건전성 이슈뿐만 아니라 협상안 타결에 즈음해 발표된 미국 경제의 성장률이 금융시장에 또 다른 충격을 주었다. 지난해 가을 미국이 제2차 양적 완화를 실시한 이후 소비지출을 비롯한 여러 경제지표가 호전 기미를 보였다. 이를 기반으로 올해 초에는 미국 경제가 3% 내외의 성장을 달성할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됐다. 올 상반기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주가지수가 상승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긍정적 전망을 전제하고 있었다. 그런데 8월 들어 발표된 경제지표들은 상반기 미국 경제가 실제로는 극히 부진했음을 보여줬다. 미국 경제의 2분기 성장률은 시장의 예상치인 1.8%를 크게 낮은 1.3%에 머물렀으며, 지난 1분기 성장률은 당초 발표됐던 1.9%보다 크게 낮아진 0.4%로 수정됐다. 게다가 채무한도 증액 협상을 계기로 추가적인 경기부양 실탄도 사용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부각됐다. 이러한 일련의 부정적 소식들에 시장은 주가 급락으로 반응했다. 이는 미국 경제의 성장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조정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미국 경제의 부진은 당연히 한국 경제의 성장 전망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미국 요인만으로 코스피지수가 8월2~4일 무려 153포인트 급락한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인 수출을 보면, 10여 년 전 20%대이던 대미수출 의존도는 올해 상반기에 10.1%로 낮아졌으며, 신흥국으로의 수출이 무려 70%에 달하고 있다. 즉, 미국이 우리 수출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낮아지고 신흥국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현금 마련 위한 외국인 주식 매도

따라서 미국 이외에 코스피의 급락을 설명할 수 있는 또 다른 변수를 볼 필요가 있다. 다름 아닌 유럽이다. 그리스와 포르투갈을 거쳐 이탈리아와 스페인으로 확산 조짐을 보이고 있는 유로존의 재정위기는 해결이 쉽지 않다. 근본적으로 보자면 재정 통합 없는 화폐 통합으로서의 유로화 체제의 한계가 있다. 또한 단기적으로는 유로 지역의 3, 4대 경제대국인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재정위기를 막는 데는 현재의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규모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들의 채무상환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는 이유다. 만약 이들이 국가채무 상환에 곤란을 겪게 된다면, 국채뿐만 아니라 관련 신용부도스와프(CDS) 등으로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유럽의 주요 금융기관들은 심각한 자금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위험 때문에 유럽 주요 은행들의 주가는 15년래 사상 최저 수준으로 하락하고 있으며, 이들의 CDS도 최고치에 근접하고 있다. 최근 우리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도 공세는 이러한 글로벌 신용경색이 발생할 것에 대비해 미리 현금을 확보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요컨대 우리 코스피 시장을 비롯한 주요국의 주가 급락은 크게 두 가지 요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첫째는 미국 경제의 더블딥 가능성이며, 둘째는 유로존의 재정위기 확산에 따른 신용경색 가능성에 대비하려는 현금 확보 노력이다. 그런데 현재 시점에서 미국 경제의 더블딥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상반기 미국 경제의 부진은 중동·북아프리카(MENA) 지역의 정정 불안에 따른 고유가, 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부품 조달난, 국채한도 증액 논란에 따른 소비 및 투자 심리 위축 등 부정적 변수들이 순차적으로 작동해 나타난 것인데, 이러한 요인들이 점차 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부진한 고용시장, 여전히 침체된 주택시장, 가계의 부채조정 지속 등을 고려할 때 미국 경제가 상당 기간 저성장을 이어가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렇더라도 다시 침체에 빠질 정도로 악화되지는 않을 듯하다.
그러나 유럽의 재정위기는 또 다른 문제다. 유로존의 핵심 국가인 독일과 프랑스의 적극적 지원에 힘입어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눈앞의 위기를 모면할 수는 있겠지만, 유로화 체제의 근본적 취약점은 쉽사리 해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최근 한 고비를 넘긴 그리스와 포르투갈도 유동성 지원에 힘입어 일단 발등의 불을 끈 것일 뿐, 언제 다시 문제가 될지 모른다. 이처럼 불안한 상황에서 글로벌 투자자들은 안전자산으로 도피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위기에 대비해 현금을 확보하려고 할 것이다. 우리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도 공세가 당분간 더 지속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외자 이탈 대비 안전장치 필요

우리 경제의 기반은 기본적으로 양호하다. 수출시장 다변화에 힘입어 선진국에 대한 의존도는 크게 낮아졌으며, 우리 주력상품의 경쟁력도 나날이 개선되고 있다. 그러나 유로존의 재정위기는 우리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문제다. 유로존의 재정위기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위기가 지속되는 한,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을 비롯한 우리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는 당분간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해외발 요인으로 인해 외국인 투자자금이 갑자기 대규모로 유출될 가능성에 대비해 여러 가지 안전장치를 마련해두는 것이다.
임일섭 농협경제연구소 거시경제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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