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한 지 두 달을 넘긴 최중경 지식경제부(지경부) 장관의 잇따른 돌출 발언과 가벼운 처신을 두고 지경부 안에서조차 뒷말이 무성하다. 지난 1월18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최중경 지경부 장관 후보자가 답변하고 있다. 한겨레 탁기형
취임 두 달을 넘긴 최중경 지식경제부(지경부) 장관의 이해하기 어려운 일처리 스타일을 두고 뒷말이 나오고 있다. 부처 수장답지 않은 가벼운 처신은 물론, 남을 비판할 때와 자신의 견해를 펼칠 때의 논리가 달라 주변 관료들조차 갸웃하는 분위기다.
이익공유제, 재벌의 딴죽 거들어대표적 사안이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제기한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한 개입 방식이다. 최 장관은 지난 3월3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민간부문 에너지절약 선포식’ 때 기자들과 만나 이익공유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이익공유제가) 동반성장에 부합된다고 해도 절차나 방식을 따져야 한다.” 말미에는 “홍준표 의원 설명이 맞다”며 토를 달았다. 정운찬 위원장이 지난 2월23일 동반성장 지수 평가 기준과 평가 대상 56개 대기업 발표 때 “기존 성과공유제를 확대한 개념의 이익공유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히자 보수 언론과 한나라당이 이를 비난했는데, 최 장관까지 가세한 것이다. 게다가 굳이 집권여당 최고위원 이름까지 언급하며 이 문제가 정치 쟁점화하는 데 일조한 셈이다.
최 장관은 지난 3월16일 오전에는 지경부 출입기자단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더는 이익공유제란 말을 언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정 위원장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최 장관이 이런 발언을 내놓은 16일은 “(이익공유제가) 사회주의 용어인지 공산주의 용어인지 자본주의 용어인지 도무지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라는 삼성 이건희 회장의 발언을 기화로 이익공유제와 관련한 논란이 분분한 상황이었다.
결국 정치권과 재벌이 이익공유제에 딴죽을 걸 때마다 최 장관이 이를 거들고 나선 모양새다. 하지만 지경부가 동반성장 주무부처임을 고려하면 최 장관의 개입 방식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주무부처 장관이라면 정 위원장의 발언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더라도 정 위원장을 만나 의견을 나누고 조용히 정책 방향을 조율하는 게 순리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 탓에 16일 기자간담회 때는 초과이익공유제에 반대하는 보수 언론 기자조차 최 장관에게 “주무 장관이 그렇게 (남 일 대하듯) 비난만 하면 되나. 무책임한 것 아니냐”라고 물었을 정도다.
방법뿐 아니라 이익공유제 논란을 키운 속내는 더욱 궁금증을 낳는다. 특히 16일 기자간담회에서는 “위원장은 위원회를 대표해서 위원회 안에서 논의된 내용을 얘기하는 자리이지, (동반성장위) 위원장이 ‘톱다운’(Top-down·위에서 아래로 업무를 지시)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정 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초과이익공유제의) 취지를 살려야 한다”고 밝힌 직후로 이익공유제 논란이 사그라지던 시점이었다. 김동수 공정위원장도 비슷한 취지의 말을 했다. 정부 안에서도 ‘과도한 말싸움에 동반성장의 취지가 가려질 수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는데, 최 장관이 갑자기 불필요한 발언을 하고 나와 또다시 분란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자신과 남에게 서로 다른 ‘이중잣대’하필 이날 기자들과 만나 점심 식사를 하던 정 위원장은 최 장관의 비난을 전해듣고 “현 정부의 동반성장 의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이날은 애초 논란의 불씨를 지핀 삼성 쪽에서도 김순택 미래전략실장이 나서 “이건희 회장이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 때 한 발언에 대해 ‘진의가 그게 아니었다’며 당혹스러워하고 있다”고 진화에 나서, 최 장관의 강성 발언은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이런 최 장관의 스타일에 대해 그를 보좌하는 참모들조차 갸우뚱하는 분위기다. 이날 오후 최 장관의 발언을 전해들은 지경부의 한 간부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장관이 정말로 그런 말을 했느냐? (이 상황에서) 왜,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이라며 더 이상 언급을 피했다. 기획재정부의 한 고위 간부도 사석에서 기자들에게 “최 장관이 정운찬 위원장한테 한 이야기는 이해가 잘 안 된다”며 “우리 장관 정도(취지는 이해한다) 말하고 무난히 넘어가면 될 텐데,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가 있는지…”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최 장관의 과도한 ‘정운찬 때리기’를 두고 경제부처가 몰려 있는 경기 과천 관가에서는 상반된 해석이 돌았다. 직전까지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일해온 만큼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이 실려 있다는 게 중론이었다. 최 장관이 석유개발 협력 논의와 관련해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을 방문한 이 대통령을 수행하고 발언 전날(3월15일) 귀국한 사실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최 장관은 원래 독설을 즐기거나 별 생각 없이 그런 발언을 쏟아내는 스타일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 대통령이 굳이 최 장관을 통해 ‘범여권 인사’인 정 위원장에게 상처를 낼 이유가 없다는 해석이다.
사실 ‘정운찬 때리기’보다 더 큰 문제로 지적되는 건 최 장관이 자신과 남에게 서로 다른 이중 잣대를 들이댄다는 점이다. 정 위원장이 제기한 이익공유제를 두고서는 반시장적이라며 공격하면서도, 스스로는 시장을 깡그리 무시한 채 정유사를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 장관은 취임 초기인 2월10일 기자들과 만나 “내가 회계사 자격증이 있다. 나중에 자료를 가지고 오면 직접 계산기를 두드려 기름값 원가를 계산해볼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또 3월7일 ‘기름값 적정성’ 얘기를 꺼내더니 열흘 뒤인 17일에는 “정유사들의 원가자료 제출이 성실하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24일에는 “한전이나 설탕업체들이 이익을 내느냐. 적자를 보는데도 정부에 협조하는데 국민 복리를 위한 것”이라며 “(정유업계가) 성의 표시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압박용 메시지’를 던졌다. 적자를 보더라도 값을 낮추라는 엄포와 다름없었다.
이런 최 장관의 언행을 두고 보수 언론과 경제지조차 ‘위험한 발상’ ‘무리한 개입’이라는 비판을 내놨다. 한국의 산업 전체를 관할하는 지경부 장관 자리가 계산기나 두드리고 있을 한가한 자리냐는 훈계도 나왔다.
하지만 최 장관은 기존 태도를 고수할 분위기다. “기름시장은 독과점인 만큼 정부가 개입할 수 있다”(3월29일 국민경제대책회의 뒤)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경제체제를 선택한 대다수 국가의 정유업은 독과점산업이지만 국영기업이 아닌 이상 정부가 적자를 감수하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 또 따지고 보면 한국의 주요 산업 가운데 과점이 아닌 게 별로 없다. 과점시장이란 이유만으로 정부의 무한정 개입이 가능하다면, 한국의 주요 대기업들이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과점시장 특성상 문제가 있다면 공정위가 나서서 짬짜미(담합) 등 불공정행위를 시정하도록 하면 될 일이다.
물론 고유가를 틈타 폭리를 취하는 정유사를 감시하고 적절히 압박을 가할 필요는 있다. 짬짜미 같은 법적 테두리를 넘어서는 행태에는 과감하게 대응해야 하지만, 산업 진흥을 담당하는 장관이 무작정 값을 낮추라고 호통을 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정부 개입은 때로 필요하지만 법과 제도, 상식에 부합해야 하지 무작정 ‘칼’을 휘둘러선 안 된다는 것이다.
기재부 출신 장관의 엇박자
근본적으로 최 장관 캐릭터가 지경부 장관과 어울리지 않고, 본인 스스로도 맞춰갈 생각이 없는 것 같다는 지적이 있다. “기재부나 금융위는 예산과 금리 등으로 정책 방향을 잡고 일관되게 밀고 나갈 수 있고 또 나갈 필요가 있지만, 지경부는 사실 별다른 권한도 없고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조율해가며 (기업이나 업계가) 어떻게 잘될 수 있을지 밀어주는 구실을 하는 부서다. 그런데 기재부 출신인 최 장관은 아직 이런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지경부에서 최 장관을 두 달 넘게 지켜본 한 관료의 말이다. 최 장관의 언행을 두고 ‘기업 프렌들리’(친기업)를 표방하고 집권한 이명박 정부의 경제부처 각료답지 않다는 냉소가 끊이지 않는 까닭이다.
이순혁 기자 한겨레 경제부 산업팀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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