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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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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화와 M&A 전쟁, 그리고 민유성

등록 2008-06-13 00:00 수정 2020-05-03 04:25

‘공기업 재벌’이며 대우조선해양 등 매각 당사자인 산업은행…총재 내정자는 ‘막강’ 씨티은행 인맥으로 각종 M&A 관여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사진 이종찬 기자rhee@hani.co.kr

최근 산업은행 총재로 내정된 민유성 리먼브러더스 서울지점 대표의 프로필을 훑어보면 금융권의 지각변동과 인수·합병(M&A) 전쟁을 둘러싸고 퍼즐과 같은 어떤 흥미로운 그림이 연상된다. 무얼까? 그의 프로필에서 우선 눈길을 끄는 건 ‘옛 씨티은행 서울지점 출신’, ‘환은살로먼스미스바니증권’(현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 ‘우리은행’ 등이다. 이는 다시 ‘외환은행과 론스타’ ‘전광우 금융위원장’ ‘대우조선해양·현대건설·하이닉스 매각’이라는 열쇳말로 이어진다. 하나씩 살펴보자.

일반인들이 산업은행을 이용할 일은 별로 없지만, 산업은행 총재는 기획재정부 장관이나 이건희 전 삼성 회장 못지않게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파워 인물이다. 산업은행법 제1조는 “중요 산업자금의 공급·관리”를 설립 목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전력·철강 등 기반산업과 중화학·자동차·전자·반도체 등 주요 기업의 설비·운영 정책자금을 저리로 제공하고, 기업 구조조정을 주도하는 은행이 산업은행이다. 2008년 3월 말 현재 산업은행의 총자산(자본과 부채 총계)은 145조원으로, 총여신(기업대출) 72조원, 유가증권 투자(구조조정 대상 기업 담보채권 등) 60조원에 이른다.

실질 총자산 대한민국 1위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삼성그룹의 총자산은 144조원(2007년 말), 삼성전자의 총자산은 67조원(2008년 3월 말)이다. 은행 쪽을 보면 국민은행 총자산이 233조원(2008년 3월 말)이지만 수신(예금액)이 대부분인 반면, 산업은행의 총수신은 14조원에 불과하다. 실질적인 총자산 측면에서 산업은행은 ‘대한민국 1위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산업은행을 집어삼키는 자본이 한국 경제를 움직이게 된다. 송태경 ‘경제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 사무처장은 “삼성이고 어디고 할 것 없이 국내 주요 대기업들마다 산업은행에서 저리 정책금융을 제공받아왔고, 산업은행은 부실기업이든 알짜기업이든 주요 기업의 담보채권을 갖고 있는 거대한 기업”이라며 “산업은행이 담보채권을 많이 갖고 있는 어떤 대기업이 나중에 부실화되면 출자전환을 통해 산업은행이 결국 최대주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은행은 또 ‘공기업 재벌’이다. 한국전력의 지분 29.9%, 한국토지공사의 26.6%, 한국관광공사의 43.5%, 한국자산관리공사의 26.9%, 중소기업은행의 12.5%, 한국수자원공사의 9.6%를 보유하고 있다.

정부는 산업은행 민영화와 관련해 금융 자회사를 거느린 산은 지주회사와 한국개발펀드(KDF)로 산은을 분할한 뒤 산은 지주회사를 민영화하고 KDF는 정부가 100% 지분을 가진 정책금융기관으로 운용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6월5일 “산업은행이 보유한 공기업 주식은 KDF로 넘어가기 때문에 산업은행이 민영화된다고 해서 한전이 민영화되는 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산은을 인수한 기업이 한전 등 공기업들을 ‘덤’으로 갖게 된다는 이른바 ‘산업은행 민영화 괴담’은 괴담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산업은행 자체의 민영화도 추진되고 있지만, 산업은행이 지분을 대거 보유하고 있는 대우조선해양·현대건설·하이닉스(옛 현대전자) 등 굵직한 구조조정 대상 기업의 매각도 진행되고 있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의 지분 31.2%, 한국전력 30%, 현대상사 22.5%, 현대건설 14.6%, 하이닉스 7.1%, 쌍용양회 13.8%를 갖고 있다. 대우조선해양과 쌍용양회는 산업은행이, 현대건설·현대상사·하이닉스는 외환은행이 주채권은행이다. 또 하이닉스의 주요 채권단 지분은 외환은행 8.22%, 우리은행 8.03%, 산업은행 7.16%이고, 현대건설의 주요 채권단 매각제한 지분율은 외환은행 12.4%, 산업은행 11.1%, 우리은행 10.6%이다. 산업은행과 외환은행, 우리은행 등 3자가 매각 당사자로 얽히고설켜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산업·외환·우리은행은 현재 대우조선·현대건설·하이닉스 등 M&A 시장의 ‘빅3’ 가운데 어떤 기업을 먼저 매각할 것인지, 또 옛 현대그룹 계열에 현대건설 인수 참여 자격을 부여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티격태격하고 있다. 한편, 이명박 정부 들어 지난 3월 취임한 전광우 금융위원장과 민유성 내정자는 2001년부터 3년간 같은 시기에 우리금융 지주회사 부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여기서 ‘우리은행’ 퍼즐을 연상할 수 있다.

산업은행이 매각을 진행하고 있는 대우조선해양과 관련해, 산은은 애초 골드만삭스를 매각주간사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으나 골드만삭스가 대우조선해양 경쟁업체인 중국 조선사에 지분을 투자하고 있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최근 자격을 취소했다. 특히 골드만삭스 자산운용사 대표인 이지형씨는 이상득 의원의 장남이자 이명박 대통령 조카여서 특혜 의혹이 일기도 했다. 또 그는 미국의 회계 컨설팅회사인 딜로이트투시 뉴욕에서 회계사로 근무한 전력이 있는데, 흥미롭게도 지난 3월 취임한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딜로이트코리아 회장을 지낸 바 있다. 산업은행은 골드만삭스의 자격을 취소하고 나서 차순위 협상대상자인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에 매각주간사를 맡기려 했는데, 딜로이트가 대우조선해양 잠재매수자와 자문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사실이 드러나 포기한 바 있다.

한편,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뛰어든 포스코는 리먼브러더스를 인수 자문사로 선정한 것으로 알려진다. 민 내정자는 최근까지 리먼브러더스 서울지점 대표였다.

이제 ‘외환은행’ 퍼즐 쪽을 보자. 민 내정자는 또 1999년 살로먼스미스바니환은증권(SSB) 사장을 지낸 바 있다. 살로먼스미스바니환은증권은 1997년 외환은행과 씨티은행그룹의 자회사인 살로먼스미스바니가 합작한 증권사로, 2001년 살로먼스미스바니증권(현 한국씨티글로벌마켓증권)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SSB는 2003년 외환은행을 론스타펀드에 매각할 당시 외환은행 쪽 재정자문사와 론스타의 매각자문사를 맡은 바 있다. 당시 SSB 대표는 김은상씨였는데 론스타는 김씨를 통해 변양호 당시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등을 상대로 로비를 벌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재우 전 리먼브러더스 대표는 변양호씨가 설립한 보고펀드 공동대표로 참여했는데, 리먼브러더스는 보고펀드 설립 때 자문 역할을 했었다.

SSB의 주요 업무는 M&A 자문서비스로, 씨티글로벌마켓증권은 2007년에 두산그룹의 미국 건설장비업체 밥캣 인수건과 HSBC의 외환은행 인수건에서 자문을 맡았다. M&A 자문 분야에서 독보적인 강점을 갖고 있는 산업은행 M&A실은 두산이 밥캣을 인수할 때 외곽에서 지원한 바 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에 금융시장 전문가 네댓 명과 가진 간담회에 주진술 한국씨티글로벌마켓증권 대표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SSB 출신으로는 이근모 전 미래에셋증권 부회장, 김경민 전 환은살로먼스미스바니증권 사장(전 외환은행 종합기획부장), 이종환 마이에셋자산운용 부회장, BBK 사건 관련 김경준(민 내정자가 SSB 사장으로 있던 1998년 당시 연봉 8억원대 펀드매니저)씨 등이 있다.

민 내정자를 둘러싼 퍼즐은 이제 ‘씨티은행 서울지점’으로 이어진다. 민 내정자는 1981년 씨티은행 서울지점에 행원으로 들어가 1988∼90년 기업금융그룹 지배인을 지낸 바 있다. 여기서 씨티은행과 외환은행의 관계도 이목을 끈다. 외환카드는 2000년 당시 씨티은행 서울지점과 매각 협상을 진행했다가 중단한 적이 있다. 그리고 2003년 말 외환은행은 외환카드와 합병할 당시 씨티그룹에 외부용역을 맡겼는데, 이 용역보고서는 외환은행이 감자를 통해 외환카드를 합병하는 시나리오를 대안으로 제시했었다. 애초 산업은행 총재 후보로는 민 대표와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2004년 씨티은행이 한미은행을 합병)이 각축을 벌였다. 두 사람 다 씨티은행 서울지점 출신이다. 공교롭게도 하 행장 역시 민 내정자와 똑같은 시기인 1981년 씨티은행 서울지점에서 은행원 생활을 시작했고 20년 동안 씨티은행 서울지점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씨티은행 서울지점 출신들의 파워

씨티은행 서울지점은 1967년 한국 시장에 진출해 1999년 말 전체 임직원 735명, 당기순이익 1308억원을 기록했고, 2001년 6월 말 총자산이 12조316억원이었다. 독립 금융법인이 아닌 단순한 외국은행 지점치고는 놀라운 수익을 올렸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씨티은행 서울지점은 부자 고객들의 거액 예금을 유치하고 파생금융상품이나 유가증권 등 당시 한국에서 아직 준비가 안 된 상품에 투자해 많은 수익을 올렸다. 외환위기 이후 씨티은행 출신들이 승승장구했으나 이들이 정말로 놀라운 선진 금융기법을 갖고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민씨가 씨티은행과 SSB 등 유수의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전력이 있고, M&A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산은 총재로 내정됐다는 평가가 많다. 사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금융시장 환경이 수익성 위주로 바뀌고, M&A를 통해 다른 은행을 잡아먹어 대형화하는 능력이 강조되면서 M&A 전문가들이 대활약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2000년 이후 “선진 금융기법을 터득한 금융인”이라는 평가 속에 씨티은행 서울지점 출신들이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하영구 행장 외에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 로버트 팰런 전 외환은행장, 김명옥 전 서울은행 부행장, 최명희 외환은행 감사(전 금융감독원 팀장), 이성남 전 금융통화위원(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현 민주당 비례대표 의원), 송갑조 하나은행 부행장, 황성호 전 제일투자신탁증권 사장, 홍기명 전 JP모건 한국대표, 이재우 전 리먼브러더스증권 한국대표, 서송자 산업은행 IT본부장, 도기권 전 굿모닝증권 사장, 박준규 HSBC 부대표, 김동훈 메리츠종금 사장, 박환규 우리금융 전무, 장형덕 서울은행 부행장, 신현갑·오용국 국민은행 부행장 등도 ‘씨티맨’이다. 이성남·최명희씨는 1999년 금융감독원 출범 때 이헌재씨가 영입했던 인물이다.

민 내정자를 정점으로 한 씨티은행 서울지점 인맥은 민씨와 하영구·강정원 행장을 주축으로 해 서로 이끌면서 막강한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으로 알려진다. 외국 은행 국내 지점에 불과했던 씨티은행 서울지점 출신들이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금융 빅뱅과 글로벌 스탠더드 열풍 속에서 한국 금융권 요직을 두루 장악한 것인데, 씨티은행 서울지점 출신 모시기 경쟁까지 벌어졌다. 과거에 모피아(옛 재무부와 재경부 출신 관료들)가 금융권을 장악했다면 이제 민씨를 비롯한 씨티은행 출신들이 금융권을 주무르고 있는 격이다.

그러나 장화식 투기자본감시센터 정책위원장은 “그동안 외국 금융기관을 거쳤다는 경력 하나만 보고 선진 금융기법 능력을 갖고 있다고 인정해주거나 외국계 금융회사 명함만 있으면 전문가로 대접해주는 경향이 득세했다”며 “하지만 옛 씨티은행 서울지점 출신들이 파생상품 거래를 좀더 많이 해본 것 외에 무슨 대단한 M&A 능력을 갖고 있겠느냐”고 말했다.

민유성 내정자를 둘러싼 금융권의 복잡한 퍼즐이 하나로 딱 맞춰지는 건 아니다. 분명한 건 산업은행 민영화와 대우조선해양·현대건설 등 대형 M&A를 앞두고 퍼즐의 정치적 성격에 대한 의혹이 일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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