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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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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우발적 사건 아니다”

등록 2001-04-17 00:00 수정 2020-05-02 04:21

대우차 노동자들의 가슴에 씻길 수 없는 4월10일 부평의 핏자국

그것은 야만이었다. 누운 사람을 방패로 찍어대고, 일어서면 곤봉으로 내리치고, 쓰러지면 군홧발로 짓밟았다. 드러누운 사람의 얼굴을 집중적으로 내리찍는 방패에선 살의마저 뿜어져나왔다. 도망칠 구멍도 없었다. 앞 뒤로 전투경찰이 에워쌌고, 길 왼쪽은 군부대 담장이 가로막고 있었다. 유일한 탈출구였던 오른쪽 골목에도 이미 전경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진압 전에 퇴로를 모두 막아놓은, 이른바 ‘토끼몰이식 진압’이었다.

“우리를 사람으로 생각했다면…”

야만이 휩쓸고 간 거리는 아수라장이었다. 피투성이 얼굴로 신음하는 사람, 깨진 머리를 움켜쥐고 비틀거리는 사람, 널브러진 채 부들부들 몸을 떠는 사람…. 머리채를 붙잡힌 채 끌려가는 남편을 보며 아내는 “야 이 새끼야 놔둬! 우리 남편 왜 잡아가!”라고 절규했다. 전경은 항의하는 아내마저 연행하려 했다. 웃통을 벗은 한 노동자는 “이게 뭐야… 차라리 죽여라! 죽여!”라며 울먹였다. 그를 비추는 카메라 앵글에도 핏방울이 묻어 있었다.

4월11일 오후 4시 서울역 광장. 10여명의 시민들은 비디오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4월10일 경찰이 대우자동차 해고조합원들에게 가한 폭력을 담은 비디오였다. 발목을 적시는 빗줄기도 이들의 발걸음을 재촉하지는 못했다. 한 장면 한 장면 넘어갈수록 시민들의 표정은 점점 굳어갔다. 카메라가 구급차에 실려가는 노동자들을 비출 무렵, 시민들 사이에서 고함이 터져나왔다. “제2의 광주사태구먼!” “경찰 맞아?”

“해고 당한 것도 억울한데 폭력이 웬말입니까!”

다음날 오후 1시. 인천시 산곡동 성당에서 대우자동차 해고조합원들은 ‘경찰폭력 규탄집회’를 열고 있었다. 노동자들이 울분을 토하는 사이, 성당 한쪽에 마련된 간이진료소에는 부상자들이 늘어서 있었다. 치료를 받던 이용하(36) 조합원은 “몸이 성한 사람이 없다”며 “우리를 사람으로 생각했으면 그렇게는 못하지…”라고 되뇌었다. 집회가 끝나자 대우차 노조 박성배 교육부장은 폭력사태 현장을 동행하며 기억을 되살렸다.

박 부장에 따르면, 4월10일 오후 1시 대우자동차 해고조합원 400여명은 산곡동 성당을 출발해 부평공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4월6일 인천 지방법원이 ‘노조 사무실 출입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임에 따라 노조 사무실로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경찰은 2월19일 대우차 부평공장을 강제진압한 뒤부터 노조 사무실 출입을 막아오던 터였다. 조용히 걸어가던 노동자들을 1천여명의 전경들이 가로막았다. 부평공장에 200m 못 미친 지점이었다. 노조쪽 법률대리인 박훈 변호사는 경찰을 향해 “길을 막는 것은 정당한 법집행을 방해하는 행위”라며 “즉각 해산하라”고 수차례 경고했다. 하지만 경찰들은 물러서지 않았고, 두세 차례의 몸싸움이 이어졌다.

두 시간 넘게 대치하던 오후 3시30분. 이주영 의원 등 한나라당 인권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4명이 도착했다. 이들도 물러갈 것을 요구했지만 경찰은 거부했다. 국회의원들이 인천경찰청장을 만나러 떠나자 조합원 대오 뒤쪽에도 전경이 배치됐다. 위기감을 느낀 박 변호사는 조합원들에게 “웃통을 벗고 자리에 누우라”고 외쳤다. 비폭력 무저항의 표시였다. 함께 왔던 해고자 가족 10여명도 뒤쪽의 전경들 앞에 늘어섰다. 아이를 들쳐업은 부인들도 섞여 있었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이 떠난 지 채 10분도 되지 않아 전경들은 조합원 대오를 덮쳤다. 박 변호사는 “1500명이 넘는 전경 숫자로 봐서 얼마든지 평화적으로 연행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제 정신으로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치를 떨었다.

2월부터 시작된 경찰폭력의 연장선

당시 현장을 지켜봤던 인근지역 주민들도 “경찰 폭력이 도를 넘었다”고 입을 모은다. 폭력현장 바로 앞에 위치한 한 상가의 주인은 “각목 하나 안 든 사람들을 그토록 심하게 짓밟을 수 있느냐”며 “주민들이 나서서 말렸지만 막무가내였다”고 전했다. 화가 난 동네 할아버지 한 명은 집에서 몽둥이를 들고 나와 경찰들을 쫓아낼 정도였다. 유일한 탈출구였던 카센터 골목에 위치한 가게 아주머니도 “피 흘리는 사람들을 골목까지 쫓아와 마구 연행했다”고 증언했다. 이날 부상을 당한 해고조합원 40여명은 인천 각 병원에 흩어져 입원했다.

폭력현장에서 차로 5분 거리인 부평 세림병원에는 7명의 부상자들이 입원하고 있었다. 이 병원 715호에는 해고조합원 홍성표(46)씨가 가슴에 붕대를 감은 채 누워 있었다. 갈비뼈 두대가 부러지면서 폐를 찔러 상체를 일으키기조차 힘든 몸이었다. 연행되면서 군홧발에 걷어채여 갈비뼈가 부러진 것이다. 폐수술까지 받아야 할 처지에 놓인 홍씨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분통을 터뜨렸다.

“붙잡히자 ‘순순히 따라갈 테니 때리지만 말아달라’며 애원했습니다. 그런데도 마구 곤봉으로 내리치더군요. 가슴을 걷어채자 ‘헉’ 하며 고꾸라졌지만 그냥 길가에 버려졌죠. 전경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제발 살라 달라’고 애원했지만 들은 체도 않더군요.”

특별한 외상이 없었던 홍씨는 뒤늦게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입원하자마자 산소마스크에 의지해야 했다. 홍씨를 치료하던 세림병원 김아무개 간호사는 “정말 경찰이 한 짓인지 믿기지 않는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인천 중앙병원에 입원한 김락기(31)씨는 전경 바로 앞에 누워 있다가 집단 구타를 당한 경우다. 엉치뼈가 으스러지고 무릎 연골이 상한 그는 다리 전체에 깁스를 하고 있다. 게다가 얼굴은 온통 멍투성이다. 김씨는 “전경과 불과 1m밖에 안 되는 거리였다”며 “갑자기 날아오는 곤봉과 군홧발을 피할 틈도 없었다”고 돌이켰다.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그는 “죽지 않고 살아난 것만도 다행”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옆에 앉아 있던 김씨의 어머니는 “너무 억울하다”며 통곡했다.

벌거벗은 폭력은 변호사라고 비켜가지 않았다. 박훈 변호사도 어깨와 팔에 부상을 입고 인천 사랑병원에 입원중이다. 박 변호사는 병상에 누운 채 “준법, 준법 강조하던 경찰이 앞장서 불법을 자행했다”며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결코 우발적인 게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2월19일 부평공장 농성이 강제진압된 뒤 이어진 경찰 폭력의 연장선상이라는 것이다. 이날 이후 민주노총 주최의 모든 집회는 금지되었고, 마구잡이식 연행은 끊이질 않았다. 2월19일 전경이 던진 돌에 맞아 해고조합원 김용환(32)씨가 왼쪽 눈의 시력을 잃는 등 부상자도 속출했다. 인권운동사랑방 등 인권단체들은 2월19일 이후의 부평을 “계엄령 없는 계엄지구”라고 부른다. 부평의 핏자국은 이튿날 내린 빗줄기에 씻겨내려 갔지만, 노동자들의 가슴속에 쌓인 한은 지워지기 힘들게 됐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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