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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 지분 많은 계열사, 그룹 내부거래가 40~80%

4대 그룹 2009년치 공시 자료 분석…
‘몰아주기’로 경영권 승계에 악용 지적, 조사한다던 공정위 왜 태도 바꾸나
등록 2010-06-24 22:43 수정 2020-05-03 04:26
공정거래위원회는 올 초 국내 주요 대기업의 내부거래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에는 입장이 바뀌어 내부거래 조사를 하지도 않고 할 계획도 없다고 밝히고 있다.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공정거래위원회는 올 초 국내 주요 대기업의 내부거래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에는 입장이 바뀌어 내부거래 조사를 하지도 않고 할 계획도 없다고 밝히고 있다.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삼성, 현대차, SK, LG 등 4대 그룹 계열사 가운데 오너 일가의 지분이 많은 기업(LG그룹의 경우 지주회사 지분이 많은 기업)에서 내부거래가 2009년 기준 최저 42.5%에서 최고 79.8%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것은 오너 일가에게 손쉽게 수익을 안겨주는 편법적 수단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으나, 그 공정성 여부를 판단해야 할 공정거래위원회는 정작 손을 놓고 있다.

삼성에버랜드 42.5%, 글로비스 52%

4대 그룹의 내부거래는 지난 5월3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정확하게 드러났다. 그동안 내부거래는 각 기업의 감사보고서나 전자공시 등을 통해 전체적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알려졌지만, 정확한 내부거래 계열사 개수나 금액은 알기 힘들었다. 공정위는 지난해 7월 ‘대기업 집단 현황 공시제도’를 수정했다. 이에 따라 ‘재벌’을 포함한 48개 대기업 집단은 해마다 1회씩 ‘계열회사 간 상품·용역 거래 현황’ ‘계열회사 간 주요 상품·용역거래 내역’ 등을 공시해야만 한다.

이번에 나온 공시 자료를 보면, 연매출 1조원이 넘는 계열사 가운데 재벌 오너가 소유한 계열사들의 내부거래 비중은 다른 계열사보다 크게 높았다. 삼성그룹의 경우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가 대표적이다. 또 현대·기아차그룹의 글로비스, SK그룹의 SKC&C, LG그룹의 서브원 등이 꼽힌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아들 이재용 부사장 등 가족이 주식의 46.04%를 보유한 삼성에버랜드는 2009년 매출(1조7515억원)의 42.5%인 7452억원을 내부거래를 통해 달성했다. 2004년보다 비중(44.61%)은 떨어졌지만 금액(5196억원)은 2256억원이 늘었다. 또 거래 계열사를 살펴보면 삼성전자의 비중이 16.7%로 가장 높고, 삼성생명보험(4.9%), 삼성화재해상보험(3.2%), 삼성중공업(3.1%), 삼성물산(2%) 등의 순이었다. 총 62개 삼성 계열사 가운데 50개가 삼성에버랜드와 거래했다.

삼성SDS는 내부거래 비중이 더 높았다. 2009년 2조4940억원의 매출 가운데 내부거래가 1조5724억원(63%)을 차지해 삼성에버랜드를 능가했다. 2004년과 비교하면 비중(65.84%)은 2.84%포인트 낮아졌지만, 금액(1조1656억원)은 4068억원이나 늘었다. 거래 계열사는 삼성전자가 33.4%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고, 삼성생명보험(3.5%), 삼성물산(2.5%), 삼성카드(2.3%),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삼성전기(각 2.1%) 등의 순이었다. 거래 계열사 개수는 57개로 5개만을 제외한 모든 삼성 계열사와 거래했다. 삼성SDS 주식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이 8.81%를 소유하는 등 이건희 회장 가족이 전체의 17.18%를 소유하고 있다.

다른 그룹도 마찬가지다. 현대·기아차그룹계열사 가운데 정몽구 회장과 아들 정의선 부회장의 주식 소유량이 52.17%로 가장 많은 글로비스에서 내부거래가 많았다. 2009년 매출 3조1927억원 가운데 1조5805억원(49.5%)이 내부거래였다. 삼성그룹과 마찬가지로 거래 비중은 기아차(19%), 현대차(9.9%) 등 그룹 주력사가 가장 많았고, 현대제철(9%), 현대하이스코(3.2%), 현대위아(1.3%) 등이 뒤를 이었다. 또 42개 계열사 가운데 22개가 글로비스와 거래관계를 맺었다. 특히 글로비스는 현대·기아차그룹의 해외 법인까지 포함할 경우 내부거래 비중이 81%까지 급격하게 올라간다. 사실상 매출 대부분이 그룹 계열사 덕분에 이뤄진 셈이다. 글로비스는 해외를 포함해 현대·기아차의 생산 공장에 부품을 실어나르거나 생산된 차량을 운반하는 일을 맡고 있다.

SK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인 SKC&C도 내부거래가 많다. 최태원 회장(44.5%)과 동생 기원씨(10.5%)가 SKC&C의 주식을 절반 넘게 소유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 1조3125억원 가운데 8718억원(66.4%)이 내부거래다. 2007년 58%까지 낮아진 내부거래 비중이 2008년(64.8%)에 이어 2년 연속 상승했다. 내부거래 상대로는 SK텔레콤이 35.6%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SK에너지(6.3%), SK네트웍스(5.8%), SK브로드밴드(5.4%), SK건설(3.6%) 등도 수백억원의 거래를 기록했다. 또 74개 그룹 계열사 가운데 45개와 거래했다.

소유구조는 다르지만 LG그룹도 양상은 비슷하다. 2002년 LG유통에서 분리된 서브원은 그룹 내 부동산을 관리하고 각 계열사에 물품을 공급하면서 창립 4년 만인 2006년에 매출 1조원을 돌파하는 등 급성장했다. 다른 그룹처럼 순환출자 구조가 아니라 지주회사 체제인 LG그룹은 구본무 회장(10.47%)을 비롯한 가족이 지주회사인 (주)LG의 주식 31.33%를 소유하고 있다. 이 (주)LG가 서브원(100%)을 비롯해 LG화학(30.07%), LG전자(31.11%) 등 주요 계열사의 주식을 소유하는 형태다. 이들 중 100% 지주회사에 종속된 서브원은 2009년에도 성장을 거듭해 2조5765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79.8%인 2조566억원이 내부거래였다. 또 LG그룹 49개 계열사 가운데 31개와 거래를 기록했다.

기업들 “경쟁력 강화·보안 유지” 변명

이처럼 높은 내부거래 비중에 대해 해당 기업들은 경쟁력 강화와 보안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선택이라고 항변한다. SKC&C 홍보팀 관계자는 “내부거래를 통해 경쟁력을 키워야 기업이 성장할 수 있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SI(시스템 통합) 사업 특성상 내부 비밀 보호 차원도 있다”고 말했다. 삼성SDS 관계자 역시 “기업 내 인적·물적 자원을 관리하는 ERP(전사자원관리) 시스템을 계열사에 제공함으로써 원가 절감, 서비스 향상 등 경쟁력 강화에 도움을 주고 있다”며 “내부거래가 많은 것은 해당 계열사들이 다른 기업에 비해 삼성SDS의 경쟁력을 인정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부품 공급을 맡는 회사들은 원가 절감 효과를 강조했다. 현대·기아차그룹의 글로비스 관계자는 “현대차가 직접 부품을 구매하거나 부품업체가 직접 공급하는 것보다 글로비스가 구매해 공급하는 것이 경쟁력 차원에서 훨씬 좋다”고 말했다. 서브원 관계자도 “해당 계열사가 물품을 직접 사서 쓰는 것보다 그룹 내 전체 구입 물량을 모아서 구입하는 것이 구매력 차원에서 훨씬 유리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내부거래는 공정성 문제에서 항상 시비를 낳는다. 공정위는 지난 2007년 현대·기아차그룹의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이 글로비스에 물량 몰아주기를 했다며 63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에 맞서 현대·기아차그룹은 공정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과 2심 모두 패소한 바 있다. 이같은 부당한 내부거래는 공정한 시장 질서를 해친다. 제값보다 비싸게 용역이나 물품을 사도록 해서 구매 계열사에 손해를 끼치고, 다시 그 주주의 피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경제개혁연대는 2008년 5월 소액주주들과 함께 “현대·기아차그룹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이 물량 몰아주기 거래를 통해 글로비스를 부당 지원했다”며 소송을 제기해 현재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경제개혁연대 소장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무역학)는 ‘양면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그룹 차원에서 안정적인 물량 확보와 원가 절감 등 시너지 효과가 있는데다 영업비밀과 관련돼 내부거래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물량 몰아주기 대상이 대부분 오너 일가가 지분을 다수 소유한 기업이어서 이들에게 손쉽게 부를 안겨주는데다 이를 통해 후계 승계가 이뤄지는 등 부정적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또 “내부거래가 부와 경영권의 신종 승계 방법으로 점점 확산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주요 대기업과 오너 소유 계열사 간 내부거래 현황.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주요 대기업과 오너 소유 계열사 간 내부거래 현황.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기준 제시해야 할 공정위 “조사 계획 없다”

하지만 부당한 내부거래를 규제해야 하는 공정위는 한때 강도 높은 조사 계획을 밝히다가(808호 줌인 ‘정부, 재벌에 칼 드나’ 참조) 최근 들어 돌연 태도를 바꿨다. 정호열 공정위원장은 지난 5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연 강연에서 “대기업의 계열사 물량 몰아주기에 대해 실태 조사에 나서겠다”며 “심사기준을 개정해 물량 몰아주기의 부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구체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공정위는 올해 초 대기업들의 계열사 간 부당 내부거래를 근절하기 위해 실태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준범 공정위 시장감시총괄과장은 최근 과의 통화에서 “지난 3~4월 대기업들의 내부거래에 대해 실태조사를 한 것은 제도개선 사항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며 “현재 조사하고 있는 바도 없으며, 향후 조사 계획도 없다”고 말했다.

김상조 교수는 “점점 내부거래가 많아지고 유형도 복잡해지는 상황에서 감독기관이 어떤 내부거래가 합법인지 불법인지 기준을 하루빨리 제시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며 “이에 대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공정위가 대기업의 로비에 굴복했다는 의혹을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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