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가 끝나자마자 청와대는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60%를 넘어섰다며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G20 회의 마지막 날인 11월12일 전국의 성인 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였다.
청와대가 구체적인 수치와 조사를 담당한 여론조사기관을 공개하지 않아 전적으로 신뢰하기는 어렵지만, G20 회의를 기점으로 이 대통령의 지지도가 상승세를 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11월15일 모노리서치 조사에서도 그의 국정운영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절반에 육박해(48.7%) 약 한 달 전 조사보다 소폭(2%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의 11월 둘쨋주(11월8~12일) 여론조사에서도 역시 절반에 가까운 47.4%의 응답자가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일주일 전 조사보다 2.1%포인트 상승한 결과였다.
‘역사적 합의’와 ‘김 빠진 선언문’의 간극
이 대통령의 지지율 오름세에 대한 청와대와 정치권, 그리고 여론조사기관의 분석은 일치한다. G20 정상회의 개최의 결과라는 설명이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분석실장은 “이 대통령은 임기 초반부터 정치권과의 거리두기를 강조한 덕분에 민간인 사찰과 ‘대포폰’ 사건 등 악재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반면, G20 행사를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는 인상을 주며 지지율 상승을 이끌었다”며 “올림픽과 월드컵, G20 정상회의 등 주요 국제대회 및 행사를 주최하거나 좋은 성적을 거둘 때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긍정적 평가의 비율이 높아지는 것은 법칙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역사적인 합의를 이뤘다”는 이 대통령의 자체 평가나 국정운영 지지도 상승과 달리, G20에 대한 국내외 언론과 전문가 영역의 평가는 냉정한 편이다. 영국의 경제 일간지 가 ‘불균형 해소에 실패했다’는 제목을 뽑은 것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주요 언론은 G20 서울 정상회의가 글로벌 금융안전망이나 국제 환율전쟁에 대해 구체적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이 대통령이 말한 ‘역사적’ 합의문에 대해서도 <ap>은 ‘김 빠진’(watered down) 선언문이라며 혹평을 내놓았다.
외교적 측면에서도 G20은 한국에 득과 실을 남겼다.
이 대통령이 G20 회의 기간 내내 각국 정상을 자신감 있게 이끌며 한국 정상의 리더십을 과시했다는 부분은 일단 긍정적일 수 있다. 특히 일본의 일부 언론이 이 대통령의 적극적 외교력을 높이 평가했다. 은 이 대통령과 간 나오토 일본 총리의 리더십을 “움직이는 한국과 움직이지 않는 일본”이라는 표현으로 비교하기도 했다.
반면 한국 언론의 평가는 꼭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김용진 울산 KBS 기자(전 탐사보도팀장)는 11월11일 투고를 통해 이 대통령의 ‘오버’를 이렇게 꼬집었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단순히 소통 능력의 부재를 넘어 일종의 선지자적 자기확신과 자기기만이 기괴하게 결합된 모습이 감지된다. KBS 9시 뉴스에 시시콜콜 보도됐듯이 G20 준비 상황을 일일이 감독하러 다니는 모습은 의 이른바 ‘현장지도’ 모습을 연상케 한다. 외국 정상과 포즈를 취할 때 지나치게 자신감 넘치는 모습도 아슬아슬하다.”
세계의 패권국으로서 미국의 지위가 갈수록 약해지고 있는데도, 이 대통령이 이런 국제 질서의 흐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보다 여전히 대미외교에 과도하게 무게를 둔 것은 실책이었다는 비판도 있다. G20 회의를 통해 경상수지의 과도한 적자·흑자에 대한 수치 목표를 설정하려던 미국의 구상이 이해당사국인 중국은 물론 독일과 프랑스, 영국 등 서방 주요 국가의 반대에 부딪혀 좌초한 장면이 대표적이다. 경상수지 흑자 규모를 줄이자는 제안은 우리의 ‘국익’에 반하는데도, 이 대통령은 미국의 제안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손열 연세대 교수(국제정치)는 “G20 서울 정상회의를 통해 이 대통령은 미국만 좇아가서는 국익을 확보할 수 없다는 처절한 현실을 목도했을 것”이라며 “한반도라는 익숙한 지평을 넘어 지구적 시각에서 문제를 복합적으로 조망하는 능력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세계 흐름 거스르며 미국 눈치보기
G20이 낼 수 있는 ‘성과’에 주목한다면, 오히려 눈길이 가는 곳은 2011년 프랑스 칸이다. 차기 G20 의장국인 프랑스는 G20 서울 정상회의가 끝나자마자 통화질서 개편에 앞장서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의 달러화가 유일한 기축통화로 쓰이는 국제통화 체제에 손을 대지 않는 이상, 국제 환율 갈등의 해소나 글로벌 금융안전망의 설치는 일시적 방편이 될 수밖에 없다. 유럽은 물론 중국과 브라질 등 신흥국도 통화체제 개편의 필요성에 동의해왔다.
미국 달러화 중심의 통화 질서를 기축통화의 다국화로 해결하든, 아니면 국제사회가 공인하는 새로운 준비통화를 만들든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데 국제사회의 진단이 대체로 일치하지만,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는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지 않았다. 패권국으로서 미국의 지위까지 위협할 수 있는 사안인 탓이다.
경제와 정치 문제 모두 국제질서의 무게중심이 미국을 떠난 지 오래라는 현실을 이명박 정부가 직시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2012년 4월 한국에서 열릴 핵안보정상회의는 튼튼한 ‘한-미 동맹’을 다시 한번 과시하는 자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G20 정상회의가 경제 이슈를 논의하는 가장 큰 규모의 정상회의체라면, ‘G50’으로도 불리는 핵안보정상회의는 말 그대로 핵의 평화적 이용과 핵테러에 대한 안보 대책을 포괄적으로 논의하는 정상회의체다. 지난 4월 미국에서 열린 제1차 정상회의에서는 46개국 정상과 유엔 등 3개 국제단체 대표가 함께 참여했다. 당시 차기 개최국으로 한국이 선정되자마자 청와대는 “한-미 간 정상의 신뢰와 우정이 만들어낸 결실”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과 ‘긴밀한 한-미 동맹’에 대한 강조도 빠뜨리지 않았다.
G20에는 120억, G50에는 190억
G20 서울 정상회의를 ‘성공’으로 평가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는 지난 9월부터 이미 핵안보정상회의 준비위원회를 꾸리는 등 본격적인 준비 작업을 시작했다. 사공일 한국무역협회 회장이 준비위원장을 맡은 G20과 달리 핵안보정상회의에서는 국무총리가 직접 준비위원장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정상회의의 규모 등을 감안해 국가 차원에서 총력을 다하겠다는 뜻이다. 준비기획단은 2011년 초 발족할 예정이다.
G20보다 참가국 수가 많고 회의 기간이 하루 더 긴 3일간 열림에 따라 정부 관련 예산도 증가할 전망이다. 경찰청은 이미 핵안보정상회의를 위해 2011년 68억6200만원, 2012년 121억6200만원 등 모두 190억여원을 관련 예산으로 책정했다. 경찰청의 G20 정상회의 예산은 120억여원이었다.
2010년 G20 서울 정상회의를 통해 ‘국정운영 지지도 상승’과 ‘강한 한-미 동맹 확인’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데 성공한 이명박 정부가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를 조용히 치를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2012년이라는 시점이 눈에 띈다.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해다. 핵안보정상회의가 일반인의 관심을 많이 모을 수 있는 의제를 다루는 것도 아니고, 2010년 1차 핵안보정상회의의 경험을 바탕으로 볼 때 핵확산 방지와 핵테러 예방에 기여할 수 있는 실질적이고도 구체적인 해법이 나올 수 있겠느냐 하는 회의론이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G20 서울 정상회의를 통해 대규모 국제행사의 활용법을 충분히 익혔다.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리는 장소는 다시 서울이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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