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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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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가 무너뜨린 1가구 1주택주의

다주택 보유자 보호론으로 왜곡… 가난한 지자체 곳간에도 찬바람
등록 2008-11-21 13:20 수정 2020-05-03 04:25
김남근 변호사·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장. 한겨레 박종식 기자

김남근 변호사·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장. 한겨레 박종식 기자

투기 목적의 다주택 보유를 억제하고 실거주 목적의 주택 보유를 권장하는 부동산 정책을 펴나간다는 1가구 1주택주의 원칙은 우리 사회가 지향해온 공동의 선이다. △주택공급 정책에서 무주택 세대주에게 신규분양 주택의 청약우선권을 주는 제도(청약가산점제)와 무주택 세대주가 생애 최초로 구입하는 국민주택 규모(공급 면적 33평) 분양주택에 대한 분양가상한제 △금융정책에서 다주택 보유자에게 대출 자격을 규제하는 제도 △조세정책에서 1세대 다주택 보유자에게는 투기과열지구 및 투기지역에서 양도소득세를 중과세하고 1가구(세대) 1주택 보유자의 주택 매매의 경우 양도소득세를 비과세(6억원 이하 부분)하는 제도 등이 이러한 1가구 1주택주의가 반영된 예다. 종합부동산세를 누진과세할 때 과세 대상을 세대별로 합산하는 것도 1가구 1주택주의의 한 예였다.

계속되는 부동산 투기와 집값 상승으로 서민들이 내 집 하나 마련하는 데 10~20년의 인생을 허비해야 하는 우리 현실에서 누구도 감히 1가구 1주택주의의 사회적 합의를 깨뜨리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분양권 전매, 다주택 보유자에 대한 대출규제 완화 등 투기자금을 동원한 부동산 경기 활성화 정책에 매진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도 1가구 1주택주의를 건드리는 분양가상한제 폐지, 다주택 보유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 폐지 등은 말만 꺼내놓은 뒤 여론의 눈치를 보고 있을 정도다.

우리 사회가 지향해온 공동의 선

그런데 헌법재판소가 종합부동산세의 ‘세대별 합산 과세’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1가구 1주택주의 정신은 근본적으로 흔들리게 됐다.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등에서 세대를 기준으로 누진과세나 비과세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부동산 세제의 가장 중요한 정책적 기능이 투기 목적의 다주택 보유를 억제하고 실거주 목적의 주택 보유를 유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택에 개인별로 거주하는 게 아니라 가족(세대)별로 거주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다. 헌법재판소도 토지초과이득세 등 부동산 세제에 관한 결정에서 헌법 제122조의 토지공개념 근거규정 등을 들어 부동산 세제의 경우 재정 충당이라는 조세 본래의 기능 이외에 현대 조세제도에서 정책유도적 기능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며 투기 억제를 목적으로 한 부동산 세제에 대해 줄곧 정당성을 인정해온 바 있었다.

그러나 왠지 이번 헌재의 종합부동산세 ‘세대별 합산 과세’ 판단에서는 헌법 제122조 토지공개념의 근거가 쑥 들어가버린 느낌이다. 헌재는 ‘세대별 합산 과세’의 입법 목적을 투기적 다주택 보유를 억제하고 실거주 목적의 보유를 권장한다는 정책유도적 측면에서는 전혀 고찰하지 않고, 조세회피 방지의 수단으로만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조세회피 방지만이 목적이라면 헌재의 논거대로 부동산실명제나 철저한 세무조사, 증여세 부과 등 다른 수단이 있는 만큼 굳이 세대별 합산 과세를 고집할 이유도 없다.

헌법재판소가 종부세에 대해 일부 위헌 결정을 내린 11월13일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헌재 결정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헌법재판소가 종부세에 대해 일부 위헌 결정을 내린 11월13일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헌재 결정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토지 공개념 근거 쑥 들어가

헌재의 논리대로라면 양도소득세도 무사하기 어렵다. 양도소득세는 이미 수십 년간 비과세 기준을 사람별로 판단하지 않고 세대별로 합산해 정했다. 즉 1가구 1주택일 경우만 비과세하는 정책을 지속해오고 있는데, 헌재의 논리대로라면 양도소득세에 대해서도 ‘왜 부부가 한 채씩 주택을 갖고 있다고 하여 비과세 대상에서 제외하고 오히려 투기지역에서는 중과세까지 하느냐’는 위헌 시비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1가구 1주택 보유를 지향해온 부동산 세제정책 전반이 흔들리는 상황이 올까 우려된다.

헌재는 한편 ‘세금폭탄’이라는 비난에 대해 “종합부동산세가 일부 수익세의 성격이 있다”거나 “원본인 부동산 가액의 일부가 잠식된다 하더라도 그러한 사유만으로 재산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종합부동산세의 골간을 이루는 입법 목적이나 과세체계 전반에 대해서는 합헌 결정을 한 것이다. 따라서 종합부동산세는 부동산 부자들에 대한 ‘징벌적 세제’ ‘세금폭탄’이란 주장을 근거로 과세 기준을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상향하고 누진세율을 절반으로 줄이는 정부의 종부세 개정안은 철회되어야 한다.

이미 세대별 합산이 인별 합산으로 바뀌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감세 효과가 있다. 종부세 개정 논의는 애초에 1가구 1주택 장기·노령 보유자에 대해 징세 유예, 일부 감면 등의 내용을 보완하자는 것이었지, 정부 개정안처럼 투기 목적의 다주택자에 대해서까지 대폭적인 감면을 추진하자는 것은 전혀 아니었다. 종부세 보완론이 전면적인 다주택 보유자 보호론으로까지 왜곡된 것은 다분히 이명박 정부의 열성 지지자들에게 보은이 있어야 한다는 정치적 배경이 있는 게 아닌가 의심되는 점이다.

종부세 폐지는 단순히 부동산 부자 1~2%에게 감세 혜택을 준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부동산 교부세로 지방 재정의 20~30%, 많게는 50%까지 충당하고 있는 시·군·구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근간을 흔드는 것이고, 부산 북구, 광주 북구, 대전 동구, 서울 노원구·은평구 등 가난한 지자체의 서민들, 복지 수혜자들의 복지 혜택 축소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세계 헌법재판사 초유의 사태

혹자는 주택 보급률이 100%를 넘는 시대에 아직도 1가구 1주택주의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헌재 결정 중 “정당한 증여 의사에 따라 가족 간 소유권을 이전하는 것도 국민의 권리이다”라는 문구에서도 언뜻 그러한 반문이 읽힌다. 물론 한 세대가 여러 주택을 보유하는 것도 국민의 권리다. 하지만 토지는 유한하고 주택을 무한히 공급할 수 없는 좁은 국토, 특히 수도권에서 한 세대가 다주택을 보유하는 것은 다른 세대가 주택을 보유할 기회를 축소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또한 자명하다. 투기 목적의 다주택 보유에 대해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다주택 보유자의 권리를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건 아닐 것이다.

헌법재판에서 정부 스스로가 자신이 운영해온 법제도가 위헌이라고 자백하는 의견을 제출한 것은 우리 헌법재판 역사에도 없고 세계 헌법재판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초유의 사태다. 더구나 정부가 헌법재판연구관을 직접 찾아가 헌재의 결정 방향을 미리 알아내고자 했다는 의혹은 철저히 진상조사가 이뤄져야겠지만, 만일 사실이라면 종합부동산세를 무력화하는 정부 개정안이 국민적 반대 여론에 부딪혀 국회 통과가 난망하자 헌법재판을 정부안 밀어붙이기의 계기로 활용하려 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임 정권이 추진한 법제도를 무력화하기 위해 후임 정권이 위헌 의견을 내는 등 헌법재판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면, 헌법재판은 헌법의 정신과 헌법 규정에 의해 법리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국민적 불신에 휩싸여 민주주의 근간마저 위태롭게 될 것이다.

김남근 변호사·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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