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블로팀의 강형원씨, 와우팀의 장호진씨 등 블리자드 본사에서 만난 한국인들
▣ 어바인(미국)=글·사진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블리자드 본사에서 한국 사람들이 잘나갑니다.”
스타크래프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WOW), 디아블로…. 한국 게이머들이 열광하는 게임을 만드는 회사에 한류가 흐른다는 소문에 지난 7월 말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에 있는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본사를 찾았다. 1994년 ‘블리자드’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이 회사는 최고의 판매 기록을 세우는 게임을 잇따라 출시한 소프트웨어 개발사다. 1300만 명이 등록한 세계 최대 규모의 온라인 서비스 ‘배틀넷’(Battle.net)에는 매일 수백만 명이 동시 접속한다.
블리자드 본사가 있는 어바인은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1시간쯤 떨어진 조용한 동네다. 지난 4월 이곳으로 이전한 본사는 2~3층 건물 3개로 이뤄져 있었다. ‘BLIZZARD’란 글자를 이고 있는 큰 정문을 통과하면 좌우와 정면으로 2500여 명의 직원들이 일하는 건물이 나타난다. 홍보실의 케시 디슨을 비롯해 3명의 직원이 나와 기자를 맞이했다. 그중 한 명은 한국계 직원으로, 회사를 둘러보는 내내 한국어로 안내를 했다. 회사 쪽은 “한국 게임 유저들이 우리에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만큼 최대한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말로 한국에 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한국에서 준비해도 입사 가능해”
왼쪽 건물의 1층에는 ‘블리자드 뮤지엄’이 있다. 일반인이 블리자드 본사에 들어오기란 쉽지 않으나 회사를 견학하게 될 때는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이다. 스타크래프트 모형이 들어 있는 한국 과자, 스타크래프트를 응용한 한국 영어 교재 등 한글로 된 전시물도 눈에 띄었다.
한국은 그동안 블리자드의 흥미로운 ‘시장’이었다. 게임이 출시될 때마다 반응이 가장 뜨겁고 솔직했다. 1998년 4월 국내에 출시된 스타크래프트는 국내에서 PC방의 확산, 인터넷 인프라 확충 등과 맞물리며 인기를 끌었다. 2008년 상반기까지 전세계에 판매된 950만 장 중 우리나라에 팔린 게 450만 장에 이른다. 한국e스포츠협회는 스타크래프트를 “국내 게임시장의 판도를 바꾼 게임”이라고 소개했다. 이런 열기는 한국을 ‘세계 최대의 e스포츠 시장’으로 만들었다. 협회에 등록된 스타크래프트 프로 게이머만도 255명이다. 한국에는 세계 최초로 전용면적 1117㎡평, 관람석 500석 규모의 e스포츠 상설경기장이 세워졌고 온게임넷, MBC게임 등 게임 전용 케이블 방송도 탄생했다. 매년 100여 개의 게임에 수십억원의 상금이 걸린다.
블리자드에서 만난 한국인들은 한국이 더 이상 ‘시장’에만 머물지 않음을 보여줬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2층으로 올라가니 “안녕하세요”, 또 익숙한 한국말이 들렸다. 회사 쪽이 ‘엄선’한 오늘의 인터뷰 대상자 강형원(38·영어 이름 제프 강)씨와 장호진(38·영어 이름 제이미 장)씨였다. “블리자드에 와서 한국말을 많이 들었다”고 하자 곧바로 “요즘 한국 직원들이 많아졌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강씨는 현재 디아블로 개발팀에 속해 캐릭터 개발, 그래픽디자인 등의 업무를 맡고 있는 시니어 아티스트다. 블리자드의 액션 롤플레잉게임(RPG) 디아블로는 1996년 마지막 주에 출시돼 미국에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했으며 지금까지 1850만 장 이상이 팔려나갔다.
2000년, ‘디아블로2’가 출시된 해에 서른이 된 강씨는 “일할까 떠날까”를 고민하다 사표를 던졌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광고디자인 일을 하던 그는 “늘 ‘블리자드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간 그는 아카데미 오브 아트 유니버시티 대학원을 졸업한 뒤 미국의 한 게임회사에서 일하며 틈틈이 블리자드의 채용 정보를 체크했다. 블리자드 면접을 보던 날 ‘게임에 대한 열정’을 테스트하는 회사의 태도에 더욱 마음을 뺏겼다고 한다. 그는 “블리자드는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보다 열정과 능력을 보는 회사라 한국에서 준비해도 입사가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제 ‘디아블로3’의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6월엔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블리자드 전세계 초대전’에 디아블로3을 소개하러 가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던 게임을 직접 만들게 된다는 것은 멋진 일”이라고 말했다.
장호진씨는 와우팀의 아티스트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가입자 기반 다중접속 온라인 역할수행게임(MMORPG)이다. 2007년 1월에 나온 확장팩은 발매 첫날에만 240만 카피, 첫 달에는 350만 카피를 판매해 PC게임 부문에서 최단시간 최대 판매의 기록을 세웠다. 그는 현재 두 번째 확장팩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리치 왕의 분노’를 개발 중이다.
한국인 직원과 한국어 공부하는 상사
고등학교 때 가족과 미국으로 이민을 간 그는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뒤 다시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아트센터 칼리지 오브 디자인에 진학했다. 그곳 학생들에게 블리자드는 선망의 직장이었다. 학생 때부터 블리자드 웹사이트에 들어가 채용 공고를 보던 그는 아티스트 자리가 안 나자 품질 검증을 하는 QA(Quality Assurance)로 입사했다. 2년간 QA로 일하다가 아티스트로 자리를 옮긴 지 3년이 됐다.
그사이 한국 직원 수도 늘었다. “5년 전 입사할 때만 해도 한국 사람이 없었는데 요즘은 많이 보게 돼서 반갑다”고 한다. 직원들끼리 삼겹살을 먹으며 낸 ‘비공식 통계’로는 블리자드의 한국인 직원 수가 35명을 넘어섰다. 회사에서 마주친 한 한국인 직원은 “어떤 팀은 팀장과 팀원 모두 한국인인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 직원들이 대체로 성실하고 게임에 대한 열정이 커서 한번 같이 일한 뒤에는 상사에게서 “다음에도 한국 직원을 뽑고 싶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심지어 한국어를 공부하는 상사도 있었다.
강씨와 장씨가 꼽는 블리자드의 장점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어떤 아이디어든 수렴하는 분위기”다. 권위의식이 없고 신입사원이라고 해서 보조 업무를 시키는 경우도 없다. 특히 한국의 대기업 문화를 체험한 강씨에겐 이런 회사 분위기가 활력소가 됐다. 프로젝트가 실패를 해도 “다 같이 모여 패인을 분석하는 게 중심”이다. 회사 곳곳엔 언제 어떤 게임이든 즐길 수 있는 시설과 함께 24시간 피트니스센터, 농구장과 배구장 등이 있다.
블리자드는 보안이 철저해서 회사의 프로젝트, 연봉 등에 관한 정보를 외부에 말할 수 없다. 시급을 받는 사람부터 높은 연봉을 받는 사람까지 개인차가 크기 때문이다. 업무 공간은 사진 촬영도 허용되지 않는다. 한국인 직원 수를 ‘비공식 통계’에 의존해 파악한 것도 “한 민족이나 국적의 직원만을 추릴 수 없다”는 블리자드 쪽 태도 때문이었다. 다만 강씨는 “현재 회사의 이익 분배에 만족하고 있고 연봉도 내가 일한 보람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게임 강국인 만큼 더 많은 한국인들이 들어오면 좋겠다”는 두 사람은 “한국의 게임 개발자들에게도 더 많은 애정과 응원을 보내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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