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배 민주당 최고위원. 정치부 시절 그를 볼 때의 느낌은 ’반듯하다’였다. 반듯함은 여전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호텔방을 나섰는데, 천 의원이 한참을 나오지 않아 들여다보니 호텔방의 전등을 일일이 끄고 있었다. 그러나 그 반듯함 아래에서는 켜켜이 쌓인 울분과 절절함이 배어나고 있었다.
천정배 의원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한국 내의 반대 의견을 미국 의회에 전달하기 위해 워싱턴을 방문하고 지난 1월28일 귀국하는 길에 애틀랜타를 들렀다. 천 의원은 민주당의 이종걸 의원, 민주노동당의 강기갑 의원과 함께 미 하원을 방문해 한-미 FTA를 반대하는 대표적 인물인 마이크 미쇼 의원(민주당·메인주)을 비롯한 6명의 하원의원을 만났다. 천 의원은 “미국 의원들에게 FTA로 입을 우리 노동자·농민들의 피해를 이야기해봤자 ‘아, 미국에 정말 유리한 협정인가 보다’는 생각밖에 더 주겠느냐”며 “미국인들도 공감할 수 있는 논리와 이유를 집중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장기적 차원에서 한-미 우호관계를 해칠 수 있다고 했다. 한-미 FTA 재협상이 실제로 연평도 포격 사건이 진행되는 와중에 타결되지 않았나. 많은 한국인이 한국 정부가 경제 논리까지 무시해가면서 무리하게 타결했다고 믿기 때문에 FTA가 발효한 이후 손해를 본 한국인들은 미국에 대한 감정이 더 악화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한-미 관계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는 뜻을 전했다. (민간기업이 이익 침해를 이유로 상대국 정부를 제소할 수 있는) 국가 제소권 문제가 위험하다는 것에도 공감하는 이가 많았다.
국가 제소권 문제는 미국 내에서도 우려가 있다.‘스크린쿼터’를 예로 들면, 한-미 FTA가 발효한 뒤에는 우리가 스크린쿼터를 일단 한번 없애거나 줄이면 부활시킬 수 없게 된다. 종합편성채널(종편) 방송도 그렇다. 중앙일보 종편에 미국 방송(타임워너 자회사인 ‘터너아시아퍼시픽’)이 투자하고 있지 않나. 가령 현 정부가 종편에 의무재전송 같은 특혜를 주면, 다른 정권이 이를 바로잡고 싶어도 미국인 주주가 나서 ‘피해를 입었다’며 국가 제소를 할 우려가 있다. 국가 제소권과 래칫(톱니바퀴·역진방지) 조항이 만나면 이렇게 무섭다.
국내에서는 ‘(이명박 정권을) 죽여버려야 하지 않겠나’는 천 의원의 발언이 화제가 됐는데.먼저 이 말을 하고 싶다. 이제 제대로 정치하는 것 같다고. 내가 이성적 열정은 누구보다 확고하다 보니 그간 감성적 열정을 누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 감성적 열정이 참을 수 없는 분노로 터지고 있다. ‘죽여버려야 하지 않겠나’는 발언도 의도한 것이 아니다. 내가 스스로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다는 울분이 그렇게 터져나온 것이다. 그 말이 많은 분들 사이에서 공감되는 것을 보고 많은 것을 생각했다. 정치는 지지자들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난 민주당의 2월 국회 등원에도 반대한다. 지난해 12월 예산안 강행 처리를 보면 지금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날치기를 즐기는 듯하다. 절대다수의 횡포를 견제할 방법이 없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에는 이런 상황을 절박하게 여기는 절실함이 없다. 그걸 먼저 찾아야 한다.
애틀랜타(미국)=이태희 기자 한겨레 경제부문 herme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