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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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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또 하나의 편법 상속 가족?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 계열사로부터 대림아이앤에스 지분 헐값에 넘겨받아…

2년 전엔 ‘벼락 현금 배당’도 받아
등록 2010-11-10 18:05 수정 2020-05-03 04:26

태광그룹은 이호진(48) 회장이 아들 현준(16)군에게 가업을 승계토록 하려고 편법 상속·증여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태광그룹은 현준군에게 2006년 그룹 내 정보통신업체인 티시스(당시 태광시스템즈)의 제3자 배정 방식 유상증자를 통해 주식 49%를 넘겨줬다. 이후 티시스는 그룹 내 두 번째로 큰 기업인 대한화섬 주식을 사들이는 등 그룹 안 위상을 높였다. 다른 계열사인 티알엠도 같은 과정을 거쳐 현준군이 이 회장에 이어 2대 주주로 등극하게 했다. 이처럼 삼성그룹을 포함한 많은 재벌들이 정보가 쉽게 공개되지 않고 편법 운영이 가능한 비상장 자회사를 이용해 유상증자로 가족에게 지분을 넘기고, 이후 해당 자회사가 그룹 내 다른 계열사의 지분을 인수해 영향력을 키우는 식으로 부를 대물림하고 있다. 대림그룹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방식만 약간 다를 뿐이다.

» 대림그룹도 태광그룹 등 다른 재벌처럼 비상장 계열사를 이용해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에게 편법으로 그룹 지배권을 넘겼다는 의혹이 제기된다.한겨레21 정용일

» 대림그룹도 태광그룹 등 다른 재벌처럼 비상장 계열사를 이용해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에게 편법으로 그룹 지배권을 넘겼다는 의혹이 제기된다.한겨레21 정용일

“다른 주주 1주당 5만원 손해”

정보기술(IT) 기업인 대림아이앤에스는 지난 10월29일 최대주주의 주식보유 변동을 공시했다. 주요 내용은 최대주주인 이해욱(43) 대림산업 부회장의 대림아이앤에스 지분이 72.5%에서 89.7%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대림 계열사인 대림산업(12.6%), 삼호(2.6%), 고려개발(1.5%) 등의 보유 지분을 1주당 3만5천원에 사서 소각했다. 이런 유상감자를 통해 대림아이앤에스가 사실상 이 부회장의 개인 회사가 된 것이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그룹 내 물량 몰아주기로 성장한 대림아이앤에스가 알짜 기업이 되자 지배주주의 이익을 위해 대림산업 등 계열사들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한 채 지분을 넘긴 것이라고 주장한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공시된 자료를 근거로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증법)에 따라 계산한 결과 1주당 8만9696원이 대림아이앤에스 주식의 적정 가격이라고 밝혔다. 상증법은 친족이나 타인에게 재산을 상속 혹은 증여할 경우 재산의 평가 방법을 정해놓은 것이다. 주식의 경우 상장기업은 거래소에서 6개월간 공표된 최종 시세가액의 평균액으로 평가하지만, 비상장기업은 과거 3년의 실적, 자산 가치 등을 감안해 계산한다. 채이배 회계사는 “상증법에 따라 계산한 결과 1주당 가격이 9만원에 육박하는데, 대림산업 등이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이 부회장에게 주식을 판 것은 주주의 이익보다 오너 일가의 이익을 위해 판단한 것”이라며 “이같은 거래로 대림산업 등의 주주들은 큰 손해를 본 셈”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림산업은 이 부회장이 이미 지난 7월 이해관계가 없는 다른 주주들의 주식을 1주당 3만5천원에 사서 소각한 일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 같은 가격으로 주식을 판 것은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대림산업 정성호 홍보팀 차장은 “지난 7월 풍림산업, 삼환기업, 부영주택, 동아건설산업, 제일저축은행 등이 대림아이앤에스의 주식을 이 부회장에게 팔 때 책정한 가격이 3만5천원이었다”며 “가장 최근의 시장가격을 반영해 판 것이어서 세법상으로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상증법에는 상속이나 증여가 있기 전 거래가액이 있으면 그걸 시장가격의 하나로 인정한다.

» 대림그룹의 경영권 세습 흐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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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배당금으로 지분 인수 종잣돈 마련

그럼에도 공정한 가격인지는 논란이 있다. 주식을 판매할 경우 주식의 미래 수익까지 포함해 계산하는 현금할인법이나 비슷한 규모의 다른 기업과 비교해 거래 가격을 결정하는 시장상대가치법 등이 있다. 하지만 대림산업은 현금할인법이나 시장상대가치법 대신 주식의 공정가액을 정하는 방법 가운데 가장 싼 가격이 나오는 종전 거래가를 택했다. 게다가 풍림산업과 삼환기업은 엄밀히 따져보면 ‘특수관계’로 볼 수 있다. 풍림산업은 1981년 7월 대림그룹에서 분리될 때까지 그룹과 한 몸이었다. 두 기업의 뿌리인 부림상회를 이준용 대림그룹 명예회장의 아버지인 이재준 창업주와 풍림산업 이필웅 회장의 아버지인 이석구 창업주가 함께 만들었다. 또 대림그룹과 삼환기업 역시 혼맥으로 이어진 관계다. 이준용 명예회장의 3남 해창씨와 삼환기업 최용권 회장의 큰딸인 영윤씨가 부부다. 채이배 회계사는 “대림산업은 이미 제3자와 거래한 시장가격에 맞춰 주식을 팔았기 때문에 세법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주식의 공정가액을 정할 경우 3만5천원보다 훨씬 더 비싼 값에 팔 수 있었음에도 싼값에 판 것은 대림산업 주주에게 피해를 준 것”이라고 말했다.

대림그룹이 이해욱 부회장에게 부를 증여하는 과정에 대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5년 설립된 대림아이앤에스는 대림산업 정보사업부가 분리돼 그룹 내 시스템통합(SI) 및 시스템관리(SM) 등 정보통신 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2002년에는 그룹 내 계열사인 아이씨트로를 합병하면서 계속 성장하고 있다. 2000년 약 1050억원이던 매출이 2009년에는 2118억원을 기록해 두 배 이상 성장했다. 그룹 내 거래 비율 역시 같은 시기 33.3%에서 73.7%로 크게 늘었다. 특히 대림아이앤에스는 주주에게 ‘헌신적인’ 기업이었다. 2008년 초에는 1주당 2만6280원씩 총 250억원을 주주에게 현금으로 배당했다. 전년 영업이익(122억원)의 갑절 이상을 주주에게 돌려준 것이다. 당시 53.7%의 주식을 보유한 이해욱 부회장은 130억원가량에 달하는 가장 많은 배당을 받을 수 있었다. 이후 배당금은 다시 이 부회장이 그룹 내 후계자의 지위를 다지는 데 ‘종잣돈’이 됐다.

회사 기회 유용과 합병 통해 지배권 굳혀

같은 해 3월 그룹 계열사인 대림에이치앤엘은 기존 100만 주에 200만 주를 1주당 5천원씩 유상증자해 총 300만 주로 만들었다.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던 이해욱 부회장은 늘어난 200만 주를 100억원에 사들였다. 대림아이앤에스가 제공한 배당금보다 적은 돈이 들었다. 대림에이치앤엘은 이어 6개월 뒤인 9월에 대림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대림코퍼레이션과 ‘1주 대 0.78주’의 비율로 합병을 결정했다. 이를 두고 당시 1주당 가치가 10만원으로 추정되는 대림코퍼레이션과 1주당 5천원에 불과한 대림에이치앤엘이 1 대 0.78로 합병한 것은 지배주주에 대한 특혜라는 논란이 제기됐다. 합병 비율대로 계산하면 1주당 10만원이 넘는다는 대림코퍼레이션의 주식은 6500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대림에이치앤엘은 애초 이해욱 부회장이 10억원을 투자해 지분 100%를 보유한 회사로 2001년 3월 설립됐다. 이후 그룹 내 거래를 통해 급성장해 2007년 말 순자산이 330억원이 됐다. 이어 대림코퍼레이션과의 합병으로 이 부회장은 0%였던 대림코퍼레이션의 지분을 32.1%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 부회장이 아버지인 이준용 명예회장에 이어 2대 주주로 등극한 것이다. 결국 이해욱 부회장은 증여세 부담 없이 회사 기회 유용과 합병을 통해 대림그룹의 지배권을 장악한 셈이다. 대림그룹의 지배구조는 ‘대림코퍼레이션→대림산업→타 계열사’로 이어져 대림코퍼레이션이 계열 지배구조의 정점에 위치한 사실상의 지주회사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무역학과 교수)은 “대림그룹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그룹에서 부의 편법 증여 의혹이 제기된다”며 “외환위기 이후 지배구조 개선 조처들이 상장회사를 중심으로 이뤄졌는데, 재벌들이 비상장 기업을 이용해 규제를 빠져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또 “상장기업 주주가 비상장 계열사에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이중대표소송제 도입 등 상법 개정 노력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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