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발연구원(KDI) 홈페이지 핫이슈 코너에는 기획재정부의 올해 경제 운용 방향과 한국은행의 경제 전망이 걸려 있다. 그런데 정작 국책 연구기관인 자신들의 경제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몇 번 클릭하면 있긴 한데, 지난해 하반기 경제 전망이다. 해묵은 달력을 보는 느낌이다. 왜 그럴까?
KDI는 지난 12월24일 2009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수정해 발표하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원장의 지시로 발표를 이달 중순으로 연기했다. 수정 전망치는 1%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지난 12월 3%대의 성장률 전망을 내놨다. 그래서 눈치보기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한국은행도 지난달 경제 전망 발표일을 돌연 연기한 뒤 기준금리를 3%로 크게 낮춘 다음날에야 2% 성장 예측을 내놨다. 전망 기간도 처음으로 2년치로 늘려 2010년엔 4% 성장할 것이라고 엄호사격(?)했다. 중앙은행이 이 정도면 민간 연구기관의 고민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해 11월 일찌감치 올 경제 전망을 발표한 뒤 손을 놓고 있다. 3.2% 성장은 지금 보면 낯뜨거운 수치인데도 수정을 하지 않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이 지난해 10월에 공표했던 성장률 3.6%를 지난 연말에 부랴부랴 1.8%로 반토막 낸 것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LG경제연구원이 정부의 부양책이 없으면 마이너스 성장을 할 수도 있다고 ‘내지른’ 의도에 대해선 해석이 엇갈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경기 예측의 첨병이어야 할 증권사들의 리포트도 이상해졌다. 전망은 있는데 수치가 없다. 신영증권, 키움증권 등 5~6개 증권사를 제외하곤 50쪽이 넘는 방대한 보고서에 성장률, 경상수지, 실업률 등 주요한 경제지표가 빠진 것이다. 심지어 한 증권사는 미국과 중국은 물론 세계 경제 전반에 걸쳐 소상한 분석을 담아놓고도 정작 한국 경제 지표는 건너뛰는 웃지 못할 일도 발생했다.
이 동네에선 삼성증권이 튀었다. 국내 연구기관의 올 한국 경제 보고서에서 전무후무한 마이너스 성장을 내놓았다. 특히 정부가 가장 민감해하는 환율에 대해 충격적인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 연평균 1475원을 제시했다. 기획재정부는 아예 환율 전망치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삼성증권은 한발 더 나가 외국계의 한국 금융자산 매각과 대출 회수로 인해 원-달러 환율이 1600원대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네르바도 입을 벌릴 수치다. 반면 삼성경제연구소는 가장 낙관적인 1040원을 전망했다. 환율의 향방을 놓고 삼성 가문끼리 명운을 건 한판 싸움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외국 기관의 한국 경제 전망은 수시로 바뀐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08년 11월 들어 한 달 만에 성장률 전망치를 3.5%에서 2%로 내렸다. IMF는 이달 다시 하향 조정할 계획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성장률을 무려 2.3%나 깎아내렸다. 골드만삭스 등 외국계 7개 투자은행의 한국 성장률 전망치 평균은 1.2%로 낮아졌다. 스위스계인 UBS증권은 -3%로 전망해 강만수 장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연구기관들의 전망을 종합하면, 올 국내 경기의 흐름은 ‘상저하고’(상반기는 낮고 하반기는 높게)로 나온다. 하반기에 경기 회복이 될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비교 대상이 되는 지난해 경기가 반대로 ‘상고하저’였던 탓에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기저효과’로 봐야 한다. 한국은행 전망치를 예로 들면 전년 동기 대비 2009년 상·하반기의 성장률은 0.6%와 3.3%이지만, 직전 반기 대비로 바꾸면 각각 0.9%와 1.3%로 근접해진다. 통계의 마술인 셈이다.
취업자 수 증가는 2003년 카드 사태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됐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취업자 수 15만 명(추정치)보다 적은 10만 명 이상이 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한국은행은 4만 명 안팎에 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업률은 3% 중·후반으로 나왔지만 고용대란과 구직 포기 등으로 체감 실업률은 훨씬 높아질 것이다. 반면 경상수지는 수출증가율이 큰 폭으로 줄지만 수입이 이보다 더 줄어 흑자 반전할 것으로 보고 있다. 환율은 점진적으로 내려가 연평균 1200원대 안팎에서 움직일 것으로 예측됐다. 국제유가는 배럴당 60~70달러로 안정되고 물가 상승률도 3%대로 하향될 것으로 점쳤다. 하지만 집값 하락에 따른 금융권 부실이 신용위기를 불러 환율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반론이 제기됐다. 또 유가 하락 속도가 과거 어느 때보다 빨라 심각한 디플레이션을 예고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한광덕 기자 k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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