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먹튀 신화’ 관람료는 4조원?

론스타의 외환은행 대주주 적격 판단 또 미룬 금융위… 해외투기자본에 무리하게 매각한 정부의 ’원죄’가 치른 댓가들
등록 2011-05-18 16:11 수정 2020-05-03 04:26

미국계 헤지펀드 론스타의 ‘먹튀’가 끝내 성공할까.
론스타 주연, 금융위원회·대법원 조연의 ‘론스타판 돈을 들고 튀어라’ 이야기는 끝날 듯, 끝날 듯하면서도 이어지는 드라마 같다. 외환은행 주식을 팔고 한국을 뜨려는 론스타의 꼬리가 생각보다 길기 때문이다. 여기에 론스타의 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시민단체와 뒷짐 지고 있는 금융 당국, 그리고 론스타에 불법의 딱지를 붙인 대법원이 뒤엉키며 이야기의 결말은 내다보기 힘들게 됐다. 금융위원회(위원장 김석동)는 5월12일 론스타의 운명을 결정할 심사를 고등법원 판결 뒤로 미루겠다고 밝혔다. 1998년 한국 땅에 상륙한 뒤 승승장구하던 론스타가 외환은행 주식을 내다판 돈 4조원을 챙기고 마침내 한국을 뜰 수 있을까. 남은 쟁점은 두 가지다.

» 지난 3월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관 계단 앞에서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 투기자본감시센터 등의 관계자들이 론스타의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지난 3월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관 계단 앞에서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 투기자본감시센터 등의 관계자들이 론스타의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정부의 무리한 외환은 매각

첫째, 론스타가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이 있느냐다. 이 문제는 외환은행 주식 51%를 팔고 한국을 떠나려는 론스타의 발목을 잡는 핵심 쟁점이다. 이야기는 지난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카드를 마구 발급하던 신용카드 회사들은 줄줄이 부실의 덫에 빠졌다. 그 가운데 외환은행이 가장 심각했다. 자회사인 외환카드의 부실을 감당할 여력이 없었다.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의 거센 공세 탓에 정부에서 공적자금을 부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외환은행은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이때 때맞춰 등장한 것이 론스타였다. 물론 은행을 아무나 나선다고 다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땅히 금융 당국의 심사를 거쳐야 했다. 은행이 망하면 예금주들이 줄줄이 피해를 보게 돼, 국가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막대하다. 은행의 소유 문제에 금융 당국이 예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특히 론스타는 이미 대표적인 ‘벌처펀드’로 이름 높은 곳이었다. 벌처펀드란 부실화된 기업 또는 부동산을 싸게 사들인 뒤 높은 가격에 되팔아 이익을 취하는 펀드를 가리킨다. 기업의 성장 따위에는 큰 관심이 없다. 법적으로도 론스타는 도저히 외환은행의 주인이 될 자격이 없었다. 은행법을 보면, 산업자본은 금융회사 주식의 10% 이상을 가질 수 없다. 쉽게 말해, 금융기관만 금융회사의 지분을 10% 이상 가질 수 있다. 그런데 론스타는 산업자본에 가깝다.

여기에서 정부는 이해할 수 없는 무리수를 뒀다. 외환은행을 팔기 위해, 론스타의 자격 여부에는 눈을 감아버렸다. 집안 살림이 어렵다고 아이를 검증되지 않은 장사치에게 내다판 격이었다. 당시 정부의 실무책임자는 김석동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1국장과 변양호 당시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이었다. 김석동 국장은 농협경제연구소 소장 등을 거쳐 현재 금융위원장으로 돌아와 있다. 금융 당국의 꼼수는 그 뒤 8년 동안 오랜 논란을 낳았다. 론스타가 외환은행 주식을 매각하려 할 때마다 론스타의 자격 시비가 붙었다. 론스타가 지난해 11월 하나금융과 매각 계약을 맺자 자격 문제는 다시 불거졌다. 논란이 계속되자 금융위가 지난 3월16일 공식 견해를 밝혔다. “론스타의 제출 자료와 회계법인의 확인서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산업자본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한다”는 내용이었다. 론스타가 금융기관이라는 말이다. 맞을까. 금융위의 말을 믿기에는 그동안 쌓은 ‘업’이 너무 많았다.

매각 관련한 외압과 로비 의혹 끊이지 않아

지난 2005년 재정경제부 국정감사장. 양천식 전 금감위 부위원장은 국회에 출석해서 론스타의 자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했다. “(론스타가) 일단 금융업을 영위하는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일반적인 조항으로서는 승인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 더. 2006년 4월7일 재정경제부 업무보고 자리. 이번에는 다름 아닌 김석동 금융위 위원장이 등장했다. 당시 재정경제부 차관보로 출석한 그는 “론스타는 금융기관이 아닙니다. 금융기관이 아닌 자가 은행을 인수하기 위해서는 인가를 하기 위한 어떤 방법이 있어야 합니다. 재무자문사가 네 가지 정도의 방법들을 제시했는데 제가 판단하기에는 그 네 가지 방법의 어느 것도 그렇게 쉽게 인가받을 수 있는 성질이 아닙니다.” 그의 말에는 약간의 해설이 필요하다. 당시 금감위는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넘겨주려고 온갖 수를 검토했다. 그의 증언 속에 등장하는 재무자문사는 다름 아닌 김앤장이었다. 김앤장이 제시한 네 가지 ‘꼼수’를 모두 검토해봤지만, 아무리 봐도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인수할 자격이 없었다는 얘기다. 결국 정부는 론스타가 인수 자격이 없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법을 애써 무시해가며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내다판 셈이었다.

시민단체들은 이 대목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고 있다. 이 부분이 명확해지면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소유할 법적 근거가 사라지게 된다. 론스타가 가진 외환은행 지분 51% 가운데 법적 한도인 10%를 제외한 나머지 41%를 매각해야 한다. 또 의결권은 오직 4%만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만약 론스타가 이를 지키지 않으면 금융 당국이 한도 초과 주식에 대해 매각을 강제할 수 있게 된다. 시민단체들이 금융위에 론스타 관련 심사자료를 모두 공개하고, 론스타의 정체를 밝히라고 압박하는 이유다. 이 부분에 대해 금융위 관료는 “따로 할 말이 없다”고 답을 피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3월 금융위가 내놓은 보도자료를 보면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 금융위는 론스타의 정체를 설명하며 “외국인 주주 및 그 관계회사의 대부분이 우리 법령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 외국에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외국인 주주가 제출한 자료를 기초로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정부의 태도대로라면, 론스타는 금융자본이라서 외환은행 대주주의 자격은 있지만, 정작 진짜 대주주 자격이 있는지 확인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금융위가 투기 의혹이 있는 외국계 펀드에 대해 변변한 조사도 하지 않고, 론스타의 말만 믿고 그 말을 옮겨서 전했다는 뜻이 된다. 이쯤 되면 정부가 론스타 문제에 대해 왜 이렇게까지 게으르거나 직무유기를 하는지 의문이 생길 법하다. 물론, 정부의 이런 태도는 2003년 자격 없는 론스타에 외환은행 인수를 허용하며 스스로 발목을 잡은 ‘원죄’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오히려 왜 2003년에 그런 결정을 내렸는냐는 것이다. 시민단체들이 2003년 정부의 의사결정 과정 자체에 일련의 외압 혹은 로비가 있었는지 의혹을 제기하는 이유다. 장화식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 부위원장은 “정부의 실무책임자가 결정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다른 외부 변수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에 작용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5월1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금융위원회에서 신제윤 금융위 부위원장이 론스타의 대주주 자격 문제에 대한 결론을 서울고등법원에 맡긴다는 요지의 발언을 하고 있다. 이로써 외환은행의 지분 51%를 팔고 한국을 떠나려는 론스타의 시도에 일단 제동이 걸렸다.

지난 5월1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금융위원회에서 신제윤 금융위 부위원장이 론스타의 대주주 자격 문제에 대한 결론을 서울고등법원에 맡긴다는 요지의 발언을 하고 있다. 이로써 외환은행의 지분 51%를 팔고 한국을 떠나려는 론스타의 시도에 일단 제동이 걸렸다.

대법, 론스타의 외환카드 주가조작 유죄

둘째, 론스타의 덜미를 잡고 있는 두 번째 쟁점은 론스타의 외환카드 주가조작 문제다. 지난 3월10일 대법원은 주목할 만한 판결을 냈다. 2003년 론스타가 외환카드 주가를 조작했다는 혐의에 대해 유죄 판단의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 2008년에 내려진 고등법원의 원심을 뒤집은 판결이었다. 대법원은 유희원 전 론스타 대표가 2003년 11월 외환카드를 헐값에 합병할 목적으로 허위 사실을 유포해 증권거래법을 어겼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론스타는 외환은행의 지분 51.02% 가운데 법이 정한 한도인 10%가 넘어 초과 소유한 지분을 내다팔아야 한다. 은행법을 보면, 은행 대주주가 주식을 예외적으로 초과 보유할 수 있는 조건으로 “최근 5년 사이 금융 관련 법령을 위반하여 처벌받은 사실이 없을 것”이라는 단서를 달고 있다. 만약 금융 대주주가 법을 어기고도 주식 초과 보유분을 팔지 않으면, 금융위는 주식 매각을 강제할 수 있다.

대법원 판결은 론스타의 ‘먹튀’에도 바로 영향을 끼친다. 론스타와 하나금융은 지난해 11월 외환은행 지분 51.02%를 총 4조6888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지만, 아직 금융위의 승인을 거치지 않았다. 금융위의 승인을 거치지 않은 거래는 아직 법적인 효력을 가지지 않는다. 따라서 론스타의 자격에 ‘하자’가 발견되면, 앞으로 있을 금융위의 승인에도 당연히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권영국 변호사는 “만약 금융위가 론스타와 하나금융 사이의 계약을 허용하면 그 승인은 은행법에서 정하고 있는 수시 적격성 심사 취지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따라서 행정처분에 하자가 생겨서 승인 결정은 무효 내지 취소 사유가 되고, 형사적으로는 직권남용이 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판결로 론스타의 ‘탈출’을 사실상 허용하려 했던 금융 당국에도 비상이 걸렸다. 금융위는 지난 3월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을 심사한 결과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발표하며 론스타의 탈출구를 반쯤 열어놓았다. 그러나 론스타의 자격 문제가 다시 불거지자 금융위도 발목이 잡혔다. 금융위는 지난 4월 정례회의를 통해 론스타의 대주주 자격을 판단한 뒤, 론스타의 외환은행 주식 매각에 대해 최종적인 결정을 하겠다던 계획도 5월로 미뤘다. 그리고 5월12일 한 번 더 결정을 미뤘다. 신제윤 금융위 부위원장은 5월12일 브리핑을 통해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에 대한 사법적 절차가 진행되고 있어 현 시점에서 최종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다”라고 밝혔다. 결국 론스타의 운명은 다시 서울고등법원의 사법적 판단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됐다.

시민단체, “강제 매각 명령 내려야”

론스타의 운명을 둘러싸고 금융 당국과 사법 당국, 론스타, 하나금융, 외환은행, 시민단체가 뒤섞인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외환은행 인수를 통해 KB금융, 우리금융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형 금융사로 발돋움하려는 하나금융은 “론스타와 연장 협상을 진행할 것”이라고 의지를 밝혔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5월12일 성명을 통해 “금융위원회는 론스타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보류할 것이 아니라, 대주주 자격을 박탈하고 외환은행 지분에 대해 강제 매각 명령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론스타 한국 체류기’의 결말은 아직 안갯속에 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