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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 권하는 정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밀어붙여… 여당 일부 의원들도 갸우뚱
등록 2009-03-26 14:50 수정 2020-05-03 04:25

정부가 지난 3월16일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세를 폐지하는 법안을 4월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힌 뒤 정치권에서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그 파급 효과에 대한 설왕설래가 분분하다.
야당은 물론 종합부동산세 무력화에 이은 또 하나의 ‘부자 감세’라며 반대하고 있지만, 정작 눈길을 끄는 것은 한나라당 안에서의 논란이다. 홍준표 원내대표를 비롯한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이 “경제도 어려운데 다주택자한테까지 감세 혜택을 주는 게 타당하냐”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3월18일 오전 서울 동숭동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서 열린 ‘이명박 정부 부동산 정책 수혜자 분석’ 기자회견에서 윤순철 경실련 시민감시국장이 분석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연합 김주성

3월18일 오전 서울 동숭동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서 열린 ‘이명박 정부 부동산 정책 수혜자 분석’ 기자회견에서 윤순철 경실련 시민감시국장이 분석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연합 김주성

그러나 정부는 한나라당 안의 논란에 별로 개의치 않는 눈치다. 윤영선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기본적으로 여당과 사전에 충분히 협의가 이뤄진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경제가 어려워 부동산 시장이 위축된 상태라 부동산 시장 활성화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그동안 왜곡된 세제를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적어도 여권 내부의 논란으로 법 개정이 무산될 걱정은 하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배어 있는 발언이었다.

“소급 적용” 공언… 국회 통과 자신감

정부의 이런 확고한 법 개정 의지는 사실 개정안 발표 때 분명하게 드러났다. 정부는 4월 임시국회 통과를 목표로 양도세 중과세 폐지안을 내놓으면서 시행 시기는 개정안이 공표된 날인 3월16일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법 개정이 차질 없이 이뤄진다는 전제를 깔고 그날 양도분부터 소급해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를 믿고 당장 집을 처분하거나 구입해도 무방하다고 자신 있게 선언한 셈이다.

정부가 내놓은 세제 개선안은 2주택 또는 3주택 이상 소유자에 대한 50~60%의 중과세를 폐지하고 기본세율(6~35%)을 적용하도록 한 게 핵심이다. 애초 지난해 세제 개편을 통해 올해부터 내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2주택자는 기본세율, 3주택 이상 소유자는 45%의 세율을 적용하기로 했던 것을 아예 일괄적으로 기본세율로 내리겠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특히 3주택 이상 소유자의 감세 효과가 커지게 된다. 1가구 1주택자와 배우자끼리 각각 주택을 갖고 있는 1가구 2주택자 위주로 세금을 내렸던 종부세 감세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부자 감세’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부자 감세’ 논란에 아랑곳하지 않고 부동산 시장은 이미 양도세 중과 폐지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시장에서는 찬반 논란보다 어떤 파급 효과가 나타날 것인지가 화두다. 과연 정부가 의도한 대로 시중 유동자금의 투자를 주택 시장으로 유인해 거래가 늘어날 것인지, 또 부동산 시장 전반과 집값에는 어떤 영향을 몰고 올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전문가들이 일단 주목하는 것은 다주택 보유자들이 시장에 매물을 내놓을 것인지 여부다. 그동안 양도세 부담으로 인해 주택 처분을 미뤄왔던 다주택자로선 쉽게 매각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부사장은 “다주택자들이 양도세 족쇄에서 벗어나 적지 않은 매물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되며, 이로 인해 집값 하락 압력이 생길 수 있다”고 진단했다.

반대로 종부세에 이어 양도세까지 줄어듦에 따라 주택을 매수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고소득 자산 계층은 자산 포트폴리오 구성에서 한동안 쳐다보지 않던 주택을 투자용 자산에 새로 편입시킬 만한 유혹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박상언 유앤알컨설팅 대표는 “지금까지는 ‘똑똑한 집 한 채’ 보유가 유행이었지만 앞으로는 투자 패턴이 바뀔 전망”이라면서 “서울 외곽 지역이나 수도권, 지방 대도시 등에서 상대적으로 값싼 주택에 전세를 끼고 투자하려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양도세 중과세 폐지로 정부가 의도하는 효과는 명확하다. 정부 당국자들은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금과 같은 경기 침체 상황에서는 투기를 용인해서라도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해왔다. 양도세 중과 폐지는 주택 투기로 많은 소득이 발생하더라도 세금을 덜 물릴 테니 좀더 적극적으로 투기에 나서라는 적극적인 독려로 볼 수 있다.

경기 침체를 극복하려면 부동산 투기를 일부 용인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은 그 자체로 논란거리다. 10년 전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김대중 정부 역시 투기를 유도했다는 평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양도세 중과세 폐지가 ‘왜곡된 세제를 바로잡는 정상화’라는 정부의 주장만큼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세제 정상화하려면 임대소득세 개혁부터”

우리나라의 양도세율은 세계적으로도 높은 편이며, 특히 보유 주택 수를 따져 2주택 이상부터 중과세하는 것은 선진국에서 볼 수 없는 제도인 게 사실이다. 그러나 양도세가 이처럼 무거워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동안 재산세 실효세율이 현저히 낮았던 게 첫 번째 요인이다. 또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전세제도로 인해 주택 임대소득세를 현실화하지 못한 탓도 크다. 이러다 보니 주택을 처분하거나 상속하는 마지막 단계에서 상대적으로 무거운 양도세나 상속세(증여세 포함)를 통해 조세정의 원칙을 보완하려 했던 것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기획재정부가 양도세 중과를 노무현 정부의 ‘세금 대못’으로 낙인찍는 것은, 그야말로 정권에 따라 말을 바꾸는 ‘영혼 없는 공무원’의 행태를 떠올리게 한다.

부동산 세제 정상화를 위해서는 양도세 중과 폐지보다 임대소득세 개혁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그런 배경에서다. 김수현 세종대 교수(도시부동산대학원)는 “양도세 중과세를 폐지하고 선진국처럼 다주택 보유를 용인하는 것도 검토해볼 수는 있다. 그러나 그에 앞서 거주 이외의 임대용 주택에는 소득세를 부과하도록 세제를 정비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현행법상 주택 임대소득세 부과 체계는 느슨하기 그지없다. 1가구 2주택 이상 또는 9억원 초과 1주택 소유자의 월세 수입만 임대소득세 부과 대상으로 삼고, 전세를 준 집에 대해서는 주택 수가 아무리 많아도 임대소득세를 전혀 부과하지 않고 있다.

최종훈 기자 한겨레 재정금융팀 cjh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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