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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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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츠러든 기업 사회공헌에도 볕들까

지난해 지출 비공개한 삼성 외에도 대기업 7곳 줄여…
올해 대부분 예산 증액, ‘사회책임 국제표준’ 출범이 화두
등록 2010-05-27 17:01 수정 2020-05-03 04:26

“기업 사회공헌의 진정성은 불경기에 드러난다!”
어려울 때 도와주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했던가. 호경기에는 기업들이 막대한 이익의 일부를 사회를 위해 쓸 수 있는 여유가 있기 때문에 그 진정성을 알기 어렵지만, 불경기를 맞아 허리띠를 졸라매게 되면 진정한 사회책임경영의 실천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나섰던 기업들은 사회공헌을 가장 먼저 줄인다는 것이다. 사회공헌계의 이런 통설이 진실이라면 상당수 대기업이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은 실물경기 위축으로 비상경영에 들어간 2009년은 기업 사회공헌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이 삼성, 현대기아차, SK, LG, 포스코, GS, KT, 금호아시아나, 한화, CJ, 이랜드, 교보생명, 유한킴벌리 등 국내 기업 사회공헌을 주도해온 13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2009년 사회공헌 지출과 2010년 사회공헌 예산 규모를 조사했다. 과연 결과는 어땠을까?

일부 대기업의 사회공헌 예산은 불경기를 이유로 2008년 이후 감소세로 돌아섰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현대모비스의 ‘사랑의 김장 담그기’, GS건설의 사내 봉사 동호회 활동, LG하우시스의 홀트 아동복지타운 봉사 활동, SK브로드밴드의 경기 성남 지역 독거노인 자원봉사. 현대모비스 제공, GS건설 제공, LG하우시스 제공, SK그룹 제공.

일부 대기업의 사회공헌 예산은 불경기를 이유로 2008년 이후 감소세로 돌아섰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현대모비스의 ‘사랑의 김장 담그기’, GS건설의 사내 봉사 동호회 활동, LG하우시스의 홀트 아동복지타운 봉사 활동, SK브로드밴드의 경기 성남 지역 독거노인 자원봉사. 현대모비스 제공, GS건설 제공, LG하우시스 제공, SK그룹 제공.

현대차·SK·LG·GS·유한킴벌리 지출 늘려

자료 공개에 난색을 보인 삼성을 제외한 12개 대기업 중에서 포스코, KT, 금호아시아나, 한화, CJ, 이랜드, 교보생명 등 7곳이 지난해 사회공헌 예산을 2008년보다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지난해 사회공헌 지출 감소율은 평균 19.3%에 달한다. 한 대기업 사회공헌팀장은 “경제위기 영향으로 기존 사회공헌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를 통해 점수가 낮은 것은 중단하는 등 선택과 집중을 하면서 지출 규모가 줄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기업의 사회공헌사업 책임자는 “아무래도 경영 사정이 악화돼 비용 절감에 나서면 가장 먼저 줄이는 것 중 하나가 사회공헌”이라면서 “이전 참여정부와 달리 MB(이명박) 정부가 친기업을 표방하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대기업은 전담조직을 없애거나 줄이기도 했다.

삼성을 제외한 12개 대기업의 지난해 사회공헌 지출 총액은 6400억원으로, 2008년보다 4% 늘었다. 개별적으로 사회공헌 지출을 줄인 대기업이 많은데도 전체 규모가 소폭 늘어난 것은 일부 대기업이 경제위기 속에서도 지출을 크게 늘렸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현대기아차, SK, LG, GS, 유한킴벌리 등 5곳이다. 이들의 사회공헌 지출 증가율은 평균 13.6%에 달했다. 현대기아차그룹은 37.5%로 가장 높았다. 정몽구 회장이 지난해 초 직접 “(경제가 어려울수록) 글로벌 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약속한 것을 제대로 이행한 것이다.

2007년까지만 해도 매년 4천억~5천억원을 사회공헌에 지출하며 국내 최대를 자랑해온 삼성은 지난해부터 순수 사회복지 지출만 공개하더니, 올해는 아예 이마저도 공개하지 않았다. 장인성 삼성사회봉사단 상무는 “기업마다 사회공헌 지출과 홍보·마케팅성 지출을 구분하는 기준이 제각각이고, 사회공헌 금액을 과시하던 시절도 지난 것 같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전사 차원에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데 사회공헌 예산만 예외로 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게 기업 현실이다. 하지만 양용희 호서대 교수(사회복지학)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지속가능경영 취지를 고려하면 불황기를 맞았다고 사회공헌 예산을 갑자기 줄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기업 사회공헌의 위축은 개인 기부가 늘어난 것과도 좋은 대조를 이룬다. 굿네이버스·월드비전·유니세프 등 주요 비정부기구(NGO)와 비영리조직(NPO)에 대한 개인 기부액은 지난해 크게 늘어났다. 국제구호개발 전문 NGO인 굿네이버스의 문상록 미디어홍보팀장은 “지난해 전체 모금액이 35% 늘었는데, 법인을 제외한 개인의 비중이 92%로 2008년보다 3%포인트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국제표준 못 따르면 불이익도 예상

경기회복세를 타고 있는 올해는 기업 사회공헌의 형편도 지난해보다 한결 나아질 전망이다. 역시 자료 공개를 거부한 삼성과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금호아시아나를 제외한 11개 대기업 중에서 9곳이 2010년 사회공헌 예산을 지난해보다 늘리겠다고 답했다. 11개 대기업의 올해 사회공헌 예산 평균 증가율은 11.3%에 달한다. 증가율이 가장 높은 곳은 이랜드로 65.1%에 달한다. 정영일 이랜드복지재단 대표는 “회사의 중국 사업이 빠르게 성장하는 것에 발맞춰 중국 현지에서의 사회공헌 사업에 100억원가량을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1개 대기업의 올해 사회공헌 예산 총액은 6576억원으로 지난해보다 7.6% 많다.

기업 사회공헌의 주머니 사정이 지난해보다 풀리더라도, 담당자들의 속마음은 그리 편치 않다. 오히려 폭풍 전야의 분위기라고나 할까. 그동안 기업 사회공헌의 최대 화두였던 사회책임(SR·Social Responsibility)의 국제표준인 ‘ISO 26000’이 시행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표준화기구(ISO)는 2004년 사회책임에 관한 국제표준 마련 작업에 착수해, 올해 2월 잠정안에 대한 투표까지 마쳤다. 지난 5월17일부터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제8차 회의에서 추가 조율을 거쳐, 오는 10월께는 국제표준(IS)이 확정 발효될 예정이다. ISO 26000은 산업계·정부·소비자·노동계·NGO 등 6개 경제주체를 대상으로 지배구조, 인권, 노동 관행, 환경, 공정거래, 소비자 이슈, 공동체 참여 및 개발 등 7개 주제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규정하고 있다. 기업들은 ISO 26000이 ‘인증’이 아닌 가이드라인 형태로 만들어지더라도, 결국 선진국 정부나 연구기관들에서 평가 및 인증제도를 만들 공산이 높다고 본다. 이렇게 되면 사회책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기업은 국제 교역에서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이 높다. 사회책임투자(SRI) 펀드가 전세계적으로 9천조원(2007년 말 기준)에 달할 정도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사회책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기업이 투자 대상에서 소외되는 것과 비슷하다. 선진국 정부와 기업들은 진작부터 대응 준비를 서둘러왔다. 한 예로 영국은 2000년 이후 기업의 사회책임을 담당하는 장관을 임명하고, 연금법을 개정해 ‘착한 기업’에 대한 사회책임투자를 장려하고 있다.

일부 국내 기업들은 이를 계기로 기존 사회공헌 활동을 사회책임경영으로 제대로 확대·심화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최고경영자인 신창재 회장이 사회책임경영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교보생명은 기업의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는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사회책임경영을 하기 위해 올해 4월 지속가능경영지원팀을 신설했다. SK텔레콤은 지난 2008년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전략적 사회책임경영을 추진하기 위해 이사회 산하에 기업시민위원회를 신설했다. 기업시민위원회는 기존 윤리위원회를 이사회 산하 전문위원회로 격상한 것으로, 사회공헌과 윤리경영, 상생경영, 친환경경영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사회적 책임과 지속가능경영을 추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현대기아차그룹도 5개 계열사에 CSR위원회를 신설했다. 곽대석 CJ 나눔&문화재단 사무국장은 “기업들이 기존 사회공헌 프로그램의 평가와 성과 측정을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하기 위한 고민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자리 창출, 또 다른 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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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상당수 국내 기업들은 여전히 시혜 성격의 사회공헌과 선언적 수준의 윤리경영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박태규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그동안 국내 기업들은 사회책임경영을 사회공헌이라는 좁은 틀에서 접근한 측면이 강했는데, 사회책임의 국제표준인 ISO 26000의 시행을 계기로 이를 경영 전반으로 확대해 심화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고 말했다. 이한준 한양대 교수(경영학)도 “기업 사회공헌의 효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디에, 어떻게 지원을 하느냐보다 지원 주체가 윤리적이냐 비윤리적이냐는 점”이라면서 “기업이 법적·윤리적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사회공헌에 수천억원을 써도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 1월 대한상의가 국내 100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ISO 26000에 대한 대응 전략을 갖추고 있다는 기업은 4.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SR 국제표준화 작업에 대해 국내 노동계 대표인 강충호 한국노총 대변인은 “일부 대기업의 경우 노조 결성 등 노동기본법도 제대로 보장하지 않으면서 사회공헌에 나서는 것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제대로 이행한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 4월29일 참여연대, 좋은기업센터, 기업책임시민센터, 환경운동연합, 민주당 박선숙 의원 등이 ‘기업의 사회적책임 정보공시’를 법제화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토론회를 개최한 것도 우리 현실을 바꾸기 위한 노력의 하나다. 발제를 맡은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의 이상훈 변호사는 “우리나라도 세계적 추세에 맞춰 기업의 사회책임보고를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며 “기업의 사회책임과 관련한 최소한의 실행 장치로서 관련 정보 공시를 우선적으로 법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해 기업 사회공헌의 또 다른 화두는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회적기업의 활성화가 될 전망이다. 현대자동차는 3월 말 경기도와 손잡고 장애인·노인 보조기구를 생산하는 사회적기업인 (주)이지무브를 설립하기로 협약을 맺었다. 포스코도 4월 친환경 건축공법인 스틸하우스 건축사업 등을 수행하는 사회적기업인 포스에코하우징을 신설했다. SK는 사회적 육성 지원을 위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인 ‘세상’을 지난해 말 개설했다.

어린이들의 성공적 사회 진입 지원

기업 사회공헌 프로그램도 진화하고 있다. 배고픈 사람에게 물고기를 주는 것이 1단계이고, 배고픈 사람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 2단계였다면, 최근에는 각종 지원과 교육을 통해 물고기를 잘 잡는 훌륭한 어부가 되도록 도와주는 3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CJ의 공부방 어린이 학습지원 프로그램인 ‘도너츠캠프’가 대표적인 사례다. 곽대석 CJ 나눔&문화재단 사무국장은 “지금까지는 공부방 어린이에게 주로 경제적·학습적 지원을 했지만 올해부터는 어린이들이 사회에 성공적으로 진입해 안착하는 전 과정에 필요한 지원을 포괄적이고 통합적으로 제공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CJ는 어린이들의 재능을 찾아내서 식품·미디어·엔터테인먼트 등 산하 계열사 현장체험과 인턴근무 기회를 만들어주고, 본인의 능력과 적성이 맞으면 정식 직원으로까지 채용하기로 했다.

곽정수 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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