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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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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중원을 차지할 자 누구인가

내년 몰아칠 대형 M&A
국민·하나·우리의 M&A 삼국지… 지략·자금력·정치적 관계 등 변수 따라 판도 흔들릴 듯
등록 2009-12-16 14:03 수정 2020-05-03 04:25

‘금융권 인수·합병(M&A) 전쟁’의 막이 올랐다. 여기 세 남자가 주인공이다. 강정원 국민은행장,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이 그들이다. 금융권 최고 수뇌부인 이들이 살기 위해선 M&A에 성공해야 한다. 이들의 지략 대결과 힘겨루기, 자존심 경쟁까지 겹쳐 은행권 M&A 공방의 최후 승자가 누가 될지는 예측 불허다. 세 남자가 살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금융 M&A의 세 주인공과 몇 명의 조연들. 왼쪽부터 강정원 국민은행장,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 라응찬 신한금융 회장, 민유성 산은금융 회장. 한겨레 자료

금융 M&A의 세 주인공과 몇 명의 조연들. 왼쪽부터 강정원 국민은행장,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 라응찬 신한금융 회장, 민유성 산은금융 회장. 한겨레 자료

강정원 KB 회장 내정이 신호탄

지난 9월 말 현재 금융그룹 자산 규모를 보면, KB금융(331조1천억원)이 1위다. 그 뒤를 우리금융(328조4천억원)이 쫓고 있다. 3위는 신한금융(311조2천억원), 4위는 하나금융(160조1천억원)이다. 내년 금융 빅뱅이 터지면 이 순위가 더욱 공고해지거나 뒤바뀔 수 있다. 1위가 3위가 되고, 3위가 1위로 역전될 수 있다는 얘기다.

금융계 빅뱅의 1차 핵은 외환은행이다. 외환은행이 누구 품에 안기느냐에 따라 금융권 새판 짜기가 가능해진다. 외환은행의 대주주인 론스타는 내심 인수전을 즐기고 있다. 인수전이 뜨거워질수록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외환은행 인수자금은 5조~6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또 다른 핵은 우리금융 민영화다. 외환은행의 향방만큼이나 관심을 모은다. 우리금융은 M&A 매물로 나올 수도 있고, 민영화 과정에서 다른 금융회사와 합병할 수도 있다. 우리금융과의 M&A 파장은 대단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하나금융이 우리금융을 인수하거나 합병하면 자산 규모가 488조원으로 KB금융을 제치고 국내 1위의 금융회사가 된다.

은행권 M&A 전쟁의 신호탄은 강정원 국민은행장의 KB금융 회장 내정이다. KB금융은 회장 선거를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서둘러 진행했다. 강 행장의 경쟁자로 나섰던 김병기 전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사장급)과 이철휘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은 불공정 경쟁 문제를 제기하며 면접을 포기해버렸다. KB금융지주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12월3일 강정원 국민은행장 한 명을 대상으로 최종 면접을 실시한 결과 만장일치로 강 행장을 차기 회장 후보로 이사회에 추천했다. 회장 선거를 서두른다는 비판에 KB금융은 M&A를 그 이유로 들었다. 빨리 조직을 추슬러 내년에 본격화될 M&A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강 행장은 화력을 뿜어낼 넉넉한 ‘실탄’도 갖고 있다. KB금융은 올 하반기 1조1천억원의 유상증자와 지주 출범 뒤 이익 2조2천억원가량을 합쳐 3조원이 넘는 자금을 쌓아놓고 있다. 여기에 자사주 4300만 주(11.2%)를 주당 6만3천원으로 계산하면 2조7천억원쯤 된다. 이를 합하면 총 6조원가량의 자금 여력이 있다.

강 행장이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데 성공하면, KB금융은 1등 자리를 공고히 할 수 있다. KB금융 순이익의 90%는 소매금융에서 나온다. 소매금융 중심으로 커온 국민은행의 취약 부분인 해외 및 외환 부문을 끌어들여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외환은행 노조의 반발이 거세다. 외환은행 노조는 “KB금융에 인수되면 외환은행의 조직과 정체성이 파괴된다”고 주장한다.

김승유 하나 회장의 막판 뒤집기 꿈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은 막판 뒤집기를 꿈꾼다. 하나금융이 금융권 ‘빅3’ 경쟁에서 탈락 위기에 놓인 현재 상황을 돌파하려면 M&A에 적극 나서지 않을 수 없다. 김 회장은 11월20일 경기 양평에서 열린 출입 기자단과의 세미나에서 “M&A와 관련한 모든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는 것이며 거기에는 외환은행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하나은행은 자산 규모 112조원대의 외환은행을 인수하면 272조원으로 자산이 성장해 2~3위권과 격차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실패할 경우 하나은행이 오히려 매물로 전락할 수 있다.

일각에선 하나은행이 외환은행보다 우리금융에 더 관심이 있다고 본다. 우리금융을 인수 또는 합병하면 1위로 올라설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은행의 우리은행 인수설에는 정치적 시각이 개입돼 있다. 김 회장과 이명박 대통령은 고려대 경영학과 61학번으로 동기다. 김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설립한 청계재단 이사진 중 한 명이다. 정부 정책금융 성격이 짙은 소액대출 재단인 미소금융재단 이사장도 김 회장이다. 이런 상황에선 하나금융이 M&A에서 정치적 특혜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커진다.

문제는 역시 ‘돈’이다. 하나금융은 지난 10월 증자를 추진했다. 당시 금융가에선 M&A를 겨냥한 ‘실탄 모으기’로 해석했다. 하지만 증자설이 나오자 하나은행은 주가가 폭락했고, 하나금융은 증자를 포기했다.

M&A를 앞둔 금융권 회장들의 기싸움도 치열하다.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은 지난 10월 하나금융의 우리금융 M&A 설에 “근거 없는 루머”라며 하나금융을 정면 공격했다. 당시 이 회장은 임직원에게 보낸 전자우편에서 “최근 우리금융을 포함해 M&A에 대한 여러 루머가 기사화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문제의 본질이 왜곡되고 그룹의 기업 가치를 훼손시킬 수 있는 근거 없는 말이 회자하고 있다”며 발끈했다. 우리금융 쪽 인사는 “자산 규모에서 100조 이상 뒤지는 하나금융이 우리금융을 M&A 하겠다는 데 대해 이 회장이 언짢아했다”고 전했다. 우리금융 쪽은 이같은 소문을 하나금융 쪽에서 의도적으로 흘리고 있는 것으로 본다.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이 발끈한 이유

민영화 결정권자는 정부지만 최고경영자인 이팔성 회장의 선택도 중요한 변수다. 마당발인 이 회장의 행보에 따라 우리금융 민영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금융산업 재편이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더라도 우리금융은 중심적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강조해 M&A 시장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세 남자와 함께 몇 명의 조연도 등장할 전망이다. 라응찬 신한금융 회장은 M&A 전투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다. 라 회장의 강력한 카리스마는 쌍용증권, 조흥은행, LG카드 등 굵직한 M&A에서 비롯됐다. 전 정권에서 너무 잘나가다 보니, 현 정권에서 더는 M&A가 힘들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민유성 산은금융지주 회장도 일단 조연으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민 회장은 지난 11월20일 “외환은행을 포함해 국내 은행에 대한 M&A를 다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산은금융은 수신(예금) 영업을 강화하려면 지점이 있는 외환은행이 꼭 필요한 상황이지만 아직 민영화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내년 금융권에 불어닥칠 M&A는 단순히 몸집 키우기 차원이 아니다. M&A 승자는, 금융산업 재편 뒤 사실상 금융권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 M&A는 최고경영자의 경영 판단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치열한 한판 승부 뒤 승자는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패자는 무대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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