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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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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의 땅 개척자는 기독교와 성

아이폰 사용기 ③
앱스토어가 SW 시장 진입 장벽 허물고 소규모 생산·판매 열었지만,
‘멋진 신세계’에 쓸 만한 건 별로 없네
등록 2010-02-02 16:55 수정 2020-05-03 04:25

황금광 시대가 있었다. 유럽과 중남미, 아시아의 모든 야망가는 대박의 꿈을 향해 미국 캘리포니아로 향했다. 그때가 19세기 중반이었다.
그로부터 160여 년이 지난 지금, 또 다른 골드러시가 시작됐다. 무대는 미국도, 캘리포니아도 아니다. 조그만 휴대전화 속 앱스토어다. 스마트폰 사용자가 늘면서 스마트폰용 어플리케이션(응용 프로그램) 시장이 새로운 ‘기회의 땅’이 되고 있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대박 자체보다 꿈꿀 권리

앱스토어라는 이름의 장터에 등록된 어플은 모두 13만 개에 이른다. 경기 분당에 사는 백승찬씨는 일정관리 어플 ‘어썸노트’(Awesome Note)를 개발해 앱스토어에서 개당 3.99달러에 팔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 모든 아이폰 사용자가 그의 고객이 될 수 있다. 1월 말 현재 어썸노트는 앱스토어 프로덕티버티(productivity) 부문에서 판매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관련 업계에서는 백씨가 어썸노트 판매로 적어도 수억원대의 순이익을 올렸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앱스토어의 최대 강점은 응용 프로그램을 ‘쉽게 만들어 쉽게 판매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어썸노트를 만든 사람은 백승찬씨와 그의 친구 한 명이 전부였다. 서울시 버스운행 정보를 담은 ‘서울버스’로 화제를 모은 유주완군은 고작 고교 2학년생이었다. 애플 앱스토어의 경우 연회비 99달러만 내면 누구나 어플을 만들어 올릴 수 있다. 수익은 개발자와 애플이 7 대 3 비율로 나누고 있다. 애플이 가져가는 몫이 과하다 싶기도 하지만, 제품 판매와 업데이트를 애플이 모두 책임지기 때문에 개발자도 불만이 없다.

‘기회의 땅’이 모든 소프트웨어 개발자에게 ‘대박의 꿈’을 허락한 것은 아니다. 대박을 맛본 사람보다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 더 많을 수도 있다. 앱스토어가 개발자에게 제공한 것은 대박 자체보다 ‘꿈꿀 권리’였다. 앱스토어는 소프트웨어 시장의 높은 진입장벽을 단숨에 허물었고, 회사에 종속된 채 꿈을 잃은 개발자에게 동기를 부여했다.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개발업체인 모바일트리거의 노호선 팀장은 “많은 개발자 사이에서 앱스토어 진출이 대세로 통한다”라고 말했다.

“아이폰이 국내에 들어오기 전까지 ‘소규모 생산·소규모 판매’ 시장이 없었죠. 모바일 소프트웨어는 이동통신사가 장악하고 있었고, 데스크톱 쪽은 하드웨어 제조업체가 ‘갑’이었으니까요. 앱스토어 덕분에 누구나 자신이 개발한 어플을 전세계에 판매할 수 있게 된 점은 긍정적이죠. 경력 개발자를 스카우트하려는 업체도 많아졌어요. 골드러시라는 말이 100% 맞다고 봅니다.”

자, 여기까지는 개발자나 애플, 즉 생산자 시각이다. 아이폰 등 스마트폰의 사용자, 즉 소비자에게는 어떨까? 열악한 환경에서 분투하던 개발자에게 복음을 내려준 것처럼 소비자에게도 앱스토어는 ‘멋진 신세계’일 수 있을까?

지금부터 수많은 ‘악플’이 예상되는 대목이 또 시작된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나으니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이폰 앱스토어, 별·로·였·다. 수많은 아이폰 마니아를 낳고 아이폰을 일반 스마트폰과 구분짓게 만든 1등 공신이 앱스토어라지만, 알면 알수록 ‘뭐 별거 없구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용자에게는 유용한 아이템의 보고일 수 있고, 경이로운 세계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따라서 이런 야박한 평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일 수 있다.

불리불리, 미끼를 덥썩 물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가장 먼저 눈에 거슬린 것은 앱스토어에 잔뜩 널린 ‘무관심 콘텐츠’다. 장이 서거나 사람이 몰리는 곳이면 가장 먼저 파고드는 두 가지, 즉 기독교와 성 관련 상품은 앱스토어를 비껴가지 않았다. 북 어플리케이션 항목을 선택하면 ‘한글 성경’ ‘가톨릭 성경’ ‘21세기 새 찬송가’ ‘가톨릭 성가’ 등 기독교 관련 콘텐츠가 언제나 상위에 올라 있다. 기독교 신자에게는 복음이겠지만, 신자가 아니라면 건너뛰기에 딱 좋을 어플들이다.(반야심경이나 코란도 있을까?)

‘아시안 핫’ ‘섹시 도쿄 걸스’ ‘그녀의 노출’ 등 성 관련 상품도 많다. 물론 노출 수위는 높지 않다. 애플은 개발자가 어플을 등록할 때 스스로 등급을 매기도록 하고 있다. 이때 가슴 이상이 노출되는 사진이나 그래픽 등은 올릴 수 없도록 경고하고 있다. 따라서 앱스토어에 등록된 ‘노출’ 사진은 얄팍한 상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앱스토어에서 유의해야 할 것이 또 있다. ‘미끼상품’이다. 앱스토어 어플은 두 가지로 나뉜다. 유료와 무료다. 유료 어플리케이션은 0.99달러에서 많게는 수십달러를 지불한 뒤 내려받을 수 있다. 현명한 소비를 지향하는 내가 앱스토어에 진출하며 세운 원칙이 하나 있었다. 반드시 무료 어플만 활용하겠다는 다짐이었다. ‘서울버스’나 ‘뉴스캐스트’ ‘뉴스코리아’ 등 무료도 쓸 만한 게 많다. 0.99달러이든 1.99달러이든 유료로 표기된 어플만 피하면 될 것 같았다.

오판이었다. 최근 ‘불리’를 알고 난 뒤 무료 이용자 선언이 무너졌다. 형형색색 풍선(?) 세 개 이상을 모아 터뜨리는 게임인 불리는 한번 접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은 게임이다. 불리를 처음 접할 때는 분명 무료였다. 그런데 초급 단계인 레벨4 이상을 돌파하면 “풀버전을 받으시겠습니까”라는 메시지와 함께 돈을 요구한다. 풀버전은 단돈 0.99달러. 역시 모든 쾌락은 대가를 요구한다. 레벨4에 이를 정도가 되면 그는 이미 쾌락의 노예, 아니 불리의 노예가 됐을 가능성이 높다. 자연스럽게 ‘인스톨’(설치)을 터치하게 된다. 이렇게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불리는 최근 ‘엔터테인먼트’ 유료 어플 항목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미국 앱스토어 이용하려면 미국 계정 있어야

‘헬로키티 낙하산 천국’도 무료로 유혹한 뒤 유료 풀버전 설치를 권하는 행태가 똑같다. 낙하산을 탄 헬로키티를 움직여 장애물은 피하고 아이템을 획득하는 간단한 게임이지만 중독성이 강하다. 불리보다 조금 더 비싼 2.99달러여서 아직 망설이는 중이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이것저것 내려받아 매달 20달러 안팎의 구입 비용을 지출한다는 사람도 봤다. 모이면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다.

샤넬, 구치, 돌체앤가바나, 아디다스 등 유명 브랜드가 경쟁하듯 내놓은 홍보용 어플도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이처럼 비관심 분야의 어플, 미끼 상품, 홍보용을 제외하면 정작 눈길을 줄 만한 어플은 생각보다 적다. 미국 앱스토어에 비해 한국 앱스토어에 등록된 어플이 매우 적기 때문이다. 게임이 특히 그렇다.

그래서 아이폰 ‘중급’ 이상 사용자끼리는 미국 앱스토어를 이용하려고 별도의 미국 계정을 만드는 법까지 공유하고 있다. 아이폰을 활용하기 위한 프로그램 ‘아이튠즈’에서 국가 설정을 미국으로 바꾼 뒤 새 계정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이다. 꽤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미국 계정을 만들었다 해도 유료가 대부분인 게임 어플은 내려받을 수 없다. 미국 앱스토어에서는 한국에서 발급된 신용카드를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수’와 ‘고수’가 갈린다. 일부 고수는 홍콩 계정을 추가로 만들면 유료 어플을 구매할 수 있다고 하는데, 아직 직접 해보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미국 앱스토어까지 자유자재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한국과 홍콩, 미국 계정 등 별도의 계정 세 개가 필요한 셈이다.

요컨대 앱스토어에서 정말 쓸 만한 어플을 찾으려면 그만한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과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어플이 많은가? 오락성이 아닌 유용성의 관점에서 봤을 때 미국 계정, 심지어 홍콩 계정까지 만드는 노력을 기울일 만큼 꼭 필요한 어플이 많은지는 의문이다. 어썸노트에 열광하는 사람에게도 묻고 싶다. 3.99달러를 내고 어썸노트를 내려받아야 할 만큼 일정이 많고 복잡한가? 나름대로 약속이 많을 수밖에 없는 직업에 종사하지만 지금까지 얇은 수첩 하나로 충분히 일정을 ‘관리’해온 ‘아날로그 형’ 인간으로서 가지는 의문이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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