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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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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인에 할인을 거친 과징금

부당이득의 12%에 불과한 4980억원 과징금 낸 LPG 업체들…

‘공정위 입맛대로’ 솜방망이 처벌로는 재발 방지 어려워
등록 2011-02-24 15:59 수정 2020-05-03 04:26

지난 2003~2008년 짬짜미(담합)를 통해 22조원의 매출을 올린 액화석유가스(LPG) 업체들에는 과징금 6689억원이 부과됐다. 그 근거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 액수는 적정할까?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4월에 내놓은 ‘전원회의 의결서’에는 과징금 결정 과정이 자세히 소개돼 있다.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면, 결정 과정이 어이없을 정도로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자수범은 과징금 면제받는 세상
일단 공정위의 결정 과정을 따라가보자. 공정위는 과징금의 상한을 6개 LPG 업체들의 관련 매출액(22조3146억원)에 업체별 부과기준율 5~7%를 곱해 1조4272억원을 기업들의 전체 기본 과징금으로 산출했다. 업체들은 각자 매출 규모에 따라 과징금을 나눠 물게 됐다. 그런데 공정위는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 업계 4~6위 업체에 대해 짬짜미에 수동적으로 가담했고 2008년에 당기순손실의 적자 폭이 크다는 점 등을 고려했다며 과징금을 30~50%까지 깎아줬다. 전체 과징금은 1조2673억원으로 줄었다.
‘할인’은 또 있었다. 공정위는 다시 “과징금이 부당이득의 환수, 법 위반의 방지 또는 제재 목적을 달성하기에 필요한 범위에 현저히 과중하다고 판단”된다며 과징금을 45~50% 깎아줬다. 과징금은 6689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2009년 11월12일 서울 서초동 공정거래위원회 심판정의 풍경. 이날 공정위는 국내 6개 LPG 공급업체를 대상으로 과징금 6689억원을 물리겠다고 발표했다.연합

2009년 11월12일 서울 서초동 공정거래위원회 심판정의 풍경. 이날 공정위는 국내 6개 LPG 공급업체를 대상으로 과징금 6689억원을 물리겠다고 발표했다.연합

공정위는 이 액수만큼을 업체들에 나눠 물리겠다고 발표했고, 당시 모든 언론은 그렇게 받아적었다. 그렇지만 실제로 업체들이 낸 액수는 그보다도 적었다. 짬짜미에 참여했다고 실토하고 조사 과정에 협조한 업체들에 대한 과징금 감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수범’ SK에너지는 전체 과징금 715억원을 내지 않아도 됐다. SK가스도 과징금의 절반인 994억원만을 냈다. 결국 실제로 걷힌 과징금은 4980억원이었다.

과징금 감경의 근거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서 볼 수 있다. 법 55조 3항에는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할 때, 위반행위의 내용 및 정도, 위반행위의 기간 및 회수 등을 참작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그렇지만 그에 대한 구체적 기준은 제시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공정위 마음대로’였다. 이인권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해 9월에 낸 ‘카르텔 과징금 제도에 관한 연구’ 논문에서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의 재량권 행사시 남용 및 일탈의 가능성을 법 규정 자체가 내포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그렇다면 공정위가 멋대로 물린 과징금의 액수는 적절했을까? 업체들이 6년 동안 담합으로 얻은 초과소득 액수는 대략 4조원으로 추정된다. 이 추정대로라면 소비자의 돈 4조원을 가로챈 업체들이 ‘범행’의 대가로 낸 과징금은 전체 부당이득의 12%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 된다.

담합의 유혹 막지 못하는 법규정

공정위는 2009년 12월 6개 업체에 과징금을 부과한다고 발표하면서, 보도자료에 ‘LPG 판매 가격 담합에 엄중 제재’라는 제목을 달았다. 실제로 엄중한 것은 제목뿐이었다. ‘합리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기업이 앞으로 시장에서 보일 반응은 불 보듯 뻔한 셈이었다. 김진욱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간사는 “과징금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과징금 부과액이 보통 관련 매출액의 1~2%에 그칠 정도로 적어서 담합으로 얻는 이익의 유혹을 기업이 뿌리치기 쉽지 않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나마 정부의 과징금은 피해자인 소비자에게 배상되는 것도 아니었다. 과징금은 모두 국고에 환수되기 때문이다. LPG 업체들에 대한 대규모 손해배상 소송이 지난해부터 시작해 올해까지 줄줄이 이어지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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