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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항공사에 펀치를 날려라

화물 운임 짬짜미·저가 항공사 영업 방해·불공정 마일리지 등 둘러싼 해묵은 논란,
올해는 제대로 해결될까
등록 2010-06-04 16:01 수정 2020-05-03 04:26
2006년 3월 설치된 김포공항 무인 탑승수속 시스템. 대한항공은 당시에도 승객을 대상으로 마일리지를 추가로 지급하는 행사를 벌였다. 시민단체는 “소비자가 받는 마일리지는 많지만, 사용할 수 있는 마일리지는 적다”며 항공사들의 약관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2006년 3월 설치된 김포공항 무인 탑승수속 시스템. 대한항공은 당시에도 승객을 대상으로 마일리지를 추가로 지급하는 행사를 벌였다. 시민단체는 “소비자가 받는 마일리지는 많지만, 사용할 수 있는 마일리지는 적다”며 항공사들의 약관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올해 부과한 800억원가량의 과징금으로 항공업계가 부글거리고 있다. 공정위의 대규모 과징금은 올해 들어서만 두 번째다. 공정위는 화물운임 국제 담합, 저가 항공사 영업 방해, 불공정 항공 마일리지 등 굵직한 문제에 대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에 잇따라 ‘펀치’를 날리고 있다. 한국 항공산업의 역사를 쓴다면 2010년은 공정위가 별안간 주연급으로 등장한 한 해로 기록될 듯하다. 시민단체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도 조연으로 출연하고 있다.

대한항공·아시아나 “과징금 깎아달라”

지난 5월27일 오전 10시 공정위 브리핑룸. 김학현 공정위 상임위원은 대한항공에 487억원, 아시아나에 207억원을 과징금으로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두 항공사가 화물 운임을 15개국 19개 항공사와 짬짜미했다는 것이 공정위의 설명이었다. 두 항공사를 포함해 21개 항공사에 물린 전체 과징금은 1195억원이었다. 이들은 1999~2007년 유류할증료를 신규 도입하거나 변경하는 식으로 운임을 올렸다. 유류할증료는 기름값이 오르면 이 비용을 보전하기 위해 화물주가 덤으로 내는 요금이다. 이 비용은 비행기 운임에 포함되기 때문에 항공사에는 손쉬운 가격 인상 수단이 됐다.

공정위의 이날 결정은 예정된 것이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지난 2007년 다른 항공사들과 함께 같은 혐의로 미국에서 덜미가 잡혔기 때문이다. 두 항공사는 미국 법무부에 각각 3억달러와 5천만달러의 과징금을 냈다.

문제는 우리나라 공정위의 과징금 규모였다. 이번 과징금을 두고 지난해 액화석유가스 업계가 떠안은 과징금 4093억원의 기록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관측도 있었다. 그만큼 항공업계가 고객의 호주머니에서 앗아간 액수가 컸다는 것이다. 그러나 뚜껑을 열고 보니 21개 항공사가 떠안은 과징금은 1100억원을 조금 넘겼다. 더욱이 대한항공은 짬짜미 사실을 미리 ‘신고’한 대가로 과징금 487억원 가운데 265억원을 감면받는 추가 혜택을 받았다. 그 결과 항공사들이 실제로 내야 하는 과징금은 800억원대로 떨어졌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성명을 내고 “7년간 담합으로 영향받은 매출액이 약 6조7천억원에 이르는데, 정작 이번에 부과한 과징금 액수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밝혔다. 공정위 관계자는 “6조7천억원은 담합으로 생긴 부당이득이 아니라, 담합과 관련된 매출액 전체 액수”라며 “이 가운데 담합으로 생긴 부당이득분을 과징금으로 부과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학현 공정위 상임위원은 “항공업계의 경영 적자도 고려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이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나라는 과징금 부과 한도가 짬짜미 관련 매출액의 10%를 넘지 않도록 규정돼 있지만, 유럽과 미국에서는 과징금을 짬짜미와 관련된 매출액의 20~30% 수준에서 책정하고 있다.

업계는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번 공정위의 결정에 앞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항공산업이 불황이라며 공정위에 과징금 액수를 깎아달라고 요청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과징금의 규모가 적정했는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 제재에 반기 든 전경련

공정위와 항공사의 두 번째 ‘악연’은 대형 항공사의 ‘저가 항공사 괴롭히기’와 엮여 있다. 공정위는 지난 3월 저가 항공사의 영업을 방해한 혐의로 대한항공에 104억원, 아시아나항공에 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아시아나의 위법 내용은 상대적으로 가벼웠다. 공정위에 따르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는 저가 항공사의 표를 사는 여행사에는 단체관광용 비행기표를 팔지 않았다. 저가 항공사의 판로를 차단하겠다는 의도였다. 두 항공사는 국제선 여객수송 점유율의 61%를 차지하기 때문에 여행사들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요구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공정위는 “두 항공사가 시장우월적 지위를 남용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공정위의 이 결정 역시 업계가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았다. 전경련이 나섰다. 전경련 산하의 한국경제연구원 이주선 연구조정실장은 5월 초 에 낸 기고에서 “저가 항공사들은 저렴한 가격이라는 경쟁 수단을 가졌으므로 판매망 확보 경쟁에서 열위에 있었다고 할 수 없다”며 “공정위의 결정이 경쟁 촉진과 거리가 멀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국경제연구원 관계자는 “6월에 연구원의 공식 입장을 정리한 보고서를 내놓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아직 공정위로부터 공식 서류를 수령하지 못한 상황이라 회사의 공식 입장을 밝히기는 곤란하다”고 밝혔다. 반면 허종 한국항공정책연구소 소장은 “대규모 항공사들의 횡포에 견줘 처벌이 지나치게 가벼웠다”고 평가했다.

항공 마일리지 문제도 ‘진행 중’이다. 공정위는 연초부터 마일리지 제도를 개선하라고 항공사를 줄곧 압박하고 있다. 소비자·시민단체는 항공사들이 마일리지를 사용하는 소비자에게 지나치게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우면서 폭리를 취한다고 주장해왔다. 지난 3월 손인옥 공정위 부위원장도 직접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마일리지 제도가 소비자 편의를 제공할 수 있도록 개선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항공사들도 지난 4월 제도 개선안을 내놓을 계획이었지만 공정위와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시한을 넘겼다.

핵심 쟁점은 항공사가 마일리지용으로 할당하는 좌석 배정 비율이다. 항공사들은 마일리지용 좌석을 전체의 5%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방침이지만, 공정위는 비수기에는 소비자가 직접 사는 좌석과 차별을 아예 없애고 성수기에도 마일리지를 사용하는 승객을 위해 좌석을 10% 이상 배정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시민단체 “봐주면 안 된다”

마일리지 적립일로부터 5년 이내에 마일리지를 사용해야 한다는 조항도 논란거리다. 공정위는 그 기한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마일리지는 항공사가 쓰는 일종의 판촉 수단이기 때문에 항공사와 고객 사이의 민사적 계약의 성격이 강해 공정위가 개입하기 쉽지 않다”며 “항공사가 약정을 개선하도록 유도하고 있으며 상당히 진척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는 적극적이다. 경실련은 지난해 9월 마일리지 제도를 불공정하게 운용하고 있다며 대한항공을 공정위에 고발했다. 경실련은 “신용카드사, 이동통신사 등 54개 제휴사업자에게 마일리지 적립 대가로 연간 1300억원에 이르는 제휴 마일리지를 판매하면서, 소비자가 마일리지를 청구했을 때 불공정한 약관을 근거로 좌석을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대한항공은 5월27일 “마일리지 관련 경쟁력 강화와 고객 만족을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계속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약관 개선안을 언제 내놓을지는 밝히지 않았다.

윤철한 경실련 시민권익센터 부장은 “항공사의 담합이나 마일리지 등은 오래 묵은 문제인데 올해 들어 특히 도드라진 것”이라며 “정부가 항공사에 솜방망이 처벌을 하고 있다”고 평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항공산업은 소비자 불만이 많은 산업이라 법집행을 엄밀히 하다 보니 시간이 걸리고, 제재 수위가 적절한지를 놓고도 이견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최근 잇따른 논란과 관련해 “아직 공식 입장을 밝힐 단계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아시아나는 “공정위의 입장을 확인하고 대응 방향을 정하겠다”고 밝혔다.



저가 항공사 급성장
국내선 점유율 3년 새 10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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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대한항공은 국내 200여 개 주요 여행사에 ‘당근과 채찍’을 썼다. 당근은 대한항공이 정한 좌석 판매 목표를 달성하면 리베이트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채찍은 다른 ‘특정’ 항공사로부터 비행기표를 사는 여행사와는 단체석 거래를 끊겠다는 것이다. 국내를 오가는 국제선 여객 10명 가운데 4명을 수송하는 대한항공의 이런 양동작전에 여행사들은 대부분 굴복했다. 대한항공의 위세를 말해주는 이야기지만, 뒤집어보면 대한항공이 ‘특정’ 항공사들과의 경쟁을 그만큼 의식했다는 뜻이다.
2005년 8월 충북 청주와 제주를 잇는 한성항공이 처음 등장한 이래 등락을 거듭했던 저가항공 산업은 이제 시장에서 자리를 확고히 잡아가고 있다. 특히 저가항공사가 주력하는 국내선에서 성장세가 눈부시다. 한국공항공사의 자료를 보면, 제주공항을 사용하는 국내 노선에서 저가항공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6년 3.1%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32.1%로 뛰었다. 지난 1분기 수송 비율은 42%로 나타났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의 지분은 그만큼 줄었다. 대한항공은 지난 2005년 2310만 명을 국내선으로 수송했지만 지난해 1698만 명으로 줄었다. 해마다 승객 수가 7.4%씩 줄어든 결과다. 아시아나 항공도 같은 기간 국내선 승객 수가 1160만 명에서 958만 명으로 줄었다. 대신 에어부산(284만 명), 제주항공(274만 명), 진에어(243만 명), 이스타항공(200만 명) 등 4개 저가항공사가 사이좋게 성장했다. 송기택 이스타항공 홍보실장은 “미국, 유럽 등에서는 3~4시간 이하 비행거리에서 저비용 항공사 이용률이 70~80% 수준”이라며 “우리나라 저비용 항공사의 성장세도 지속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저가항공사의 강점은 무엇보다 가격경쟁력에 있다. 저가항공사의 운임은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보다 20~50% 싸다. 운임을 비교해보면, 6월1일 오후 5시25분 대한항공의 김포∼제주 노선은 편도 6만2390원이었지만, 이스타항공은 같은 날 오후 4시45분 비행기 삯이 3만4900원이었다. 또 6월1~2일 인천과 오사카를 오가는 왕복 항공료도 아시아나는 42만3천원이지만, 제주항공은 22만5천원이다.
저가항공사는 왜 쌀까? 우선 기내 서비스를 대폭 간소화했기 때문이다. 저가항공사 비행기 안에서는 기내식 등 기내 서비스가 없거나 주스 한 잔 정도로 단순한다. 항공기에 들일 수 있는 짐의 무게에도 제한이 있다. 예를 들어 대한항공 국내선은 1인당 20kg이 한도지만, 자회사인 저가항공사 진에어의 한도는 15kg이다. 항공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저가항공사 직원의 임금도 일반 항공사보다 20% 정도 낮은 편이다. 항공사의 운영 비용도 줄었다. 지난 몇 해 사이 비행기 리스 업체가 다수 등장하면서 비행기 리스 비용이 떨어진 점도 비용 절감에 한몫했다. 박용화 인하대 교수(아태물류학)는 “외국 저가항공사의 경우엔 주요 공항이 아니라 변두리 공항을 사용하고, 체크인 절차를 아예 없애는 등의 방식으로 비용을 삭감해서 비행기 삯을 깎고 있다”고 말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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