솟구치는 원유 가격은 막을 자가 없다?
국제 원유 가격의 주요 기준인 서부텍사스유(WTI)가 3월 들어 2년5개월 만에 처음으로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2008년 말 기준 배럴당 30달러대에 머물던 두바이유, 브렌트유 등 원유 가격도 2년 사이 3배 가까이 뛰어올라 이미 100달러 선을 넘어섰다. 당장 우리나라 물가와 무역수지에 비상등이 켜졌다.
통계청이 발표한 ‘2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석유류 값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무려 12.8% 뛰어올랐다.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분 4.5% 가운데 0.75%포인트는 순수하게 기름값이 오른 탓이었다. 지난 1년 동안 100만큼 물가가 올랐다고 할 때, 그 가운데 16은 기름값이 혼자서 끌어올렸다는 뜻이다. 문제는 아직 국제 유가 상승분이 물가 상승분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보통 국제 유가가 오른 뒤 국내 물가에 반영되기까지 일정한 시차가 있는 점을 감안하면 물가 상승 압력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기름값 상승으로 파생되는 교통료·항공료·난방비 상승도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3~4월 경상수지 적자 가능성”원유 가격 상승으로 우리나라 국제수지에도 이상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지식경제부의 2월 수출입 통계를 보면, 무역 흑자가 28억5천만달러로 표면적으로는 양호한 기록을 나타냈다. 수출액도 지난해 2월에 견줘 17.9%나 늘어나 기대 이상의 실적을 보였다. 문제는 통계에 국제 유가 상승분이 온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현물 가격은 보통 2개월의 시차를 두고 수입단가에 반영된다. 따라서 현재 유가가 완전히 반영되는 시기는 5월께가 된다. 2월 평균 원유 수입단가는 배럴당 95.6달러고, 두바이유의 현물 가격이 지난 3월3일 109.0달러로 13.4달러 차이가 났다. 여기에 원유 수입물량(약 7천만 배럴)을 고려하면(7천만×13.4달러) , 두 달 뒤에는 경상수지가 10억달러 가까이 악화할 것이라는 산술적인 근거가 나온다. 원유 가격이 지금 추세대로 계속 오른다면 추가 부담의 여지는 더 커지게 된다. 삼성증권은 최근 경제분석 보고서에서 “앞으로 유가 수준이 1~2개월간 지속되는 경우 3~4월 들어 경상수지가 적자로 전환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원유 가격이 고공행진을 하면서 나라 경제 전망도 흐려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말 올해 경제 전망을 세우면서 ‘5% 경제성장, 3% 물가상승’을 목표로 제시했다. 시장의 의견은 부정적이다. 정부보다 보수적인 전망치를 내놓은 한국개발연구원(KDI·4.2% 경제성장, 3.2% 물가상승), 삼성경제연구소(3.8% 경제성장, 3.2% 물가상승), LG경제연구원(4.1% 경제성장, 3.1% 물가상승) 등은 모두 경제 전망치를 조정할 태세다.
연구원들의 말을 종합하면, ‘경제성장률 예측 불가, 물가상승률 예상보다 높음’으로 수렴된다. 우선 삼성경제연구소는 배럴당 82달러였던 올해 연평균 유가 전망을 95달러 수준으로 수정할 예정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삼성경제연구소의 경제 전망을 인용해 유가가 10% 오르면 물가는 0.3%포인트 상승하는 반면, 성장률은 0.35%포인트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고 보도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상무는 “유가-물가의 상관관계는 타당하지만, 유가-성장률 관계는 과거에만 유효했던 수치이기 때문에 참고하지 않는 것이 적절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유가가 크게 올랐다는 부정적 요소도 있지만, 미국의 양적 완화나 감세 등으로 경기가 괜찮은 점은 긍정적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에 아직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속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월에 경제성장률 전망 수정치를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3월로 일정을 미뤘다. 아직 상황이 ‘안갯속’이라는 판단에서다.
LG경제연구원도 올해 원유 가격 평균치를 배럴당 87.7달러에서 90달러대 중·후반으로 수정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경제성장률 전망치에도 손을 댈 예정이다. 이근태 연구위원은 “물가는 3.1% 오를 것으로 내다봤지만 3.5% 이상으로 바꿔야 할 듯하고,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좀더 상황을 지켜봐야 판단할 수 있겠다”라고 설명했다. LG경제연구원은 3월에 경제 전망치를 발표하지만, 일정을 최대한 3월 말로 미룰 예정이다.
KDI도 경제성장률 전망치에 대해 중립적이다. 김현욱 거시경제연구부장은 “최근의 유가 오름세는 중동 정치 불안도 한 요인이지만, 세계 경기 회복에 따른 수요 증가도 한몫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의 수출 호조도 그런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예측하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KDI는 5월 경제 전망 수정치를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는 여전히 경제 전망 목표치를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임종룡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지난 3월2일 언론 브리핑에서 “경제지표 전망에 대해 수정할 계획이 없다”며 “대내외적으로 쉽지 않은 여건이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의 약속이 지켜질 수 있을까?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정부에 선택지는 많지 않아 보인다. 뛰어오르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 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지만, 이는 다시 800조원의 빚을 지고 있는 가계에 이자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경기 회복에도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특히 원유 가격 상승은 정부로서도 손쓸 수 없는 문제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3월1일 재정부 직원들에게 보낸 전자우편을 보면 정부의 처지가 읽힌다. 그는 “세계경제에 다시 먹구름이 드리웠다”며 “국제 원자재 가격이 불안하고 내부적으로도 구제역, 물가, 전셋값 등 어느 것 하나 엄중하지 않은 게 없고 정부의 정책 공간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먹구름’을 걷어낼 바람은 중동에서 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내외 전망을 종합하면, 가장 치명적인 열쇠는 중동 국가 가운데서도 사우디아라비아가 쥐고 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리비아·알제리의 민주화 시위로 생기는 공급 부족을 채워줄 ‘구원투수’가 다름 아닌 사우디아라비아뿐이기 때문이다. IBK투자증권이 지난 3월3일에 낸 경제 전망 보고서를 보면,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한 여타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의 생산 여력은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사우디아라비아의 생산 여력은 300만 배럴 정도로 리비아 사태로 인한 수급 불균형을 충분히 해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 도 지난 2월 “사우디아라비아가 세계 원유 잉여 공급 능력의 75%를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사우디 시위 때는 유럽이 더블딥”둘째, 중동의 정치 불안이 번져나갈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후보지 가운데 한 곳이 또 사우디아라비아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예견해 ‘미스터 둠’으로 널리 알려진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학 교수(경제학)는 지난 3월2일 파리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에서 “만약 중동 지역의 불안 상황이 바레인과 사우디아라비아까지 퍼진다면, 배럴당 원유 가격은 140~150달러로 오를 수 있다. 그러면 영국과 유럽 주변 지역에서 더블딥(이중침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LG경제연구원도 3월4일 낸 연구보고서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 거대 산유국에서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면서 공급 차질이 발생할 경우에는 국제 유가가 두바이유 기준으로 배럴당 200달러를 넘어서면서 제2차 오일쇼크 이상의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IBK투자증권은 “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 소요사태가 확산되면 미국이 정치·군사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풀이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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