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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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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새겨진 붉은 <피의 책>

등록 2008-07-25 00:00 수정 2020-05-03 04:25

소설

▣ 이다혜 기자

스티븐 킹이 ‘현대 호러의 미래’라고 극찬한 클라이브 바커의 공포 단편집. 공포영화 의 감독으로도 유명한 클라이브 바커는 이 책으로 ‘영국 판타지 문학상’과 ‘세계 판타지 문학상’을 받았다. 올여름 개봉하는 공포영화 의 원작인 이 책은 ‘공포소설’이라는 말이 뜻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충족시킨다. 극도의 신체훼손이나 유혈 묘사는 기본이고 해피엔딩을 기대할 수 없는 처절함, 근본적인 악에 대한 물음과 불길한 상징이 모두 들어 있다. 이 책의 첫 단편 ‘피의 책’은 영매를 사칭한 남자 때문에 죽은 자들의 복수담이다. 혼령들은 자신이 겪은 고통을 남자의 몸에 글로 새겨 어디를 펼쳐도 붉은 ‘피의 책’을 만든다. 그 이야기들이 뒤에 이어지는 단편들이다.

수록작 중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과 ‘로헤드 렉스’를 강추한다.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은 연쇄살인마 마호가니와 열차로 퇴근하는 샐러리맨 카우프만의 이야기. 살육과 폭력 위에 세워진 도시의 역사를 피칠갑의 인체 해부로 은유하는 소설이다. ‘로헤드 렉스’는 런던 교외 마을 지하에 갇혀 있던 괴물 로헤드 렉스가 풀려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악 자체와도 같은 렉스는 어린아이라고 봐주는 법 없이 희생양으로 삼는다. 검열이 싫어서 영화보다 소설이 좋다고 한 클라이브 바커의 말을 떠올려보면, 그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 많은데도 소설만큼 뛰어난 영화는 한 번도 없었던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고어한 장면에 거부감이 심한 사람이라면 바커보다는 딘 쿤츠의 를 권한다. 죽은 자를 볼 수 있고 죽음을 예견하는 꿈을 꾸는 오드 토머스의 이야기인데, 쿤츠는 무서운 장면을 그려내기보다 두려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 뛰어나다. 엎치락뒤치락하는 몇 번의 반전은 경악, 공포, 슬픔을 차례로 맛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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