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빈곤층 늘어나는데 대형승용차와 수입차도 증가… 세금 환급·절약 등 근시안적 대책 효과 있나
▣ 안준관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본부 부장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최근의 유가 상승으로 가장 고통받는 건 서민이다.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사회적 갈등이 더욱 불거질 수 있다. 초고유가로 인해 심해지는 사회적 양극화가 그것이다.
고유가 때문에 전기 사용 늘어
휘발유와 경유 가격 상승으로 인해 서울시 자동차 통행량이 조금 줄었다고 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1, 3호 터널 통행량이 지난해에 비해 2~4% 정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지하철은 이용자가 0.6% 정도 증가했다. 고유가로 인해 많은 시민들이 자동차를 포기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휘발유 사용량은 지난해에 비해 줄지 않았다. 한국석유공사 자료를 보면, 올 1~5월 휘발유 사용량은 1.17% 증가했다. 반면, 경유는 같은 기간 동안 2.81% 감소했다. 경유 소비 감소는 휘발유에 비해 급상승한 가격이 이유가 될 수도 있지만, 경유를 주로 쓰는 생계형 화물차의 운행이 급속히 줄어든 것으로 생각된다.
치솟는 경유 가격에 운행을 중단하는 화물차가 존재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통행량 감소로 인해 대형 승용차가 도로에서 활개를 친다. 널뛰기 유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형차의 판매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승용차 판매에서 대형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2002년 9.2%에서 올해 상반기에 16.1%까지 올라섰다. 외제 수입차의 경우 꾸준히 판매율이 증가하고 있다. 올 4월까지 외제 승용차 수입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9%나 늘어났다.
한쪽에서 에너지 가격이 치솟으면 소비자들은 상대적으로 싼 에너지로 이동한다. 전기가 대표적인 예이다. 전기 사용량은 올 1~2월 지난해에 비해 9.6% 증가했다. 상반기 전체로 보면 5.6% 정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1~2월 겨울 동안은 기름보다 싼 심야 전기 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산업계 역시 가격이 저렴한 산업용 전력 이용률이 늘어났다.
서민들이 주로 사용하는 등유나 LPG의 경우 특소세 때문에 지역난방이나 도시가스에 비해 2배 가까운 비용을 내고 있다. 강남, 분당 등이 지역난방의 수혜자인 반면 도시 외곽이나 농어촌에서는 치솟는 등유와 LPG 가격에 값싼 심야 전기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이런 전기 쏠림 현상은 겨울에도 전력 피크를 가져온다. 그렇게 되면 값비싼 연료인 천연가스를 태워 발전을 해야 하는 악순환이 진행된다. 전력 가격을 현실화하는 것이 방안이지만 ‘전기요금 상승=물가 상승’이라는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정부의 현실이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소비의 양극화도 낳고 있다. 지난 5월 명품 매출은 지난해에 비해 39.1%나 증가했다. 고급 백화점과 대형 마트는 매출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물가 상승, 에너지 가격 상승은 실질소득의 하락을 의미한다. 명품 매출의 증가만큼 저소득층도 증가할 것이다. 2005년 단전으로 촛불을 켜고 공부하던 여중생이 잠들었다가 불에 타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2004년에 단전·단수를 경험한 가구가 48만 가구, 156만 명이나 된다. 지금은 훨씬 많은 수가 에너지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중교통 시스템과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약 정부가 근원적 대책 없이 서민들에게 에너지 절약만을 강조한다면 다시 대규모 촛불이 등장할 수도 있다. 근시안적 해결이 아닌 중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유가 상승은 불가피하게 진행될 것이다. 그렇다면 향후 대안을 도로와 승용차 중심에서 찾을 게 아니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 시스템과 안전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전용도로 마련에 힘써야 한다. 세금 환급, 유류세 인하라는 짧은 생각은 그만하고 그 비용을 이런 곳에 써야 한다. 또 고유가 대책을 원자력이라는 치마폭에서 찾으려 할 것이 아니라 에너지 효율 향상과 재생 가능 에너지 개발에 중심을 두어야 한다. 그리고 실질소득이 하락한 만큼 임금을 인상해줘야 한다. 이렇게 할 때만이 유가 상승으로 인한 국민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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