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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자 만만세

종부세 개편안, 고가주택일수록 세금 파격 감면… 서민 재산세는 늘어날 소지
등록 2008-10-03 16:37 수정 2020-05-03 04:25

이명박 정부의 공격적인 감세 정책이 종합부동산세를 사실상 폐지하는 것으로 큰 그림을 완성했다. 법인세와 소득세 인하에서도 나타났지만, ‘부자를 위한 감세’라는 특징은 이번 종부세법 개정안을 통해 더욱 또렷하게 얼굴을 드러냈다. 여론의 반발을 의식한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은 한때 재검토를 주장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원안대로 통과를 지시하자 당 지도부는 금세 꼬리를 내렸다. 법 개정안의 큰 틀이 바뀔 가능성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경. 정부의 종부세 개편안은 고가주택의 세금을 크게 낮춰 사실상 종부세를 폐지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경. 정부의 종부세 개편안은 고가주택의 세금을 크게 낮춰 사실상 종부세를 폐지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애초 9월19일에 발표하려다 나흘 늦춰 발표한 정부의 법 개정안은 예상을 크게 뛰어넘는 것이었다. 종부세 과세 대상 기준을 6억원 이상에서 9억원 이상으로 올리기로 한 것은 결과적으로 사소한 사안이 돼버렸다. 정부는 공시가격 15억원 이하에 대해서는 재산세 최고세율과 같은 0.5%의 세율을 적용하고, 공시가격이 그보다 비싼 집에 대해서도 최고세율을 3%에서 1%로 낮추기로 했다. 과표 구간 조정과 세율 인하로 종부세는 ‘현행 재산세법에다 세율 0.75%와 1%짜리 과표 구간을 신설한 재산세’로 사실상 모습을 바꾸게 됐다.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 임기 안에 종부세를 재산세와 통합함으로써 종부세라는 이름까지 없애겠다고 선언했다.

부동산에 매기는 세금인데 웬 소득 걱정?

참여정부는 부동산 거품을 막지 못하고 뒤늦게 세금을 올림으로써 집 없는 사람과 집 가진 사람 모두에게 등돌림을 당하긴 했지만,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하고 보유세를 강화한 것만큼은 업적으로 남기고 싶어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보유세 강화를 되돌리는 것은 헌법을 고치는 것만큼이나 어렵게 해놓았다”고 장담했다. 중앙정부가 종합부동산세로 거둔 돈을 지자체들에 교부세로 나눠주도록 한 것은 그럴듯한 장치였다. 종부세를 완화해 부동산 교부세가 갑자기 줄어들게 되면 지자체들이 거세게 반발할 테니 쉽게 법을 고치지 못하리라는 계산이었다. 실제로 정부의 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2008년 3조3천억원에 이르는 종부세 세수 가운데 3분의 2인 2조2천억원가량이 줄어든다. 지자체들은 벌써부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끄덕도 하지 않는다. 재정부는 “지자체도 함께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고 일찌감치 못을 박았다.

한나라당이 다수당의 지위를 차지한 18대 국회에 제출된 1호 법안이 종합부동산세를 무력화하는 종부세법 개정안(대표발의 이혜훈 한나라당 의원)이었음은 상징적이다. 서울 강남권에 지역구를 둔 한나라당 의원들은 7개 법 개정안을 경쟁하듯 냈다. 그러나 정부안은 한나라당 의원들의 요구를 훨씬 뛰어넘었다. 강만수 재정부 장관은 “시장경제나 순리에 맞지 않는 정책은 원칙적으로 새롭게 정비하려는 게 이 정부의 정책”이라며 “(종합부동산세 개편은) 새 정부의 가장 상징적인 정책”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종부세는 소득에 견줘 과도한 세부담을 지우기 때문에 세제로서 지속 불가능하다”고 종부세를 완화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소득에 견줘보면 우리나라의 보유세 부담이 외국보다 더 큰 게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보유세는 부동산 재산에 매기는 세금이지, 소득에 매기는 세금이 아니다. 자동차세를 매길 때 배기량이 큰 고급 승용차냐 경차냐를 따질 뿐 차량 소유자의 소득을 따져묻지 않는 것처럼, 보유세도 집값에 견줘 세금의 비율이 얼마인지를 따질 뿐 소득을 따질 일은 아니다. 종부세를 도입하고 재산세를 강화했음에도 2007년 기준 우리나라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0.3%로, 미국(1.5%)이나 영국·일본(1%)에 견줘 매우 낮다. 고가주택의 보유세 실효세율도 공시가격 10억원짜리가 0.52%, 15억원짜리가 0.75%로 그리 높지 않다.

정부 주장대로 보유세가 소득에 견줘 높아 보이는 것은 우리나라의 집값이 매우 비싸기 때문이다. 세금을 깎아 균형을 맞추지 않더라도, 과도하게 오른 집값이 정상화되면 세금은 저절로 내려가게 돼 있다. 집값이 비싼 원인이 외국에 견줘 매우 낮은 보유세 부담 때문에 여러 채의 집을 소유하는 사람이 많은 탓임을 감안하면, 보유세 강화를 원점으로 돌리는 것은 ‘땅이 소득 분배를 좌우하는’ 전근대성을 온존시키겠다는 뜻이다.

종부세 개편에 따른 보유세 감면 비율

종부세 개편에 따른 보유세 감면 비율

‘강부자 정권’임을 노골적으로 과시

정부는 보유세 부담을 줄이겠다고 해놓고 고가주택 소유자들의 세금 부담만 집중적으로 덜어줬다. 정부안에 따르면, 공시가격 10억원짜리 주택을 한 채 소유한 사람은 종부세가 350만원(과표 적용률 100%)에서 20만원(과표 적용률 80%)으로 94%, 공시가격 20억원짜리 주택 소유자는 1600만원에서 290만원으로 82% 줄어든다. 재산세와 종부세를 합친 전체 보유세의 감면 비율은 고가주택을 보유한 사람일수록 커진다. 공시가격 10억원짜리 주택의 보유세는 656만원(과표 적용률이 80%인 2007년 기준)에서 416만원으로 36.6% 줄고, 공시가격 15억원짜리 주택은 1413만원에서 798만원으로 43.5% 줄어든다. 고령자들은 10~30%의 세액공제까지 받는다. 여기에 헌법재판소가 세대별 보유 주택을 합산해 종부세를 부과하는 조항에 위헌 판결을 내릴 경우 종부세 제도는 사실상 공중분해된다.

종부세 제도의 해체는 다수 서민과 중산층도 내는 재산세 부담의 강화로 이어질 소지도 있다. 현재 재산세는 공시가격의 55%를 과세표준으로 삼고 해마다 5%포인트씩 과표 적용률을 올리도록 돼 있다. 종부세는 2007년 80%였던 과표적용률을 2008년 90%로 높이게 돼 있었으나, 정부는 종부세 과표를 80%로 묶기로 했다. 정부는 법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내년부터 재산세와 종부세의 과세표준 산정 방식을 통일하겠다고 밝혔다. 새 과세표준은 ‘공정시장가액’이란 이름으로 공시가격의 80%를 기준으로 하고, 시행령에 위 아래로 20%포인트까지 올리거나 낮출 수 있게 할 방침이다. 재정부 윤영선 세제실장은 “높이는 쪽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재산세의 과표적용률은 60~80%에서 결정된다. 공시가격의 60%를 과세표준으로 하더라도 종부세는 깎으면서 재산세는 올리는 꼴이 된다. 이런 지적이 일자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은 “재산세 과표가 올라가는 부분은 세율을 낮춰, 세금이 늘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정부의 재산세 개편 복안과는 거리가 있다.

정부는 “종부세를 재산세로 전환하고, 국제적인 재산 과세 원칙에 따라 단일 세율(Flat rate) 또는 낮은 누진세율 체계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넓은 세원, 낮은 세율’로 가겠다는 것이다. 주택가격이 비쌀수록 높은 세율이 적용되는 누진세제를 단일세율 체제로 바꾸거나 누진률을 낮추면, 고가주택에 대한 세금은 낮아지고 저가주택에 대한 세금은 늘어나게 된다. 앞으로 재산세제를 고칠 때도 ‘부자를 위한 감세’가 또 한 차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기획재정부의 한 공무원은 “정치권력이 특정 계급·계층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사실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정남구 기자 한겨레 재정금융팀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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