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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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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케이블 싸움에 등터지는 시청자

지상파 방송 재전송하는 유선방송사업자에 “저작권료 내라” 판결…

케이블에서 지상파 철수하면 가입자 중 절반은 난시청 겪게 돼
등록 2010-09-30 10:00 수정 2020-05-03 04:26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9월5일 청와대에서 열린 장차관 워크숍에서 공정사회 구현을 위한 국정운영 방향에 대해 당부의 말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9월5일 청와대에서 열린 장차관 워크숍에서 공정사회 구현을 위한 국정운영 방향에 대해 당부의 말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9월29일부터 유선방송을 이용하는 1500만 가구는 케이블TV에서 지상파 3사 방송을 못 볼지도 모른다. 한국방송, 문화방송, SBS 등 방송 3사와 유선방송사업자(SO) 간 갈등이 봉합될 조짐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케이블TV방송협회, 재전송 중단 위협

지난 9월8일 서울중앙지법은 지상파 방송사가 지난해 티브로드강서방송과 CJ헬로비전, C&M, HCN서초방송, CMB한강방송 등 5개 유선방송사업자를 상대로 제기한 ‘저작권 침해 정지 및 예방청구 소송’에서 원고인 방송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유선방송사업자는 현재 지상파 방송을 무료로 재전송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지상파 3사의 저작권을 인정한 것이다.

현행 방송법은 KBS1과 교육방송(EBS)만을 유선방송사업자가 의무적으로 재전송하도록 하고 있다. 나머지 3개 지상파 채널은 tvN, OCN 등 일반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처럼 유선방송사업자에게 콘텐츠에 대한 대가를 요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지상파 방송사들은 디지털 방송이 시작된 2005년부터 재전송 대가를 요구했지만, 케이블 업계는 “케이블TV가 지상파의 난시청 문제를 해결해 지상파에 도움을 주고 있다”며 거부해왔다. 수차례의 협상이 무산되자 지상파 3사는 디지털 케이블TV에 한해 지난해 7월 저작권료(중계권료)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서 유선방송사업자가 2009년 12월18일 이후 디지털 케이블TV에 가입한 가입자에게는 중계권료를 내지 않고 지상파 방송을 송출할 수 없도록 했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유선방송사업자를 상대로 가입자당 채널별로 320원씩 총 960원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자 유선방송사업자들은 디지털 케이블TV뿐 아니라 모든 가입자에게 지상파 방송을 재전송하지 않겠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KCTA)는 9월29일부터 지상파 재전송을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정한 상태다. 아날로그 지상파 방송이 2012년 12월에 종료될 예정이어서 이후 수천억원의 재전송 대가를 지상파 방송사에 지불하게 되고 그러면 유선방송사업자의 생존이 어려워진다는 위기위식이 그 배경에 자리잡고 있다.

그렇다면 케이블TV에서 지상파 방송을 재전송하지 않을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유선방송 가입자 가운데 상당수는 지상파 방송을 보기 어려워지게 된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에 따르면, 6월말 현재 1522만5892가구가 유선방송을 이용하고 있어, 전체 시청 가구(1900만 가구)의 80%에 달한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지상파 수신의 어려움 때문에 유선방송을 택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2008년 조사한 지상파 방송 수신 환경 실태를 보면, 86.6%가 유료 방송인 케이블TV와 위성방송 등을 통해 지상파 방송을 시청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46.2%가 유료 방송을 보는 이유로 ‘난시청 해소’를 꼽았다. 즉 현재 유선방송 가입자 가운데 절반 가량이 재전송이 끊기면 아예 지상파 방송을 볼 수 없고, 나머지 가구도 실내외 안테나를 연결해야 하는 불편을 겪게 된다.

이같은 상황에서 방송통신위원회는 뒤늦게 양쪽 간 협상 테이블을 마련하는 등 ‘뒷북’ 조처를 하고 있다. 방통위 관계자는 “소송 결과가 예상보다 빨리 나와 정부 조처가 늦은 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9월 말께 협상 테이블 마련을 위한 사전 모임 성격의 3자 대면 자리를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방송 수신료에 케이블 이용료까지 오른다?

하지만 방통위가 팔을 걷고 나서도 협상이 쉽사리 끝나지는 않을 전망이다. 우선 유선방송사업자 쪽의 태도가 강경하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관계자는 “유료화를 전제로 한 지상파 방송과의 협상에 나가지 않겠다는 입장”이라며 “재전송 중단은 이미 결정됐고, 그 수위를 두고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는 △광고만 재전송 중단 △아침 시간만 재전송 중단 △전면 재전송 중단 등 여러 가능성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지상파 방송사 쪽은 좀더 유연한 태도를 보인다. SBS 관계자는 “중계권료로 채널당 320원을 제기한 것은 법원의 조정을 위해 제시한 금액이어서 협상이 가능하다”며 “가급적 빨리 협상을 통해 조정하자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청자를 ‘볼모’로 하는 이번 갈등에서 누구도 승자가 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우선 지상파 방송사의 경우 재판에서는 이겼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처지다. 케이블TV의 재전송 중단으로 많은 시청자가 지상파를 보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경우 그동안 난시청 해소를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특히 한국방송의 경우 현재 추진 중인 수신료 인상이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 한국방송은 현재 월 2500원의 수신료를 최고 6500원까지 올리려는 계획을 갖고 있는데, 지상파 재전송이 중단돼 시청자가 난시청을 호소할 경우 수신료 인상의 설득력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계권료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유선방송사업자가 그 부담을 고스란히 가입자의 몫으로 돌릴 가능성이 크다. 결국 한국방송 수신료와 함께 케이블TV 이용료도 인상되는 이중의 고통을 시청자들에게 지게 되면 반발은 더욱 거세질 수 있다. 유선방송사업자 역시 케이블TV 채널 가운데 지상파가 전체 시청 점유율의 58.9%(지난해 12월 기준)를 차지해, 지상파 재전송을 중단할 경우 가입자의 반발이 당연한 상황이다.

최성진 서울산업대 교수(매체공학)는 “현 정부 들어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가 결합한 방송통신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조직 내 갈등, 업무 정리 등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제도 정비 등을 소홀히 한 측면이 있다”며 “이제라도 방통위가 지상파 방송사와 유선방송사업자를 적극적으로 중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현재의 갈등을 단순히 사업자 간 갈등이 아니라 지상파와 유료방송 전체의 문제로 보고 지상파 재전송, 보편적 시청권 등에 대한 제도 정비를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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