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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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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제 엔진’ 단 현대·기아차, 정의선 싣고 점프

독과점 구조 속 노후차 교체 세금 지원 싹쓸이… 현대차 부회장 승진한 정의선씨 경영 전면에
등록 2009-09-03 14:53 수정 2020-05-03 04:25
이명박 대통령이 3월21일 오후 광주에 있는 기아자동차 공장을 방문해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의 안내로 전시자동차 및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명박 대통령이 3월21일 오후 광주에 있는 기아자동차 공장을 방문해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의 안내로 전시자동차 및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최근 현대·기아차는 몇 가지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면서 기업 안팎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첫째, 올 1∼7월 국내 자동차시장 점유율 81.7%(현대차 50.9%, 기아차 30.8%)로 현대·기아차 출범 이후 사상 최대치를 돌파했다. 둘째, 이런 실적을 바탕으로 현대차 주가는 역대 최고가(연초 4만원대에서 8월24일 현재 10만7500원)를 날마다 새로 쓰고 있다. 셋째, ‘역대 최고 시장점유율과 주가’를 배경으로 지난 8월21일 정몽구 회장의 외아들 정의선(39) 기아자동차 사장이 현대자동차 부회장으로 전격 승진했다. 사실상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미국 빅3의 몰락 등 요즘 전세계 자동차 업계가 한창 고전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현대·기아차의 승승장구는 더욱 놀랍다. 그 비결은 뭘까? 물론 현대·기아차의 품질경쟁력 향상이 시장경쟁의 이점으로 근본에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시행되고 있는, 정부의 자동차 소비 관련 세제 혜택도 빼놓을 수 없다.

5월부터 판매량 증가세 돌아서

세제 혜택은 두 가지다. 우선 지난 5월1일부터 실시되고 있는 노후차 교체 세제지원이다. 1999년 12월31일 이전에 신규등록한 차량을 새 차로 교체할 경우 오는 12월31일까지 취득·등록세를 70%(250만원 한도) 감면해주고 있다. 둘째, 지난 6월 말에 종료된 개별소비세(옛 특별소비세) 탄력세율 적용이다. 2천㏄이하 차량에 붙는 개별소비세를 5%에서 3.5%로, 2천㏄ 초과 차량은 10%에서 7%로 30% 감면해주는 제도다. 이 두 가지 세제지원의 효과는 가히 폭발적이다.

올 1∼4월 국내 자동차 판매량은 35만1천 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14.9% 감소했다. 그러나 노후차 세제 혜택이 도입된 5월부터 갑자기 증가세로 돌아서 5월에는 전년 동월 대비 15.2%, 6월 45.0%, 7월 10.8% 늘었다. 자동차공업협회는 전체 내수 판매량 중 노후차 세금 감면 혜택을 받은 신차의 판매 비중을 5월 51.5%, 6월 36.4%, 7월 28.0%로 집계했다.

그러나 사실상 세제지원 혜택은 현대·기아차가 싹쓸이하고 있다. 현대차의 6월 판매량은 1년 전에 견줘 54.6%, 7월 판매량은 15.4% 증가했다. 기아차 판매량은 노후차량 세제지원 혜택에다 쏘렌토R 등 신차 효과에 힘입어 6월에 1년 전에 비해 78.6% 급증한 데 이어 7월에는 26.5% 증가했다. 반면 지엠대우는 개별소비세 인하 혜택이 끝나면서 내수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32.6% 감소했다. 쌍용차는 정부의 세제지원에도 불구하고 법정관리 신청과 파업으로 7월 판매량이 89.6%나 감소했다. 김주홍 한국자동차공업협회 차장은 “이번 세제 혜택 아래서 자동차 수요가 현대·기아차로 대거 이동하고 있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모델별로 보면, 이번 세금 감면 수혜를 현대·기아차가 독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확연히 드러난다. 1∼7월에 가장 많이 팔린 모델은 쏘나타, 아반떼, 뉴모닝, 그랜저 순이다. 1∼7월 내수 판매 랭킹 10위를 보면 현대차가 5개 모델(쏘나타·아반떼HD·그랜저TG·싼타페CM·제네시스), 기아차가 3개 모델(뉴모닝·포르테·로체 이노베이션)을 휩쓸었다.

개별소비세 인하 조처는 역대 정부에서도 몇 차례 실시한 바 있다. 그러나 노후차량을 폐기하고 신차를 구입할 때 세금을 감면해주는 ‘폐차 인센티브’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정책은 누가, 어떻게 입안한 것일까? 공정거래위원회 시장구조개선과 관계자는 “자동차 산업에 대한 보조금 지원 등이 실시될 때 기획재정부 등 관련 부처로부터 별다른 협의는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번 자동차 산업에 대한 세제지원 정책이 독과점적 시장구조를 더욱 심화시킬 것인지 혹은 개선시킬 것인지에 대한 사전 분석 없이 수립·실시됐다는 얘기다.

그룹 부설연구소에서 도입 촉구

2009년 1~7월 업체별 자동차 내수판매 현황

2009년 1~7월 업체별 자동차 내수판매 현황

사실 폐차 인센티브 정책은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를 중심으로 자동차 업계가 끊임없이 도입을 촉구했고, 기획재정부가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는 현대·기아차그룹 부설 연구소다. 김주홍 한국자동차공업협회 차장은 “신차 구입에 대한 세제 혜택은 우리가 적극적인 자동차 산업 지원정책의 하나로 정부에 늘 건의해온 것이다. 정부가 독자적으로 입안한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자동차 산업의 전후방 연관 효과가 크기 때문에 자동차 소비 증가를 통해 경제를 활성화하려는 목적에서 폐차 인센티브를 도입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이번 자동차 산업의 세제지원이 국민경제 전체에 대한 파급효과는 얼마나 될까? 강창구 한국은행 국민소득팀 과장은 “노후차량 세제지원 정책 효과 등으로 자동차 산업의 소비 증가가 2분기 경제성장률을 전년 동기 대비 0.85%포인트 끌어올린 것으로 추계된다”고 말했다. 물론 광범위한 산업기반을 전제로 하는 자동차 산업은 부품 생산·유통(할부금융 등)·정비·주유·보험 등에 걸쳐 전후방 산업 연관 효과가 크다.

그러나 자동차 시장 구조와 현대·기아차그룹의 사업구조를 따져보면, 사실상 세금 감면 혜택은 시장지배적 독과점 사업자인 현대·기아차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 현대·기아차그룹은 국내에 41개 계열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현대모비스 등 자동차 부품 제조업이 12개사, 현대제철을 비롯한 철강제조업 4개사, 현대카드 등 금융업 4개사, 글로비스 등 물류업 1개사, 오토에버시스템즈 등 자동차 관련 정보기술(IT) 및 핵심기술 개발 업체 4개사 등이 자동차 생산·판매에 수직으로 계열화돼 있다. 즉, 정부가 말하는 전후방 연관 산업들이 현대·기아차그룹 산하에 완벽하게 포진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현대·기아차그룹이라는 특정 기업이 자동차 산업에 대한 정부의 세제지원 혜택을 쓸어 담아가는 형국으로 귀결되고 있다. 김원규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그동안 자동차 등 국내 제조업이 자체 성장을 통해 경제 성장에 기여한 건 사실이지만, 다른 부문으로의 파급효과가 미흡해서 경제 전체 차원의 시너지 효과 창출은 크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에서 미국과 유럽은 국내 자동차 업체가 파산 위기에 처했을 때 공적자금을 투입하거나 세제지원 정책을 동원한 반면, 우리는 자동차 산업의 유동성 위기가 부상하기 이전에 서둘러 세제 혜택 정책을 실시했다. 과연 이명박 정부가 경기 부양의 선봉으로 현대·기아차를 지목하고 밀어주기에 나선 것일까? 곽용선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연구위원은 “신차 구입에 세금 감면을 해주고 있지만, 거꾸로 자동차 소비·취득 증가로 유류세와 교육세 등이 늘어나 오히려 세수가 증가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결국 폐차 인센티브 정책은 세수 부족을 걱정하지 않고 현대·기아차 소비도 늘릴 수 있는 정부의 묘안으로 기획됐을 가능성도 있다.

세수도 벌충하고 소비도 늘리는 묘안?

세제지원 혜택에 힘입은 현대·기아차의 실적 급증은 정의선 기아차 사장의 전격적인 현대차 부회장 승진으로 이어졌다. 현대·기아차는 기아차의 놀라운 수준의 실적 개선을 앞세워 “정 부회장의 경영 능력이 시장에서 검증됐다”고 설명했다. 기아차는 올 상반기에 매출 8조1788억원, 영업이익 4192억원(91.5% 증가)을 기록했다. 시장의 기대를 훨씬 뛰어넘은 ‘어닝 서프라이즈’다. 정부의 세제지원 혜택에 힘입어 기아차의 상반기 내수 판매량(20만 대)이 전년 대비 24.6% 증가했기 때문이다. 특히 기아차는 폐차 인센티브와 개별소비세 세제지원이 함께 실시된 2분기에 무려 3400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한때 증권가에 유동성 위기설까지 불거졌던 기아차가 이처럼 올 들어 큰 폭의 이익을 내면서 정의선 전 사장의 경영 능력에 대한 평가도 급반전됐다. 이명박 정부의 자동차 소비 세제지원 정책을 발판으로 올해 39살인 정의선씨가 드디어 그룹 경영의 전면에 나설 수 있게 된 것일까?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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