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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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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제 말곤 대책 없는 정부

안팎에서 흔들리는 일자리
땜질식 단기 정책으로 비정규직 늘어… 고용안정세 부과·청년고용 의무화 등 근본 대책 필요
등록 2009-11-19 14:06 수정 2020-05-03 04:25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는 지난해 정년퇴직과 명예퇴직으로 500명을 회사에서 내보냈다. 하지만 대한상공회의소 통계에선 지난해 34명만 줄어든 것으로 돼 있다. 이는 청년인턴 때문에 나타난 통계치 착시 현상이다. 비정규직 성격의 인턴이 일자리에 잡힌 것이다. 지난해 4월 한전은 450여 명의 청년인턴을 뽑았다. 이들은 지난해 9월 말까지 일한 뒤 떠나야 했다. 한전 쪽은 “정부의 공공부문 선진화 정책에 따라 2012년까지 2420명을 줄이기로 돼 있어 앞으로도 신규 채용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한 대형마트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근무를 하고 있다. 외식·금융 등 서비스 업체들이 일자리를 많이 늘리긴 했으나, 임금이 상대적으로 낮고 고용이 불안정한 계약직이나 시간제 노동자 등 비정규직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겨레 자료

한 대형마트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근무를 하고 있다. 외식·금융 등 서비스 업체들이 일자리를 많이 늘리긴 했으나, 임금이 상대적으로 낮고 고용이 불안정한 계약직이나 시간제 노동자 등 비정규직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겨레 자료

자산 규모 5조원 이상으로 매출 규모가 큰 공공기관 가운데 청년인턴 채용 기간이 끝난 뒤 이들을 정식 직원으로 임용하겠다는 기관은 한 곳도 없었다. 이곳에서 일한 인턴들은 다시 거리로 내몰려 직장을 찾아야 했다. 이용섭 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월 국회 국토해양위 국감에서 “경제위기시에 고용 창출에 앞장서야 할 공공기관이 오히려 실업난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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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직원 임용 안 되는 시한부 인턴

“나도 비정규직 노동자로 출발해 CEO가 된 터라 태생적으로 ‘노동자 프렌들리’다.” 2008년 3월 노동부 업무보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한 말이다. ‘노동자 프렌들리’한 이명박 정부가 치솟는 실업률을 잡고 경기 부양을 하겠다며 올해 내놨던 정책은 ‘청년인턴제’였다.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에 따라 집권 첫해부터 공공기관의 인원 감축을 강행하던 이명박 정부는 지난해 9월 글로벌 금융위기 사태가 터진 뒤 부랴부랴 공공기관에 사회 초년병들을 인턴으로 채용하도록 했다. 한시적이긴 해도 일자리를 줘 대량 실업을 막고 실무 경험도 쌓게 하자는 취지였다.

업종별 일자리 증감 현황(2008년)

업종별 일자리 증감 현황(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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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인턴은 공공기관 1만2천여 명, 중앙 및 지방 정부 1만7천여 명, 중소기업 3만7천여 명 등 6만6천여 명에 이른다. 하지만 이들의 일자리는 6개월∼1년짜리다.

일부 공공기관은 신규 채용 때 서류전형 면제, 가산점 부여 같은 인센티브를 고려 중인 곳도 있다. 하지만 당분간 채용 계획이 없어 사실상 인센티브가 유명무실하다. 지난 상반기 인턴사원을 6개월 정도 고용한 일부 은행들은 객장 안내, 서류 정리, 복사 등 사무보조 인력으로 활용했다. 일부 은행은 정부 눈치를 보면서, 인턴을 고용하는 대신 아르바이트나 계약직을 내보내는 편법을 쓰기도 했다.

인턴제는 청년실업의 근본 해결책이 아닌 임시방편이었다. 일자리 개선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올해 말까지 시행하려던 청년인턴제를 내년 6월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지난 10월15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그렇게 결정했다. 사업 종료 시점인 11월이면 졸업을 앞둔 청년층이 대거 취업시장으로 쏟아져나와 고용 대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당은 내년 6월로 예정된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정부 당국자들의 인식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정운찬 총리는 인사청문회 때 청년실업에 대해 “일자리가 없는 것이 아니다. 청년들이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며 이 대통령의 발언을 되풀이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10월 국정감사 자리에서 “양질의 일자리는 민간 기업의 몫”이라며 기업에 화살을 돌렸다. 이영희 전 노동부 장관은 지난 2월 국회 대정부질의 답변에서 “현재로선 청년실업에 대한 근본적 대책이 없다”며 “청년·행정인턴제 또한 단기적인 미봉책일 뿐”이라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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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예산을 정규직 전환에 쓴다면

청년인턴제와 같은 땜질식 아르바이트 정책은 이른바 ‘88만원 세대’라는 비정규직 고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CJ푸드빌은 지난 6년 동안 1만296개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이 회사는 뚜레쥬르, 빕스(VIPS), 씨푸드오션, 차이나팩토리 등 14개 패밀리 레스토랑 체인을 운영하고 있다. 매출액은 2002년 699억원에서 2008년 5천억원으로 급증했다. 주 5일제 도입으로 외식 수요가 증가하면서 기업도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일자리도 2002년 466개에서 2008년 1만762개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이 가운데 70~80%는 매장 직원 등 시간제 노동자다.

외식·금융 등 서비스 업체들이 일자리를 많이 늘리긴 했으나, 임금이 상대적으로 낮고 고용이 불안정한 계약직이나 시간제 노동자 등 비정규직이 많았다. 외환은행은 2007년 전체 비정규직 1500명 중 1천 명을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이후 자동 전환제도를 분명히 하지 않아 남은 비정규직들의 진로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하나은행의 비정규 직원들은 토·일요일과 법정 공휴일에 일해도 휴일급여를 받지 못한다. 하나은행에서 일하고 있거나 퇴직한 시급제 직원 1천여 명은 1인당 연 400만원가량의 휴일급여를 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 하나은행은 “비정규직 급여 사항은 단체협약 대상이 아니고 휴일급여가 없다는 것이 은행 규정과 고용계약서에 명문화돼 있다”고 밝혔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등 시민단체에선 4대강의 총예산 22조2천억원을 정규직 전환 비용으로 돌리자는 제안을 내놓고 있다.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경우 정규직 고용 촉진 장려금 등으로 지원하는 방식이다. 현재 노동계 추산 비정규직 노동자는 841만 명에 이른다. 전체 노동자 1535만 명의 절반가량이다. 4대강 예산을 정규직 전환 비용으로 돌리면 425만 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처우를 개선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남는 비정규직 규모는 416만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27.3%로 떨어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평균 비율인 27.1%와 엇비슷해진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기업에 고용안정세 또는 고용부담금을 부과해 기업들이 일자리를 만드는 일에 책임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특히 정규직 전환을 않거나 비정규직 고용을 남발할 경우 고용안정세 부과요율 누증제를 실시하는 방안도 있다”고 말했다.

4대강 같은 토목사업보다 서비스 분야에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 10월 한국은행의 취업유발계수(10억원어치를 생산할 때 직간접적으로 유발되는 취업자 수) 자료를 보면, 건설업(16.8명)이 제조업(9.2명)보다 높다. 하지만 건설업보다 서비스업(18.1명)이 더 높다. 그래서 서비스 부분, 특히 공공성이 강한 사회서비스 사업에 정부 투자를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에 당근과 채찍 전략 사용해야

다른 나라에선 정부가 기업에 ‘당근’과 ‘채찍’을 통해 일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2000년 벨기에 정부는 ‘로제타 플랜’이라는 장기적 청년고용 대책을 마련했다. 종업원 50명 이상인 기업은 전체 인원의 3%에 한해 청년 구직자에게 의무적으로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제도다. 위반하는 기업은 벌금을 부과받는다. 대신 이행하는 기업은 사회보장 부담금을 면제 받는다. 청년실업에 정부가 발 벗고 나선 경우다.

제도 시행 첫해 벨기에에는 약 5만 개의 일자리가 증가했다. 이는 행정인턴 1만5천 개를 청년고용 정책으로 내놓는 우리 정부보다 효율적인 성과다. 이 제도를 우리나라에 변형해서 종업원 100명 이상 기업에 5% 의무고용제를 도입할 경우 14만1533명의 청년실업자를 고용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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