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프라임 사태 부추긴 금융기업 최고경영자들, 회사는 망해가는데 화끈하게 한몫 챙겨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서브프라임 파동으로 미국 노동자 가정이 두 가지 불운을 한꺼번에 맞았다. 부동산 가격 폭락과 대출금 상환 압박으로 어렵사리 마련한 집을 압류당할 처지로 내몰리고 있는데다, 금융시장이 급속히 붕괴되면서 은퇴 이후를 대비해 투자한 주식과 연기금의 가치도 땅에 떨어진 탓이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미국 노동 총연맹 산업별 회의’(AFL-CIO·이하 미국노총)는 지난 4월14일 내놓은 연차보고서에서 서브프라임 부실화를 조장한 원흉으로 거대 금융기업 총수들을 첫손에 꼽았다. 이날 공개된 보고서는 미국노총이 매년 ‘스탠더드&푸어스 500 지수’에 올라 있는 우량기업 최고경영자들의 각종 상여금 포함 연봉 수준을 추적한 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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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비규환 속의 돈잔치 서브프라임 사태로 거대 금융기업들이 줄줄이 부도 위기로 내몰리고 있지만, 무분별한 이윤 추구로 위기를 불러온 최고경영자들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채 돈방석에 앉아있다. 미국의 주요 금융기업들. (사진/ 연합/ EPA/ EVERETT KENNEDY·REUTERS/ MIKE BLAKE·JOSHUA LOTT·LUCAS JACKSON·SHANNON STAPLETON·MIKE SEGAR/왼쪽위부터 시계방향으로)
CEO 연봉 상승률, 순익 증가율 앞서
노동자 계층의 임금 수준이 사실상 정체된 사이 소득 불평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 2002년만 해도 소득 수준 상위 1%가 미국 전체 소득의 16.9%를 차지했지만, 불과 4년 만인 2006년엔 그 비중이 22.9%로 높아졌다. 이런 소득 격차는 주식시장의 거품이 절정에 이르렀던 1928년 이후 처음이란 게 미국노총의 지적이다. 실제로 시민단체 ‘공정경제연합’(UFE)이 지난해 8월 내놓은 관련 자료를 보면, 2006년 현재 성과급·상여금 등을 포함한 미 기업 최고경영자의 평균 연봉은 1080만달러로, 일반 노동자 평균 연봉의 364배에 이른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이하 연준)가 이자율을 계속해서 낮게 유지하는 한, 소득 수준이 낮은 노동자 가정도 대출을 통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임금 인상률이 정체된 탓에, 상당수 노동자들은 일단 집을 장만한 뒤 이를 담보로 다시 대출을 받아 생활비 부족분을 메워왔다. 부동산을 일종의 ‘돼지저금통’으로 활용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택담보대출 시장에 대한 금융당국의 규제·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부동산 거품이 커지기 시작했다. 상환 능력이 없는 저소득층을 겨냥한 무차별적 대출 판매가 이뤄지면서, 비정상적인 부동산 경기 팽창으로 이어진 게다.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르기만 한다면, 원금 상환을 늦추고 이자만 제때 내더라도 어렵지 않게 큰돈을 만질 수 있다는 ‘환상’이 만연해졌다. 서브프라임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이유다. 서브프라임 시장은 지난 2001년만도 전체 주택담보대출 시장의 5% 남짓에 불과했지만, 2006년엔 전체 신규 대출의 20%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비극은 이렇게 잉태됐다.
금융권도 부동산 거품을 부추기는 데 큰 몫을 했다. 단기수익에 눈먼 투자은행들은 앞다퉈 주택담보대출 채권을 유동화한 ‘부채담보부증권’(CDO) 등의 파생상품을 만들어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서브프라임 채권뿐 아니라 우량주택담보대출 채권도 끼어 있다 보니, 신용등급평가기관도 이들 상품에 ‘호의적인 등급’을 매기느라 바빴다. 서브프라임 부실화에 따라 주택담보대출업체 뿐 아니라 투자은행 등 모든 금융기관이 심각한 위기로 내몰린 이유다. 미국노총은 보고서에서 “각종 인센티브에 눈이 먼 금융기업 최고경영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단기수익 높이기에 몰두한 것이 서브프라임 사태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질타했다.
실제로 상당수 금융기업의 이사회는 서브프라임 부실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단기적 이익을 내는 최고경영자에게 스톡옵션을 포함한 막대한 보상을 해왔다. 미 경제연구소(ERI)가 45개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분석해 지난 2월18일 내놓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분석 대상 기업 최고경영자의 연봉 상승률은 해당 기업의 순익 증가율을 크게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소는 자료에서 “경영진의 연봉이 전년 대비 평균 20.5% 상승한 반면 기업의 수익 상승률은 평균 2.8%에 그쳤다”며 “2008년 2월 현재 조사 대상 기업 최고경영자들의 평균 연봉은 1881만여달러에 이른다”고 밝혔다. 미 노동통계국(USBLS)이 최근 집계한 미국 노동자 평균 임금은 전년 대비 3.5% 상승한 3만6140달러다.
스톡옵션 시세차익, 호화 부동산 구입
하지만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거대 금융기업들이 줄줄이 부도 위기로 내몰리고 있지만, 무분별한 이윤 추구에 몰입했던 최고경영자 대부분은 여전히 ‘돈방석’에 앉아 있다. 주가가 급락하기 전 미리 스톡옵션을 행사해 막대한 시세차익을 챙기는가 하면, 부동산 폭락을 반기기라도 하듯 호화 부동산 구입에 나서기도 한다. 헨리 왁스먼 미 하원 정부개혁위원장은 지난 3월7일 열린 청문회에서 “회사는 망해가는데 경영진은 로또 복권에라도 당첨된 듯하다”고 꼬집었다.
이런 상황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미국노총은 미국 최대 가계대출 업체로 꼽혔던 컨트리와이드금융의 창업자 안젤로 모질로 회장을 꼽았다. 컨트리와이드는 한때 주택담보대출 규모만도 4500억달러에 이르면서, 미 전체 가계대출의 20%를 점유했다. 이 업체가 서브프라임 사태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건 당연하다. 미국노총의 자료를 좀더 살펴보자.
컨트리와이드가 미 최대 주택담보대출 업체로 떠오른 것은 지난 2004년이다. 모질로 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무모하리만큼 대출 규모를 늘리면서 삽시간에 업계를 평정한 게다. 2007년 하반기 부동산 거품이 급격히 꺼지기 시작하면서 컨트리와이드의 ‘허장성세’도 막을 내렸다. 한꺼번에 약 16억달러의 손실을 떠안게 된 게다. 은 지난 1월12일치에서 “컨트리와이드가 대출금을 내주기 이전에 소득명세 등 재무 상황을 파악한 대출 신청자는 전체의 20%가량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단기 성과에 눈이 먼 ‘막무가내’ 영업이었던 게다. 손실을 매우기 위해 자산 매각에 나섰지만, 파국을 피할 순 없었다. 신용등급은 급경사의 하강 곡선을 그렸고, 전년 대비 기업 가치가 87%(약 200억달러)나 추락한 채 결국 뱅크오브아메리카에 합병됐다.
그럼 모질로 회장은 어떻게 됐을까? 미국노총은 “부동산 거품이 절정으로 치닫던 2004~2007년 모질로 회장은 스톡옵션을 잇따라 행사해 모두 4억1400만달러를 챙겨둔 상태였다”고 전했다. 이뿐 아니다. 그는 ‘준비된 최고경영자’였다.
서브프라임이 곯아가고 있던 지난 2006년 말 모질로 회장은 연봉계약을 통해 임금 190만달러에 성과급 400만~1천만달러, 스톡옵션 1천만달러, 판공비 등 각종 부대지원금과 퇴직위로금 3750만달러 등을 챙겼다. 부도 위기에서 회사가 합병된 이후 안팎의 비난이 거세지면서 퇴직위로금은 ‘자발적으로’ 포기했지만, 그렇다고 빈손으로 물러설 그가 아니었다. 전직 최고경영자들을 위해 준비된 2240만달러 상당의 연금과 1천만달러 상당의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주식을 챙긴 게다.
2007년 1월 현재 200억달러에 이르던 주가 총액의 100분의 1 수준에 불과한 2억3600만달러에 지난 3월16일 JP모건에 인수된 베어스턴스도 서브프라임 사태의 ‘대표주자’로 꼽을 만하다. 이 업체의 임직원과 주주들의 강력한 반발에 밀려 JP모건은 인수 일주일여 만에 인수한 주식 1주당 2~10달러씩 상향 평가해주는 데 합의했다. 파산 직전까지 몰렸던 이 업체의 제임스 케인 전 회장은 자신이 보유한 주식(전체의 5.82%)을 즉각 팔아치워 6130만달러를 챙겼다. 이에 앞서 는 3월14일치에서 “케인 회장이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파크 인근에 위치한 초호화 콘도미니엄을 2580만달러에 사들였다”고 전했다. 자신이 일조한 부동산 시장 폭락이 만들어낸 ‘투자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게다. 물론 그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않았다.
각종 상여금·주식·전별금…
사례는 끝이 없다. 지난해 창업 72년 만에 처음으로 손실을 낸 투자기업 모건스탠리의 존 맥 회장은 각종 상여금과 주식 등을 포함해 4170만달러를 챙겼다. 지난해 3/4분기 22억4천만달러의 손실을 기록하면서 굴지의 투자업체인 메릴린치에서 해임당한 스탠리 오닐 전 회장은 스톡옵션과 기타 상여금 등으로 모두 1억6천만달러를 챙겼고, 역시 지난해 3/4분기 수익이 57%나 떨어지면서 자리에서 물러난 찰스 프린스 시티은행 전 회장도 2500만달러 이상을 ‘전별금’처럼 거둬갔다. 이 밖에 미국 제4위 은행인 와코비아의 케네디 톰슨 회장도 회사 주가 총액이 23억달러에서 5100만달러로 급락했음에도, 스톡옵션 등으로 지난해 모두 143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또 미국 최대의 주택대부조합으로 꼽히는 워싱턴뮤추얼은 부도 위기에 몰려 70억달러에 이르는 외부 자금을 긴급 수혈받아야 했지만, 케리 킬링어 회장은 지난해 임금 100만달러와는 별도로 스톡옵션 등으로 1300만달러를 챙겼다. 아비규환 속 그들만의 돈잔치였다.
존 스위니 미국노총 위원장은 이 단체 홈페이지에 올린 칼럼에서 “평범한 노동자들이 어렵사리 모아 투자한 돈을 날리고,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일자리마저 위협받고 있다”며 “이토록 엄청난 아픔과 고통을 안긴 최고경영자들이 막대한 금액을 챙기는 것을 지켜보자니 구역질이 날 지경”이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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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경영학의 대가인 알프레드 챈들러(하버드대)는 (The Visible Hand)이란 책에서 “현대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기업이라는 ‘보이는 손’이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주도한다”고 말했다.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시장가격기구)이 아니라 기업 경영자가 시장경제를 움직이는 핵심이란 얘기다. 미국식 자본주의는 이른바 ‘법인 자본주의’(경영자 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직 끝나지 않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는 그동안 전세계에 ‘글로벌 스탠더드’를 외쳐온 미국식 자본주의의 허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투기했다가 실패한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어마어마한 스톡옵션과 연봉을 챙기고 있다.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에 빠진 미국 최고경영자들의 모습을 그대로 폭로하는 사례다. 사실 서브프라임 부실 사태는 미국 금융대출기관의 무모한 대출, 고객의 위험 추구, 부실한 신용평가, 허술한 금융감독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시장에 의한 엄격한 규율’을 강조하는 선진적(?) 미국 경제라고 하지만, 한 꺼풀만 벗겨보면 각 경제 주체들의 모럴 해저드가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음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서브프라임 공포에 대한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대응도 모럴 해저드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즉각 구원투수를 자처한 연준은 망해가는 금융회사들한테 잇따라 자금지원을 해주고 있다. 300억달러의 긴급 구제금융을 동원해, 파산한 베어스턴스를 JP모건체이스에 넘겼다. 증권사들에는 국채를 빌려가 유동성을 높일 수 있도록 길을 터줬다. 민간 금융회사에 서브프라임 투자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고, 연준 역시 금융감독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반면,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통화기금(IMF)은 1997년 말 외환위기 당시 구제금융을 지원할 때 “한국 금융기관들이 모럴 해저드에 빠져 있었다”고 운운하며 고금리 긴축처방이란 칼을 빼들었다. 한국 경제는 대량 실업의 고통 속에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고, 시중 유동성이 부족해 흑자도산하는 기업도 빈번히 발생했다. 그러나 지금 서브프라임 부실 사태를 맞은 미국은, 10년 전 한국 경제에 집요하게 요구했던 ‘시장의 규율’을 내팽개친 채 파산 위기에 몰린 금융기관을 구제하는 데 급급한 모습이다. 미국의 투자금융기관들이 돈을 많이 벌 때는 가만히 놔두거나 오히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주고, 정작 파산 위기에 몰리니까 이제는 세금으로 도와주고 있는 형국이다.
IMF는 최근 서브프라임 잠재부실 총계가 945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우리나라의 2007년 국내총생산(GDP)에 육박하는 규모다. 미국식 ‘경영자 자본주의’의 모럴 해저드가 초래한 천문학적 손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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