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인수·합병(M&A) 전쟁’의 막이 올랐다. 여기 세 남자가 주인공이다. 강정원 국민은행장,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이 그들이다. 금융권 최고 수뇌부인 이들이 살기 위해선 M&A에 성공해야 한다. 이들의 지략 대결과 힘겨루기, 자존심 경쟁까지 겹쳐 은행권 M&A 공방의 최후 승자가 누가 될지는 예측 불허다. 세 남자가 살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금융 M&A의 세 주인공과 몇 명의 조연들. 왼쪽부터 강정원 국민은행장,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 라응찬 신한금융 회장, 민유성 산은금융 회장. 한겨레 자료
강정원 KB 회장 내정이 신호탄
지난 9월 말 현재 금융그룹 자산 규모를 보면, KB금융(331조1천억원)이 1위다. 그 뒤를 우리금융(328조4천억원)이 쫓고 있다. 3위는 신한금융(311조2천억원), 4위는 하나금융(160조1천억원)이다. 내년 금융 빅뱅이 터지면 이 순위가 더욱 공고해지거나 뒤바뀔 수 있다. 1위가 3위가 되고, 3위가 1위로 역전될 수 있다는 얘기다.
광고
금융계 빅뱅의 1차 핵은 외환은행이다. 외환은행이 누구 품에 안기느냐에 따라 금융권 새판 짜기가 가능해진다. 외환은행의 대주주인 론스타는 내심 인수전을 즐기고 있다. 인수전이 뜨거워질수록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외환은행 인수자금은 5조~6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또 다른 핵은 우리금융 민영화다. 외환은행의 향방만큼이나 관심을 모은다. 우리금융은 M&A 매물로 나올 수도 있고, 민영화 과정에서 다른 금융회사와 합병할 수도 있다. 우리금융과의 M&A 파장은 대단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하나금융이 우리금융을 인수하거나 합병하면 자산 규모가 488조원으로 KB금융을 제치고 국내 1위의 금융회사가 된다.
은행권 M&A 전쟁의 신호탄은 강정원 국민은행장의 KB금융 회장 내정이다. KB금융은 회장 선거를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서둘러 진행했다. 강 행장의 경쟁자로 나섰던 김병기 전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사장급)과 이철휘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은 불공정 경쟁 문제를 제기하며 면접을 포기해버렸다. KB금융지주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12월3일 강정원 국민은행장 한 명을 대상으로 최종 면접을 실시한 결과 만장일치로 강 행장을 차기 회장 후보로 이사회에 추천했다. 회장 선거를 서두른다는 비판에 KB금융은 M&A를 그 이유로 들었다. 빨리 조직을 추슬러 내년에 본격화될 M&A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강 행장은 화력을 뿜어낼 넉넉한 ‘실탄’도 갖고 있다. KB금융은 올 하반기 1조1천억원의 유상증자와 지주 출범 뒤 이익 2조2천억원가량을 합쳐 3조원이 넘는 자금을 쌓아놓고 있다. 여기에 자사주 4300만 주(11.2%)를 주당 6만3천원으로 계산하면 2조7천억원쯤 된다. 이를 합하면 총 6조원가량의 자금 여력이 있다.
광고
강 행장이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데 성공하면, KB금융은 1등 자리를 공고히 할 수 있다. KB금융 순이익의 90%는 소매금융에서 나온다. 소매금융 중심으로 커온 국민은행의 취약 부분인 해외 및 외환 부문을 끌어들여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외환은행 노조의 반발이 거세다. 외환은행 노조는 “KB금융에 인수되면 외환은행의 조직과 정체성이 파괴된다”고 주장한다.
김승유 하나 회장의 막판 뒤집기 꿈김승유 하나금융 회장은 막판 뒤집기를 꿈꾼다. 하나금융이 금융권 ‘빅3’ 경쟁에서 탈락 위기에 놓인 현재 상황을 돌파하려면 M&A에 적극 나서지 않을 수 없다. 김 회장은 11월20일 경기 양평에서 열린 출입 기자단과의 세미나에서 “M&A와 관련한 모든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는 것이며 거기에는 외환은행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하나은행은 자산 규모 112조원대의 외환은행을 인수하면 272조원으로 자산이 성장해 2~3위권과 격차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실패할 경우 하나은행이 오히려 매물로 전락할 수 있다.
광고
일각에선 하나은행이 외환은행보다 우리금융에 더 관심이 있다고 본다. 우리금융을 인수 또는 합병하면 1위로 올라설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은행의 우리은행 인수설에는 정치적 시각이 개입돼 있다. 김 회장과 이명박 대통령은 고려대 경영학과 61학번으로 동기다. 김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설립한 청계재단 이사진 중 한 명이다. 정부 정책금융 성격이 짙은 소액대출 재단인 미소금융재단 이사장도 김 회장이다. 이런 상황에선 하나금융이 M&A에서 정치적 특혜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커진다.
문제는 역시 ‘돈’이다. 하나금융은 지난 10월 증자를 추진했다. 당시 금융가에선 M&A를 겨냥한 ‘실탄 모으기’로 해석했다. 하지만 증자설이 나오자 하나은행은 주가가 폭락했고, 하나금융은 증자를 포기했다.
M&A를 앞둔 금융권 회장들의 기싸움도 치열하다.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은 지난 10월 하나금융의 우리금융 M&A 설에 “근거 없는 루머”라며 하나금융을 정면 공격했다. 당시 이 회장은 임직원에게 보낸 전자우편에서 “최근 우리금융을 포함해 M&A에 대한 여러 루머가 기사화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문제의 본질이 왜곡되고 그룹의 기업 가치를 훼손시킬 수 있는 근거 없는 말이 회자하고 있다”며 발끈했다. 우리금융 쪽 인사는 “자산 규모에서 100조 이상 뒤지는 하나금융이 우리금융을 M&A 하겠다는 데 대해 이 회장이 언짢아했다”고 전했다. 우리금융 쪽은 이같은 소문을 하나금융 쪽에서 의도적으로 흘리고 있는 것으로 본다.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이 발끈한 이유민영화 결정권자는 정부지만 최고경영자인 이팔성 회장의 선택도 중요한 변수다. 마당발인 이 회장의 행보에 따라 우리금융 민영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금융산업 재편이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더라도 우리금융은 중심적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강조해 M&A 시장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세 남자와 함께 몇 명의 조연도 등장할 전망이다. 라응찬 신한금융 회장은 M&A 전투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다. 라 회장의 강력한 카리스마는 쌍용증권, 조흥은행, LG카드 등 굵직한 M&A에서 비롯됐다. 전 정권에서 너무 잘나가다 보니, 현 정권에서 더는 M&A가 힘들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민유성 산은금융지주 회장도 일단 조연으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민 회장은 지난 11월20일 “외환은행을 포함해 국내 은행에 대한 M&A를 다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산은금융은 수신(예금) 영업을 강화하려면 지점이 있는 외환은행이 꼭 필요한 상황이지만 아직 민영화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내년 금융권에 불어닥칠 M&A는 단순히 몸집 키우기 차원이 아니다. M&A 승자는, 금융산업 재편 뒤 사실상 금융권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 M&A는 최고경영자의 경영 판단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치열한 한판 승부 뒤 승자는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패자는 무대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광고
한겨레21 인기기사
광고
한겨레 인기기사
한덕수 탄핵 기각…헌재 “재판관 불임명 위헌이나 신임 배반 단정 못해” [영상]
외신, 김건희에 “살해 욕구 드러내”…‘이재명 쏘고 자결’ 발언 조명
우원식 “한덕수, 마은혁 즉시 임명해야…법치주의 훼손 안 돼”
산불 끄다 숨진 32살 공무원…“책임감 강한 아들, 가슴만 터집니다”
한덕수, 마은혁 또 임명 안 하면 어떻게 될까…헌재 결정문 보니
한덕수 탄핵 기각, ‘계엄 위법성’ 판단 없었다…헌재 속사정은
[단독] 경호처, 국책연구원에 ‘윤석열 2주년 영상’ 제작비 떠넘겼나
울산 6㎞ 불줄기…오후엔 초속 15m 돌풍, 더딘 진화에 ‘기름’
“경사 났네!”…한덕수 탄핵 기각에 군가 맞춰 춤춘 윤석열 지지자들
[단독] 윤석열, 2차 계엄 언급 “의원부터 잡으라고…재선포하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