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5일 저녁 9시. 밀린 일감 때문에 야근을 마친 이희정(37)씨가 집으로 돌아간다. 서울 장충동 장충단성결교회 옆 골목을 빠져나온 뒤에는 지하철과 버스를 세 차례 갈아탄다.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계단은 성큼 오르고 횡단보도는 쏜살같이 건넌다. 신호등이 빨간불일 땐 잠깐 주변 행인들의 옷차림을 살핀다. “저런 패턴은 못 보던 건데”라거나 “라인이 참 예쁘게 나왔다”고 혼자 중얼거린다. 이것도 직업병이란다. 집까지 1시간30분씩 걸린다는데도 표정은 환하다. 경기 광명시 인근에도 의류·봉제 업체가 무수히 많은데, 왜 이씨는 장거리 출퇴근을 선택하게 됐을까. 일단 한 라디오 프로그램이 용의선상에 오른다.
“전 직장에선 오리털 점퍼를 만들었어요. 무겁고 힘들었죠. 먼지가 많아 감기도 잘 안 떨어지고. 20년을 일해도 패션 쪽 기술은 제값을 인정받지 못하는구나 화도 나고. 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데도 돌파구는 없었죠. 그런데 어느 날 라디오에서 전순옥 박사와 ‘수다공방’ 이야기를 들은 거예요. 그때부터 낮에는 김밥집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숙련반에서 교육받는 생활이 시작됐지요. 학창 시절로 되돌아간 듯 기뻤고, 패턴부터 시작해 옷 만드는 전 공정을 이해하게 되니 내 일에 대한 애정도 커지더군요. 교육을 마치고 나선 자연스럽게 ‘참 신나는 일터’에 합류하게 됐고요.”
이씨가 다니는 ‘참 신나는 옷’은 지난 10월7일 개업식을 했다. 참여성노동복지터가 운영하는 패션·봉제 기술학교 ‘수다공방’ 졸업생들이 일하는 공간이다. 지난해 말 수다공방 패션쇼를 하고 남은 후원금 5천만원을 자본금 삼고, 한국씨티은행과 한국노총에서 1억1천만원을 지원받아 아담한 3층짜리 공장과 사무실을 마련했다. 전원 정규직인 미싱사의 월급은 180만~250만원 수준이고, 하루 8시간 노동시간과 주5일제를 지킨다. 이익의 절반은 사회에 환원하고 나머지는 주주와 회사 구성원들에게 골고루 돌아간다. 경영자와 노동자가 기업을 공유하고 협력하며 상생하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대부분 하루 13~14시간을 쉬지 않고 일하는 서울 동대문 일대 봉제 노동자들이 저임금에 시달리고 4대 보험에도 가입돼 있지 않은 현실과 견줘보면 철저한 파격이자 도전인 셈이다.
11월6일 아침 9시. 생산부끼리 모인 조회에서 전날 작업에 대한 평가와 당일 업무를 공유하고 난 뒤 함께 ‘파이팅’을 한번 외친다. 그때부터 생산실에서는 10여 대의 미싱이 분주하게 돌아간다. 신현섭(47) 생산부장은 2층과 3층을 오르내리며 원부자재를 챙기고 완제품을 검사하고 재단팀의 일손도 돕는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에서 주문한 단체복 점퍼 1천여 벌을 11월 중에 납품하려면 눈코 뜰 새가 없다. 교보생명 다솜이 사회봉사단의 조끼 300벌과 신생 저가항공사 이스타항공의 승무원 제복도 수주했다. 패션·정보기술(IT) 등 다양한 업종 출신들이 뭉쳐 마케팅, 상품기획, 디자인 등을 수행하는 기획실부터 봉제·샘플·재단 등을 맡는 생산실까지 30명 남짓한 식구들이 지난 한 달 새 이뤄낸 성과다. 그들은 어떻게 알고 서로 모였을까.
‘참 신나는 옷’의 미싱사 가운데 이희정씨는 막내뻘이다. 16살 때 서울로 올라와 구로동 인근에서 봉제 일을 배우기 시작한 그이지만, 30~40년 언니들의 경력 앞에선 ‘번데기 앞 주름 잡기’다. 낮 12시 반. 점심시간이 돼서 한자리에 모이자 누구는 밑반찬 만들 시간이 없다고 푸념하고, 누구는 새로 요령을 익힌 폰뱅킹이 신기하고 편리하다고 너스레를 떤다. 하지만 생산실로 돌아오면 빈틈이 없다. 수다공방 1기 졸업생인 곽미순(48)씨는 최창성(46) 생산팀장과 점퍼 소매 부분의 안감 길이를 1cm 늘리는 문제를 놓고 10여 분을 토론하고, 요 며칠 피곤해 목소리가 잠겼다는 정선희(47)씨는 “완벽하다 생각해도 ‘미스’가 나는 법이니 꼼꼼히 따져보라”며 거든다. “아무리 회사 취지가 좋아도 소비자에게 외면받으면 끝장”이라는 게 이들 베테랑의 각오다.
혹독한 시기 ‘착한 소비’로 극복 다짐시장은 무섭다. 패션·봉제 산업 종사자들은 한결같이 “동대문시장이 무너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외환위기 직후 동아시아의 패션 메카로 발돋움하며 시장에 물건을 대주는 창신동·숭인동 일대 봉제공장들까지 대호황을 맞은 게 불과 10년 전이었다. 그러나 이후 넘쳐나는 중국산 의류들과의 가격경쟁에 치이면서 품질이 떨어지고 생산물량도 줄어드는 추세다. 신현섭 생산부장은 “최근 2~3년 동안은 봄철과 추석 전 반짝 경기를 빼곤 아예 일감이 사라졌다”면서 “나만 해도 여름과 겨울엔 무급 실업자 신세를 면하려고 막일도 하고 조개잡이도 나갔다”고 말했다.
‘참 신나는 옷’은 혹독한 시장 상황을 극복해나갈 실마리를 ‘착한 소비’ 또는 ‘사회책임 소비’에서 찾는다. 일단 기업과 노조들을 수요 타깃으로 삼은 단체복의 브랜드명부터 ‘스위트숍’(Sweet Shop)이라고 붙였다. 노동착취 공장이라는 뜻의 ‘스웨트숍’(Sweat Shop)을 비꼰 표현이다. 내년엔 아동복과 여성복 시장, 3~4년 뒤엔 교복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김방호 기획실장은 “아동복은 아토피 걱정이 없는 천연 소재라는 걸 적극적으로 내세우고, 여성복은 천연염색과 고급스런 디자인을 결합시킬 작정”이라며 “장기적으론 네팔·인도에서 공정무역으로 유기농 코튼도 들여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1969년 오빠의 일기 읽고 또 읽고공무원노조 조합원들이 받게 될 점퍼에는 전태일 열사의 사진이 새겨진 라벨이 붙어 있다. ‘참 신나는 옷’의 대표이사인 전순옥 박사는 “영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2001년 이후 줄곧 동대문을 바꾸려고 노력해왔지만 큰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느낌이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이제야 오빠(전태일 열사)가 쌓기 시작한 꿈에 돌멩이를 조금 더 올려놓은 것 같다”고 말한다.
“오빠가 1969년에 쓴 일기를 보면 모범 봉제공장을 구상해놓은 대목이 있어요. 157명의 직원과 자본금 3천만원, 미싱사 급여 월 3만원(당시 평균치의 3배), 노동시간 하루 8시간 이하, 직원들을 교육할 5명의 교사 등의 요소가 적혀 있죠. 이걸 보면 오빠가 ‘사회적 기업’의 토대와 모체를 만들어놓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때 오빠가 꿈꾸기 시작하면서 (꿈이) 50% 이뤄졌다면, 참 신나는 옷의 출범으로 65%쯤에 이르게 됐다고 봅니다.”
글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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